엄마의 심정지가 왔던 날은 아빠 생신날 새벽이었고, 엄마 사망신고를 한 날은 막냇동생 생일이었다. 엄마는 아빠 생일 전 날 아침으로 미역국을 끓여서 생일 상을 챙겨주셨다고 한다. 미역국을 좋아하지 않던 아빠와 막냇동생은 신기하게도 두 그릇씩 미역국을 먹었다고 했다. 그게 엄마가 끓여주는 마지막 미역국이었다. 난 언제 적 미역국이 마지막 엄마표 미역국이었을까. 둘째 출산 후 엄마가 산후조리를 도와주셨으니, 그때가 내가 맛본 마지막 엄마표 미역국이었겠다. 멀리 있는 딸이 안쓰러운 엄마는 미역국 대신 매년 생일 때마다 문자와 용돈을 보내셨다.
엄마의 막재 후, 처음으로 다가오는 집안 행사는 내 생일이었다. 내 사람들과 지구 반대편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한국에서의 생일이 지나가면 미국에서의 생일이 돌아왔다. 그렇게 14시간의 간극은 생일을 이틀에 걸쳐 축하받을 수 있는 행복을 안겨주곤 했었다. 그렇게 오래도록 따뜻하던 생일이 이번에는 달갑지 않았다. 생일이 다가오기도 전에 엄마가 그리워 핸드폰을 열어본다. 지난날 엄마의 흔적들을 뒤적이다 멈춘 곳에는 엄마의 사랑이 남아 있었다.
“진아 미역국은 먹었나? “
엄마가 돌아가시고 마주한 첫 생일은 참 오래도록 마음이 허했다. 빈자리가 유독 시린 아빠는 마음이 다급해지셨다. 엄마의 자리를 조금이라도 메우고 싶으신지 자꾸만 계좌번호를 물어보신다. 괜찮은데, 정말 괜찮은데…… 엄마의 자리까지 채워주고 싶어 하는 아빠맘을 못 이기며 받아들였다. 나에게 얼마나 많은 생일들이 남아 있을까? 작년 여름, 엄마는 나를 가졌을 때 꾸셨다는 태몽이야기를 해주셨다. 매해 나이가 먹고, 내 기억 속 엄마의 나이보다 더 나이가 들어갈 때도, 엄마와 그날 함께했던 이야기와 시간들이 떠오르겠지. 그립고, 사랑하는 나의 엄마…… 낳아주셔서, 엄마의 딸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서서 너무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