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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Mar 14. 2023

연고 없는 타지에서 하루 만에 집 구하기(3)-셀기꾼

"실례합니다."

05. 첫 번째 집
"죄송한데 여기는 좀 힘들 것 같아요.
혹시 나머지 두 집도 다 이런가요?"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노후화되었다는 느낌이 크게 체감되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거층에 도착하니 더 크게 실감되었다. 복도는 어두웠고 낙후되어 있었다. 실장님을 따라 해당 호수를 찾아가 벨을 눌렀고, 곧 안에 있던 세입자분이 문을 열어주었다. "실례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집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날 처음 알았다. 적어도 살고 싶은지 아닌지는 3초 안에 판가름이 난다는 걸.


  어렸을 때 보던 TV프로그램인 세상에 이런 일이나 화성인바이러스에 나올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현관의 바닥재가 깨져있었고, 마치 집이 짐에 잡아 먹힌 듯한 모습이었다. 조심스럽게 집안을 살펴보았다. 주방 찬장을 열어보았고, 바퀴 약이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속으로 외마디가 나왔다. 실장님과 세입자 분이 같이 집을 설명해 주었다. 이곳엔 침대도 있었다. 그런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침대 매트리스가 프레임에서 벗어나 인사를 하고 있었다.


 창문은 여러 겹의 천 같은 것으로 덮여있어 밖이 보이지 않았다. 침침했다. 무언가 성의를 보여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창 밖을 보고 싶다고 했다. 커튼을 살짝 들었는데 창문이 불투명한 것인지 밖이 보이지 않았다. 가로막고 있는 짐들이 많아 편하게 창문을 열어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도 함께 들었다. 난 그저 밖이 보이는지를 확인하고 싶었기에 다시 손으로 커튼을 젖혔다. 그리고 보고 말았다. 벽에 붙어 있다가 놀라서 빠르게 기어 올라가는 그것을.


 살고 있는 분에게 예의가 아닌 것을 안다. 비록 소리는 막았어도 자동반사적으로 몸서리 쳐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물론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대학 시절 자취하며 수도 없이 마주했다. 그렇다고 다시 마주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 시선을 끝으로 집을 다 둘러봤다는 눈빛으로 오빠를 보았고, 오빠도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세입자분은 짐은 바로 빼줄 수 있다고, 정수기도 기본 옵션이라고 말했다. 이분은 왜 같은 건물의 가까운 다른 호수로 이사를 하시는 건지 궁금했다. 물어보진 못했고 잘 봤다는 말을 끝으로 첫 번째 집을 나왔다.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집을 나와 실장님이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했다. "죄송한데 좀 힘들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그분도 동감이라는 의사표현을 했다. 자신도 집을 보여주면서 조금 그랬다며. 나중에 오빠랑 이야기하며 알게 되었는데, 오빠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새끼 바퀴를 봤다고 했다.


 건물 밖으로 나와 혹시 나머지 두 집도 컨디션이 모두 동일한지 물었다. 가본 집도 있고 안 가본 집도 있어서 나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06. 부동산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방문하기 전에 했던 생각

 

부동산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방문하기 전, 앱을 통해 각 중개사무소가 맡고 있는 매물을 봤다.


EX. 1매물-A사무소 / 2매물-B사무소 / 3매물-C사무소

 1번 매물을 보기 위해서는 A사무소에, 2번 매물을 보기 위해서는 B사무소에 가야만 하는 줄로 알았다. 하지만 지역 특성상인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A사무소에서도 앱에서 봤던 것 외의 다른 매물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어떠한 조건을 이야기하면 실장님이 전화로 다른 부동산중개소 소장님들과 통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주변 소장님들과 아는 사이라서 통화로 조율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100% 이해하진 못했지만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07. 두 번째 집
'셀기꾼'은 사람에게만 붙이는 수식어가 아니었다


 신에게는 아직 2번의 기회가 남았습니다. 아직 두 군데나 남았으니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 집으로 이동하기 전, 실장님이 어딘가와 통화를 했다. 그곳의 소장님이 여자 혼자 살기엔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단다. 그냥 막 아무렇게 살아도 상관없는 사람이라면 모르겠는데, 어느 정도는 그래도 그런 걸(?) 원한다면 추천하지 않는다고.


 '그런 것'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모르겠으나 첫 번째 집의 컨디션을 겪고 난 이후 이런 말을 들으니 여기와 비슷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곳은 보지 않기로 했다. 1+1이 가득한 시대에서 2-1=1이 되었다.


 그래도 아직 한 곳이 남았다. 여긴 앱으로 10번도 넘게 들어가 본 후보 1순위였다. 위치가 좋았고, 이 정도면 준수했다. 내가 엄청 좋은 집에 살길 원하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던 곳이었다. 그리고 다 보고서도 별로라면 다른 부동산에 갈 수도 있는 일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집으로 향했다.


 실장님은 운전 실력이 좋았다. 이번에도 차에서 내려 입구까지 안내를 해주었다. 첫 번째 집과 동일한 느낌의 건물 입구와 복도였다. 이곳 역시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이었는데, 출근을 한 상황이라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가 둘러볼 수 있었다. 외출을 했으니 더욱 그럴 수 있겠지만 집의 분위기가 냉랭하고 어두침침했다. 이 집의 세입자분은 집에서 밥을 해 먹지 않는 것 같았다. 살림살이가 없고 집이 휑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내가 봤던 사진 속의 그 집이 없었다는 것이다. 공간은 원룸치고 넓었다. 하지만 여전히 낙후되어 있단 느낌이 강해 아까 그 충격의 연장선인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크리스트를 펼치는 것이 무의미했다. 여기서 살고 싶지 않았다.


 대단한 조건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 엄청난 신축 건물에 옵션 빵빵한 곳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감수할 생각이 있었다. 그냥 대학교 다닐 때 친구들 살던 자취방 정도를 생각했었다. 이 금액대도 내 기준에는 과하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이 금액대에 내가 원하는 삶은 과한 것이었다. 그 정도 자취방은 '그냥'이 아니었나 보다.


 대학 시절 자취했던 집도 다 쓰러져가는 원룸이었다. 세면대도 없고, 샤워라도 한 번 하면 욕실 밖으로 물이 줄줄 새어나갔다. 매번 문 앞에 걸레를 깔아 두고 샤워가 끝나면 걸레를 짜 가며 물기를 닦아야 했다.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던 집. 난 그 공간을 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새벽까지 작업을 하고, 들어가서 잠깐 씻고, 다음 날 아침까지 눈만 붙이는 임시 숙소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 기간은 룸메이트가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 바퀴가 출몰한 이후로는 더욱 들어가기 싫었지만, 피곤한 일상을 견디다 보니 점점 적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맡에 있는 휴지를 말아 옆에 누워있는 바퀴를 퍽퍽 찍으며 일어났다. 그런 곳에서도 살고, 쓰레기장 같은 작업실에서도 먹고 잤던 나인데. 나름 생활력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먼 타지에서, 이런 집에서 혼자 사느니 차라리 입사 포기를 하고 재취업준비가 낫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직서를 내고 올라온 게 후회됐다. 차라리 거기서 일했다면 환경 자체도 익숙하고, 취업 준비하면서 돈이라도 모을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돈 관리를 형편없이 했단 걸 이제야 깨달았다. 살면서 분에 넘치는 소비를 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면 분에 맞는 소비를 생각 없이 했던 것이 문제였다. 100만 원 한 번에 쓰기는 겁내어도 1000원 1000번 쓰는 건 아무렇지 않게 한 것이 내 소비의 문제였다. 내 기준에서 살만한 집을 보기엔 턱없이 부족한 자금에 한 번 울고, 얼마 전에 들은 친척동생의 억 소리 나는 저축 소식이 생각나 두 번 울었다.


 그렇게 두 번째 집에서 나왔다. 어제 입사 의사를 메일로 회신했는데 다시 취소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아직 이곳에서 뿌리내린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때 오빠가 잠깐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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