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의 <그 중에 그대를 만나>
작사 김이나 / 작곡 박근태
안녕하세요?
이번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이선희'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별처럼 수 많은 사람들
그 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롤 알아보고
주는 것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건 기적이었음을
- 이선희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 가사 중 -
운명이란 게 있긴 한거야
그럴 걸 믿지 않아
바라지도 않아
라고 말했지 난
니가 떠난 후에 알게 됐어
내 하루가 그 운명이란 것이 아니면
채우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것도 때늦은 후에서야 비로소
이 정도면 나도 어른이야라고
말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너라는 이름앞에
작아지기만 하는 내 모습을 보면
아직도 어린아이인게지
모든 게 기적 같았어
별처럼 수 많은 사람들
그 중에 너란 사람을 만난 것
꿈을 꾸듯 서롤 알아본 것
주는 것 만으로 벅찼던 것
내가 또 사랑을 받은 것
그리고 다시 멀어진 것까지도
하지만 이제 너에겐 난
더 이상 특별한 사람이 아니지
한 때는 너의 모든 것이었던 내가
이제는 수많은 이름들 중 하나일뿐
우리가 운명이었다면
내가 너의 기적이었다면
언젠가 우리 또 다시 만나게 되겠지
이선희는 1984년 강변가요제 대상으로 데뷔했습니다. 아실런지 모르겠지만 <J에게>라는 곡이었죠. 가수 경력이 어느덪 40년이 다 되어 가네요. 당시 여자가수로는 최고의 성량을 자랑할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트레이드 마크였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언젠가부터 힘을 빼고 감성 발라드로 전향을 했더랬습니다. 이번 곡은 2014년 가수 30주년 기념앨범 <SERENDIPY>에 실린 타이틀 곡입니다. 5년만에 복귀하며 발매한 15집 앨범이었는데 많은 리스너들의 사랑을 받았죠.
워낙 유명한 두 사람 김이나 씨와 박근태씨가 작사와 작곡에 참여했습니다. 이 노래는 악기를 최소한으로 사용해 이선희 씨의 목소리를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설계됐죠. 뭐. 소속사 문제로 가수 이승기 씨와 갈등이 있었던 것이 기억나네요.
워낙 오랜 시간 활동한 가수라는 점보다 놀라운 것은 한결같은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맵고 짠 음식도 저어할 정도라고 하니 그 점은 참 높게 평가할만 합니다. <아 옛날이여><알고 싶어요><영><나 항상 그대를><사랑이 지는 이 자리><아름다운 강산><한바탕 웃음으로><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등 히트곡도 다수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레전드라고 불러야겠지요.
이 노래는 제목봐도 딱 감이 오시죠? 네. 우린 이런 상황을 '운명'이라고 부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드라마틱한 사랑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랑에 적용해도 그닥 문제가 없을 만한 제목이죠. 가사의 전반적인 내용은 '운명을 뒤늦게 알아보고 헤어진 후 이를 깨닫고 가슴 아파한다' 정도로 요약이 될 듯 합니다. 가사를 하나씩 살펴보시죠. '그렇게 대단한 운명까진/ 바란 적 없다 생각했는데/ 그대 하나 떠나간 내 하룬 이제/ 운명이 아님 채울 수 없소'가 첫 가사입니다. 흔히들 '운명적 사랑을 믿어' 이런 말들 많이 하잖아요. 노래의 화자 역시 그런 건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바라지도 않았구요. 그런데 님이 떠나간 하루 하루를 보내다 보니 그 사람이 운명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죠. 그게 아니면 뭐로도 설명이 안 된다고 하면서요.
'그렇게 어린이 되었다고/ 자신한 내가 어제 같은데/ 그대라는 인연을 놓치 못하는 내 모습/ 어린아이가 됐소' 부분을 보면 사랑을 안 해 본 것도 아니구 이별을 안 해 본 것도 아니라서 한 사람을 잊는 것이 얼추 뭔지는 안다 정도로 생각하며 화자 자신을 성인이라 여겼건만 결과는 완전 반대였던 거죠. 한 사람에 대한 인연을 좀처럼 놓치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성인은 고사하고 좋아하는 것을 잃었을 때 울고 때쓰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어서 일까요.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별처럼 수 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롤 알아보고/ 주는 것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부분입니다. 가사가 상당히 시적이죠. 저도 이 노래에서 이 부분을 가장 좋아합니다. 별도 해석은 붙이지 않겠습니다. 하하하.
하지만 그렇게 운명같은 사랑도 헤어짐이라는 화살을 끝내 피해가지는 못했던 모양입니다. 원래 강렬하고 운명적인 사랑은 금세 벼락같이 찾아왔다가 그 바닥을 쉽게 들어내는 법이기도 하죠. '나를 꽃처럼 불러주던/ 그대 입술에 핀 내 이름/ 이제 수많은 이름들/ 그 중에 하나되고' 부분이 이별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많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불러주는 내 이름 영희는 그 자체가 특별하죠. 누가 그 이름을 입에 담느냐에 따라 영희라는 이름의 값은 변조를 꾀합니다. 하지만 이별 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이라는 말이 빠진 '사람'만이 남죠. 동명이인 영희 중 하나, 사람들이면 모두 가지고 있는 이름 중에 하나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죠. 특별함이 사라진 자리에 여지없이 평범함이라는 단어가 잽싸게 또아리를 틀며 이별한 자의 슬픔을 자극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랑이란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 한 사람을 알아보고 만나게 되는 일이고 이별이란 역으로 수많은 사람들, 그 중 한 사람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닐까 싶네요. 참 가사가 잘 썼다는 생각이네요. 역시 김이나 씨의 작사 솜씨는 남다른 점이 있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부분만 언급하면 '억겁의 시간이 지나도/ 어쩌면 또 만나' 부분인데요. 노래 가사에 '억겁'이라는 단어를 쓰는 발칙한 발상이 눈에 띄는데요. 억겁은 불교 용어인 건 아시죠? 무한히 오랜 시간이라는 의미인데요. 불교에서는 몇 억겁을 거치냐에 따라 한 나라에서 태어나고 한 집에서 살게 된다고 합니다. 그 중 가장 낮은 옷깃을 스친 인연이 500겁이니까 여러분들과 저는 전생에 최소 500겁을 쌓은 것이겠죠. 하하하.
오늘은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해 짧게 썰을 풀어볼까 합니다. 노래 가사에서는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 그 사람을 만난 것을 운명이라고 표현하고 있죠. 그런데 약간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너를 만날 운명이었어' 같은 게 진짜 있을까요? 저는 없다에 한 표 걸겠습니다.
저는 운명을 확률론으로 접근해 보렵니다. 아주 극히 낮은 확률로요. 저마다 다른 사람끼리 만나기만 하면 다 운명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는 건 좀 어딘가 이상하지 않나요? 인생에서 단 한번 만날 법한 사람과 첫 눈에 반한다든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가 다시 조우한다던가 뭐 이런 경우는 되어야 운명이 잘 들어맞지 않을까요.
여러분들은 이런 일들이 어느 정도의 빈도로 발생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그다지 높지 않다고 보는데요. 간만에 그 어렵다는 양자역학 이야기를 아주 쬐금만 꺼내 보죠. 양자역학에서는 '미시적 세계는 확률로서만 존재한다'라고 말합니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어떤 사물이 어느 시점에 어디에 있을지를 단박에 알아낼 수 있지만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는 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에서는 '있긴 있는데, 어디 있다고 정확히는 말 못하고 거기 있을 확률이 높아 혹은 낮아 정도로만 말할 수 있지' 식으로 표현을 하는거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시겠죠? 이걸 이해하면 미친 놈이라고 하네요.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우린 정상인입니다. 하하하.
아무튼 확률로 이루어진 미시 세계로 이루어진 거시 세계에 사는 우리들은 뭔진 모르지만 그 확률의 오묘한 설계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겠다 하는 강한 추정이 가능합니다. 수많은 사람 그 중에 그대를 만나는 것도 운명이라고 부르기 보단 극히 낮은 확률이 발생했다 정도로 말해야 맞는 것은 아닐까요. 운명은 우리 인간이 확률로만 이루어진 세계가 묻는 질문에 답을 모를 때 시험지에 적어내는 요상한 단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하하.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요즘 커버송을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추후에 좀 다뤄볼까 합니다. 원곡자가 부른 예전 노래는 음질이 좀 떨어져서 어떻게 할까 방법을 생각하다가 현대적 감성을 잘 입혀서 커버하는 형태로 올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요걸로 <가사실종사건>의 운신폭이 좀 더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고요. 하하하. 오늘도 편안한 밤 보내시고요. See you. Coming Soon. (NO.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