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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브 Nov 04. 2024

누추한 직장에 귀한 옷은 어울리지 않아

바니바니 당근에서 산 크롭 가죽재킷

나도 직장에 꾸미고 다니고 싶었다. 초반에는 나름 멋을 내고 꾸며봤다. 하지만 바닥에 주저앉거나 무릎 꿇거나 소품 챙기려고 뛰어다녀 땀이 줄줄 흐르는 일이 다반사인 사진 촬영 현장에서는 귀한 옷은 사치였다. 3만 원도 안 하는 검은 흑청통바지에  1만 3천 원 하는 검은 반팔티를 유니폼처럼 입고 다녔다. 머리도 치렁치렁 풀 수 없어서 하이포니테일로 묶었다. 심지어 세트장을 하얗게 칠하느라 흰 페인트가 검은 옷에 묻기도 했다. 도합 5만 원도 안 하는 착장이니 별로 속이 쓰리진 않았다. 누추한 직장에 귀한 옷은 사치라고 했던 어떤 인터넷에서 본 밈이 생각났다.


나는 체형비율상 다리가 짧은 편이라 꾸밀 때는 치마를 즐겨 입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치마는 언감생심 그냥 통바지만 주야장천 입었다. 일하고 오면 먼지가 잔뜩 묻는 탓에 한번 입고 한번 세탁하고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모처럼 쉬는 날 오랜만에 치마를 입고 당근에 올라온 크롭 가죽재킷을 득템 해서 걸쳐 입었다. 올 블랙룩에 포인트는 노란 니콘 카메라스트랩이다. 크으 이게 멋이지라고 혼자 생각하며 자기애를 풀충전한다. 요새 검은색을 즐겨 입는다.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라는 이유로 검은색을 입지만 오히려 옷이 다 검은색이면 눈에 더 띈다. 어두운 옷은 내 어두운 심리상태를 반영한다.


사진관에 일하고 오히려 일하느라 바빠서 사진 찍을 시간이 줄었다. 손이 굳어서 오랜만에 찍으려니 엉망으로 찍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럴 땐 다양하게 많이 찍는다. 찍다 보면 한두 장 걸리기 마련이다. 실력이 안되면 요행이라도 바라는 마음가짐이다. 훌륭한 자세이다. 물론 실력을 갖추면 금상첨화겠지만.


옷을 좋아하지만 비싼 옷을 사기엔 돈이 아깝다. 어차피 물건을 오래 쓰는 편이라 장만할 때 좋은 것을 구매해도 좋으련만 결국 싼 걸 사게 된다. 싼걸 못 사면 싸게 살 경로를 찾아본다. 당근이라던지 빈티지샵이라던지. 옷은 사봐야 안다더니 사다 보니 감이 잡힌다. 결국에는 비싸든 싸든 손이 많이 가는 옷이 살아남는다. 옷은 샀으면 그냥 많이 입는 게 장땡이다. 옷의 제 할 일은 내가 입어서 추위나 더위를 보호하거나 멋있는 인간이다 착각하게 만드는 역할이다. 어쨌든 샀으면 많이 입어야 한다.


어렸을 당시에 나는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이거 저거 알아보다가 퍼스널쇼퍼에게 조언을 들었는데 배가 나왔으니 배를 감출 플레어스커트를 입어야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플레어스커트를 주야장천 입고 다녔을 때도 있다. 한창 러블리룩이 유행할 때였다. H라인 스커트는 몸매를 드러내니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활동성이 편한 긴치마를 입는 버릇이 어느 순간 생겼고 H라인 롱 스커트를 입으니 사람들이 오히려 내게 더 잘 어울리고 여성스러워 보여서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배가 부하게 떨어지는 플레어스커트보다 배가 판판하게 떨어지는 H라인 스커트가 더 몸매가 좋아 보였고 몸매를 직선적으로 드러내는 편이 더 어울렸다. 물론 시대의 패션트렌드가 바뀐 탓도 있지만 나는 스트레이트한 단정한 느낌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튀는 색감이나 디자인을 입을 때 보다 내가 보기에 다소 심심한 평범한 옷을 입을 때 사람들이 더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멋 부리고 싶을 때 외에는 지극히

평범하게 입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물론 잘 안된다. 타고난 기질이 반항심이라 단정한 옷차림은 나의 추구미가 아니다. 물 빠진 티셔츠나 구겨지고 해진 청바지가 나의 옷의 코어이다. 아 신발은 일하다가 족저근막염이 생겨버려서 운동화 외에는 발이 아프다. 그래서 룩과는 언발란스한 러닝화를 신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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