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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Mar 17. 2023

연고 없는 타지에서 하루 만에 집 구하기(4)-돈의 맛

빨간색이 뒤덮인 곳으로 넘어오다

 오빠가 말하길, 아빠가 사전에 보증금을 얼마까지 지원해 주겠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니가 생각이 있으면 이 정도 조건으로 변경해서 알아봐도 좋다고 했다.




08. 돈의 맛
빨간색이 뒤덮인 곳으로 넘어오다


 그 길로 다시 사무실에 돌아왔고, 계약 형태를 반전세로 변경했다. 보증금이 높아지는 대신 월세가 낮아지는 형태였다. 아빠 등골 빼먹는단 미안함과 동시에, 아까와 같은 집에선 벗어나고 싶단 생각이 합쳐져 표정이 볼만해졌다. 옆에서 오빠가 말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아직 결정된 것 아무것도 없다고.


 코로나 시국에는 공실이 넘치다시피 했지만 작년부터 이 일대에 채용이 크게 늘어 빈 집이 없다고 했다. 기간을 조금 두고 집을 보았다면 딱 맞는 집이 있는데, 즉시 입주 조건으로는 볼 수 있는 매물이 한정적이라고 했다. 그렇게 다시 세 가지로 볼 수 있는 집이 추려졌다. 같은 3이지만 처음과는 많이 달라진 3이었다. 보증금의 앞자릿수가 바뀌고, 바뀌고, 바뀌자 볼 수 있는 집이 달라졌다. 사무소에 들어왔을 때 보았던 지도의 빨간색으로 뒤덮였던 곳. 그 일대로 간다.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뷰가 달랐다. 이곳은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오피스텔이 즐비한 이른바 오피스텔촌이었다. 줄줄이 서있는 건물들을 보는데 아까와는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많은 것이 달랐다. 공기는 쾌적했고, 건물 입구에는 쓰레기들이 없었다. 건물마다 복도가 밝았으며, 집에는 환한 햇빛이 들어왔다. 투머치란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집들뿐이었다. 좁았지만 완벽했다. 대비효과를 실감했다. 돈이란 건 이런 거구나.



첫 번째 집

 오늘 세입자가 방을 빼 나간 집이었다. 1년을 살았다고 했는데 완전 새집이었다. 아침에 보일러를 틀었을 테니 집이 따뜻했다. 이곳에 산다고 생각하니 호사와 같이 느껴졌다. 건조기에 드레스룸까지 있는 집까지는 필요하지 않았다. 추후 오빠는 이 집이 별로라고 했다. 다른 호수와 다르게 창이 양쪽으로 나 있는 것을 보고 햇살이 많이 들어와 좋겠다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그것으로 인한 겨울 추위를 생각하는 오빠였다. 이 많은 걸 언제 다 공부했는지 오빠는 매번 나보다 훨씬 세심하게 보고, 넓게 봤다.



두 번째 집

 어떤 집이든 현관에 들어오는 순간 긴지 아닌지는 마음속으로 판가름 난다는 걸 느낀 두 번째 순간이었다. 같은 금액에 시설도 대부분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한 집들이었지만, 아까보다 훨씬 넓어진 내부였다. 드레스룸에 건조기는 없었지만 그만큼의 공간이 더 있었다. 그리고 수납할 공간이 정말 많았다. 입주이기까지 해서 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수 중의 하수로 보이고 싶지 않아 티 내지는 않았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실장님은 아까와 내 표정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마스크도 썼는데 티가 났나 보다. 조망도, 내부도 무엇 하나 빠짐없는 집이었다. 부족한 부분이 있을지언정, 차고 넘치는 수준인 건 변함없었다. 처음 보았던 집의 임팩트가 강해 그 이후로는 어느 집이든 감사하게 느껴진 것이 컸으리라 생각했다. 이어서 마지막 세 번째 집까지 투어를 마쳤다.


 사무실에 돌아가 상의할 시간이 필요해 따로 연락을 드리기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오후 3-4시경이었다. 집을 나선 지 12시간이 지났다. 채용 검진을 앞두고 전날 저녁부터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기에 갈증과 배고픔이 밀려왔다. 오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근처 패스트푸드점에 들러 햄버거세트 2개를 주문했다. 음식은 빠르게 나왔고 오빠에게 말했다. "우리 바쁘지만 일단 3분만 먹자. 말없이 3분만 먹자. 그러고 나서 상의하자."


 2번 집이 가장 마음에 드는 것으로 의견이 일치됐다. 돈의 중요성을 체감하냐는 오빠의 물음에 햄버거를 다 씹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부모님께 감사하고 감사하고, 죄송하고 죄송했다. "니 만약 아빠가 안 도와준다 했으면 어쩔래. 아까 거기 들어가서 살아야 하는 거다."라는 오빠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배고픔을 달랜 후, 더 볼 수 있는 집이 있는지 근처의 부동산에 전화를 돌렸다. 이 조건에 즉시 입주 가능한 곳은 이 일대에 없다는 답변들이 돌아왔다. 쌀쌀맞은 분도 있었지만, 금리가 올라 집주인들이 전세보다는 월세를 선호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분도 있었다. 다른 부동산에도 가능한 열심히 발품을 팔 생각이었는데,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집들을 다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곳을 더 가보지는 않아도 되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사무실에 전화해 집을 계약하겠다고 했다. 부동산에서 확인 후 전화를 준다고 했다. 우리가 부동산에 있을 때에도 집을 보고 간 사람들이 많았다. 마음을 결정하고 나니 누군가 그 사이에 집을 채간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났다. 연락을 기다리는 1분이 10분 같았다. 얼마 뒤 연락이 왔고, 부동산으로 향했다.



(다음 편)

"그 가격으론 안 되겠다고요?"

하루 만에 바뀌는 집주인의 마음, 을이란 이런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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