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해냄
안녕하세요? <독서유감> 4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진짜 오랜만이네요. 날짜를 보니까 2달 정도가 되었네요. 그동안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바꾸면서 엄청 많은 책을 읽었더랬습니다. 올해 제 개인적인 목표가 연간 기준으로 인생 최대 권수에 도전해 보는 것이거든요. 지금 추세대로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합니다. 좌우가 아니라 층계를 달리하는 시각을 얻기 위한 시도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부지런히 읽어서 <독서유감>에도 양서를 많이 소개하고 동시에 해당 브런치를 어떻게 확장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많이 얻었으면 싶네요.
오늘 소개해 드릴 책은 방송 출연도 많이 하신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누리 교수님의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입니다. 혹시 이 책 읽어보셨나요? 제가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을 밖에선 보는 신선한 시각 때문입니다. 예전에 <파리의 택시 운전사>나 <쎄느강은 좌우를 가르고 한강은 남북을 가르다>는 책을 발간하신 홍세화 작가님이나 러시아 출신의 박노자 작가님이 이런 류의 책을 내셨고 재밌게 읽었더랬죠.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고 자란 지역을 벗어나긴 어려우니까요.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눈이 갔던 내용 몇 가지를 소개해 볼까 하는데요. 68 혁명과 베트남 전쟁, 그리고 일상의 민주주의와 진보-보수 문제 부분입니다. 먼저 여러분 68 혁명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아마도 그때를 경험한 세대가 지금 70대여서 우리에겐 책으로나 배우는 내용이 아닐까 하는데요. 그만큼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실 거라 생각됩니다. 68 혁명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베트남 전쟁이었습니다. 먼저 베트남 전쟁부터 살펴볼까요.
여러분. 베트남전쟁에 지상병을 파병한 유일한 나라가 우리나라인 것을 아셨나요? 대부분 나라가 소수의 비전투병을 보낼 때 우리나라만 외화벌이 등의 이유로 이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데자뷔 되더라구요. 그동안 민주화되며 한층 성숙한 시민 의식이 있기에 베트남 전쟁 때처럼 대규모 파병을 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죠.
그런데 베트남 전쟁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내용이 있더군요. 베트남 전쟁은 1955년부터 75년까지 약 20년에 걸쳐 벌어졌습니다. 초반에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갈라져 남북 베트남이 싸우는 내전 양상을 띠다가 1964년부터는 1973년까지는 미국 등 외국 군대가 개입하고 전선이 인근 캄보디아와 라오스로 확대되었죠. 이때 우리나라도 참전하게 됩니다.
북한에서 남파한 무장공작원 김신조라고 아시는지요? 베트남 전쟁에서 남한의 대규모 참전으로 공산주의 진영이 불리해지자 북베트남의 호찌민이 북한에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러자 당시 김정일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안보 사정으로 파병은 어려우나 남한이 더 이상 군대를 보내는 걸 막아주겠다'라고요. 그러고 나서 1968년 북한에서 무장공작원 김신조가 청와대를 습격하려 내려와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죠. 소름. 쫙. 맥락이 그려지시나요? 그해에만 308회에 걸친 남북 사이의 무력 충돌이 있었다고 하네요. 당시 대통령이 박정희였는데, 안보 문제를 내세워 추가 파병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베트남 전쟁하면 고엽제나 람보 같은 영화에서 사용되는 콘텐츠로만 이해했던 저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네요. 찾아보니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5.8만 명이 사망, 15만 명이 부상, 2.1만 명이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 역시 대규모 파병을 했던 만큼 참전 병력이 32만 명에 이르고 사망자 5,099명, 부상자 11,232명, 실종자 4명 그리고 고엽제로 의한 피해자수가 15.9만명으로 집계되어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보상을 받아 경제발전의 기반을 닦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베트남 전쟁 여파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예비군 훈련이나 국민교육헌장, 교련 등 우리 사회 곳곳에 병영문화가 도입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교련 시간이 있었고 총과 무게가 비슷한 가짜 총을 들고 총검술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니 그 출발이 베트남 전쟁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더군요.
자. 다시 68 혁명으로 돌아가 보죠. 1968년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거대한 사회 변혁 운동이 일어납니다. 1964년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고 1965년 텔레비전이 전 세계에 보급된 영향이 컸죠. 미소가 군비경쟁 모드에 들어가 핵탄두 쌓기에 열을 올리고 베트남을 무대로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을 다수의 사람들이 보면서 젊은 세대가 이 세계에 회의를 품고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해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이라는 구호를 들고 일어난 것이죠. 파리에서 시작되었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미국을 넘어 일본까지 갔으나 한국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김누리 교수님은 이 저점을 안타까워 하시더군요.
70년대 초반까지 세계적으로 거대한 변화를 촉발한 사건입니다. 그래서 혁명이라는 말이 뒤에 붙죠. 각 나라에 퍼진 68 혁명의 온기는 사회 변혁이나 노예 해방 등으로 이어지면 기존 사회 질서를 수정, 보완. 개조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때 가장 두각을 나타낸 나라가 독일이죠. 학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주는 대학 교육이라든가 노동자가 절반을 차지하는 이사회, 그리고 아우슈비츠에 대한 역사 비판이 이때 이루어지죠. 일명 과거 청산과 미래 기획이 함께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나라도 일제 청산이나 박정희 독재에서 벗어난 민주주의 등의 과제를 다룰 절호의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 못한 게 역사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죠.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 챕터도 생각해 볼만한 구석이 있습니다. 민주화 항쟁에 이어 30년 만에 이루어진 촛불집회가 바로 광장 민주주의로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는 타의 추정을 부러워하죠. 세계적으로도 이 부분에서는 우리나라를 배워야 한다고 할 정도니까요. 그런데 일상의 민주주의로 가면 완전 딴 나라가 된다고 김누리 교수님은 말씀하시고 있죠. 기업의 경영 방식, 갑질 문화, 복지 제도 등은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죠. 68 혁명의 부재가 나은 산물로 노인빈곤, 자살율 등을 떠올리면 경제적 성장이 무색할 정도죠.
마지막으로 해방 이후 지속되어 온 진보와 보수를 보는 우리의 시각에 대한 것인데요. 여러분의 정치 성향은 진보인가요? 보수인가요? 조선일보를 좋아하면 보수고 한겨레를 좋아하면 진보다. 빨간당은 보수고 파란당은 진보다. 저는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세뇌되어 자라왔습니다. 이 책을 보니 우리나라에는 진보가 사라지고 수구와 보수 밖에 없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냥 보수와 보수의 자리바꿈인거죠. 예전에 철새 정치인이라는 단어가 신문에 오르락내리락하던 때가 있었는데요. 돌이켜 보면 그 당이나 저 당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그 결과 정치 효능감이 떨어지고 누가 되도 비슷한 양상을 띠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 지더군요.
이 책은 대한민국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갇힌 우리들에게 신선한 시각을 제공해 줍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살며 나도 모르게 습득한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 주죠. 그리고 우리나라의 많은 분들이 파병을 간 베트남 전쟁에 대해 그동안 너무 무심했구나 하는 자기반성과 역사 의식을 일깨워 줍니다. 예전에 도올 교수님의 <동아시아 30년 사>를 보고 6.25 전쟁을 보는 뷰가 바뀌었는데, 그 때의 흥분과 전율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요즘엔 외국인인데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분들이 많죠. 재미로 자국에서는 이런데, 대한민국은 이렇다 하는 일상적인 이야기가 주입니다.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왜 그렇게 두 나라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단순히 신기하다로 끝날 것이 아니라 그 사회 역시 그럴만하니까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 테니까요. 그 뒷배경에 대한 공부를 스킵해 온 건 아닌지 하고 말이죠. 이 책이 그랬습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독일의 법과 제도가 이런 역사적 맥락 위에서 만들어진 거구나 하는 이해를 바탕으로 그럼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거든요.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책 제목처럼 우리의 불행이 당연하지 않은 이유를 함께 고민해 봤음 싶네요. 이것으로 4번째 독서유감을 마치겠습니다.
PS. 좀 글이 길어졌네요. 오래간만에 쓰다 보니 이제 감이 떨어졌나 봐요. 하하하. 제 개인적으로 미국보다는 유럽의 교육이나 사회 제도가 늘 부러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학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지원해 주는 나라라니 하면서요. 먼 훗날 우리나라도 줄어드는 출산율 때문에 불가피하게 무상교육은 될 듯 한데요. 자발적이라기 보다는 타율적이긴 하지만요. 독일이 무려 반세기 전부터 그걸 해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내가 지구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지금 우리가 일하는 노동시간만 봐도 미국의 30년 전, 유럽의 50년 전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동시대를 살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사는 것 같죠. 이 책을 통해 부러움을 이해 단계로 그리고 실천을 위한 의식의 변화를 도모했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그럼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