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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Pie Sep 22. 2024

아낌없이 주는 나무

운동하고 알바하고 봉사하는 캐나다 고딩들

https://www.theabbot.org/giving-tree-ministry

올해부터 학교에서 새로 맡게 된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신 선생의 학교에서는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지역사회나 해외의 형편이 어려운 학교나 단체등을 후원하고 돕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캠페인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데, 존경하옵는 교장의 권유로 강요로 올해부터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캠페인은 지역 사회 안에서는 주로 밴쿠버 가톨릭 교구에서 운영하는 다운타운 노숙인 쉼터나 푸드 뱅크등을 돕기 위해 성금과 물품 등을 지원하고, 해외에서는 우리 학교를 설립한 수도회의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된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학교들이나 난민촌을 돕기도 합니다.


3월 봄방학 기간에는 해외 봉사단 활동도 있습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학생들을 데리고 페루의 빈민가와, 멕시코 국경의 난민촌, 그리고 뉴욕 브롱스의 가난한 지역의 학교를 찾아가서 집도 지어주고, 그 지역 아이들을 위한 스포츠 캠프도 열면서 2주간 봉사를 하고 오는 데, 이를 한두 해도 아니고 수십 년째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도 매우 기특하지만, 이를 위해 황금 같은 봄방학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인솔해서 해외봉사 활동을 다녀오는 동료들은 정말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신 선생의 학교에서는 그 밖에도 많은 학생들이 다채로운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는데, 캐나다의 다른 학교들과 비교해 봐도 그 양과 질에서 월등합니다. 그리고 이는 신 선생이 학교에 대해서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올해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 캠페인은 밴쿠버 다운타운의 노숙인 쉼터와 밴쿠버 남쪽으로 16km 정도 떨어진 농장 지역에서 일하는 해외 이주 노동자들을 돕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습니다. 참 멋지죠? 하지만 부끄럽게도 스스로 지원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아주 뜻깊고 좋은 일이긴 하지만,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데 일을 벌이는 것을 김종국 근손실만큼이나 싫어하는 신 선생이, '그 좋은 일, 앞으론 내가 하겠소!'라며 먼저 지원했을 리는 없지요. 하하!


지난 2022년, 오랫동안 맡았던 교내 봉사단체 지도교사 자리를 내려놓고 나서 지난 2년 동안 비교적 쉬운 수학클럽이나 운영하면서 베짱이(?)처럼 지냈습니다. 그랬더니 예리한 교장 눈에 띄었나 봅니다. 지난봄, 교장이 직접 교실까지 찾아와서 부탁을 하는데, 도저히 거절할 핑계나 명분이 없더군요.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맡게 되었습니다. (근데 또 일단 한번 맡겨지면 군소리 안 하고 꾸역꾸역 열심히 합니다.)


팀을 모집하기 위해 새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모집 공고 구글폼을 뿌렸더니 일주일도 안 돼서 제법 많은 지원자들이 몰렸습니다. 모두 12학년 졸업반 아이들이었는데 하나같이 훈훈하고 괜찮은 녀석들처럼 보여서 마음이 좀 놓였습니다. 리더를 뽑기 위해 12학년 담당 동료들에게 피드백을 구했더니, 다들 제각각 다른 아이들을 추천하는 바람에 오히려 리더를 결정하기가 어렵더군요. 달리 보면 다들 좋은 녀석들이라 누구를 뽑아도 괜찮을 거란 뜻이겠죠.


구글폼 지원서에는 왜 이 캠페인에서 봉사를 하고 싶은지, 그리고 이 일이 지원자 자신과 학교 전체 커뮤니티에게 왜 중요한지 설명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획 및 홍보능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꼭 필요하며, 또한 효율적인 조직관리 및 시간관리 능력도 필요한데, 지원자는 이러한 필요한 능력들을 갖추고 있는지 설명하라는 문제를 냈습니다. 답변서들을 읽어보니 다 괜찮았지만 특히 루카스(가명)의 답변이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번역 실력이 젬병이라 의역을 많이 했음에도 매끄럽지 못합니다.)


루카스: 저는 운이 좋아서 유복한 집안에서 부족한 것 없이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본인의 잘못 없이도 여러 가지 이유로 가난과 질병과 외로움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늘 저에게 많이 받은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선택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이며, 우리의 노력으로 작은 변화라도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행복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 학교도 1922년 설립 이후 언제나 지역 사회와 해외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 왔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중략... 그래서 저는 꼭 이번 기회가 저에게 주어지기를 바라며, 어린 시절 읽었던 쉘 실버슈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제가 가진 것을 나누며 그 기쁨을 함께 느끼고 싶습니다.

저는 지난 2년 동안 여름 방학기간 동안 PNE (밴쿠버 유일의 Amusement Park)에서 Guest Experience 슈퍼바이저로 일을 했습니다. 이 역할은 쉬프트마다 10여 명의 직원들을 관리해야 하기에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과 조직 관리 능력이 꼭 필요한 자리입니다. 주로 고객들의 불만을 응대해야 하는 입장이라서 고객의 이야기를 잘 듣고 공감하면서도, 빠르게 해결책을 찾아서 중재하고 전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티켓 판매와 관리, 현금 발란스도 정확하게 맞춰야 하기 때문에 일의 순서를 정하고 진행과정을 관리하는 일 또한 저의 몫입니다. 또 저의 시간관리 능력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두 가지 스포츠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방과 후 매일 이어지는 강도 높은 학교 풋볼팀 훈련을 빠짐없이 소화하고, 시즌 내내 경기에 참여하면서도, 11학년 전 과목에서 모두 A를 취득했습니다... 중략... 이런 저를 믿고 맡겨 주시면 정말 잘 해낼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때요? 정말 괜찮은 녀석이지 않습니까? 신 선생은 루카스를 이 팀의 리더로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 선발된 6명의 팀원들과 드디어 첫 미팅을 갖기로 했습니다. 경험도 없이 오랫동안 학교에서 매우 성공적으로 해왔던 캠페인을 덜컥 맡게 되어 잠을 설칠 정도로 두렵고 부담이 됩니다. 하지만 덕분에 이렇게 훈훈하고 괜찮은 녀석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나중에 우리 요요와 요둘이도 이렇게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꺼이 봉사하는 훈훈한 녀석들로 자란다면 아빠로서 참 기쁘고 감사할 것 같습니다.


그거 아세요? 캐나다 고등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많이 합니다.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아이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소위 명문 사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많이들 합니다. 조금 오래된 2003년 자료이긴 하지만 캐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캐나다에서는 고등학교 졸업반에 재학 중인 18세 이상 학생들의 69%가 일을 하고 있으며, 16살 이하의 학생들도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43%가 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한국의 청소년들은, 최근 서울시 교육청에서 조사한 자료를 찾아보니 중학생의 2.8%, 고등학생의 11.7%만이 일을 하고 있었으며, 학교 유형별로는 일반고는 3.7%가, 직업계고는 19.9%의 학생들이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대학입시가 너무나 중요하니 당연하겠지요.


한국 학생들은 아침부터 밤늦도록 열심히 공부하느라 바쁘지만, 캐나다 학생들은 이것저것 하는 게 많아서 바쁩니다. 물론 한국에 비할바는 안 되지만 캐나다 아이들도 원하는 대학에 가려면 나름 공부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잘하던 못하던 다들 한두 가지씩 운동을 하고 있으니, 방과 후에는 다들 저녁 늦게까지 운동하느라 바쁩니다. 게다가 운동이 없는 평일이나 주말엔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들도 많으니 캐나다 청소년들의 삶도 나름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한국의 앳된 고등학생들에 비하면, 사회생활을 많이 해본 캐나다 아이들은 도대체 같은 고등학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노안(?)을 자랑하며 학교에서도 어른처럼 성숙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정기적으로 풋볼이나 농구 등 운동 경기를 뛰면서 심판에게 어필하는 연습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나는 수많은 진상 고객들을 응대하면서 얻은 경험과 노하우가 있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만나는 교사들도 협상이나 설득의 대상으로 보고, 매우 능숙하게 어필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곤 하는데, 마음 약한 신 선생은 이런 아이들에게 매번 당하면서도(?) 흐뭇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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