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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Apr 17. 2023

연고 없는 타지에서 하루 만에 집 구하기(6)-인천행

28년 생애 토박이를 벗어나다

11. 본격 이사 준비
내 방과의 이별



 이사까지 남은 시간은 단 하루. 요즘 들어 계속 불편했던 치아 탓에 아침 일찍 치과에 다녀왔다. 검진 결과 이가 엄청나게 썩어있었다. 작년 사랑니 발치 및 구강검진을 위해 치과에 3-4차례 방문했으나 모두 이상 없단 소견이 나왔다. 그러나 계속되는 불편감에 X-ray를 찍어보니 겉만 멀쩡했고 안쪽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임시 조치를 취했고, 아마 한쪽은 신경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 그래도 급한불은 껐으니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짐을 빠르게 챙기기 시작했다.


 정리하는 시간은 여행 갈 때보다 조금 더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사를 위한 짐정리는 다른 차원이었다. 빨리 끝나면 친구들과 잠깐 얼굴 보고 인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럴 틈조차 나지 않았다. 아쉽지만 톡으로 인사를 했고, 고맙게도 축하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엄마 아빠는 내 방을 보고서 아예 안 내려올 거냐며 서운한 기색을 보이셨다. 처음엔 오빠가 했던 말처럼 최소한의 짐만 챙기려 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지금 잠깐 여행을 가는 게 아니라, 최소 1년은 '살러 간다'는 것을 실감했다. 바리바리 싸들고 갈 것은 아니더라도, 지출을 줄이기 위해 가능한 챙겨갈 수 있는 것들은 가져가기로 했다. 근무복은 나올 테니 옷은 최소한만 챙기고, 나머지 필요한 것들을 늘렸다.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듯했던 이삿짐 정리를 마치니 어느새 밤 12시. 많은 짐을 두고 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챙길 것이 이렇게나 많다니.


  가족들에게 말로는 못할 것 같아 작은 편지를 썼다. 그동안 친구들, 지인들에게만 쓸 줄 알았지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지 않은 게 참 오래됐다. 고맙고, 미안하고, 아쉽고, 서럽고. 편지를 쓰는 동안 눈물, 콧물이 줄줄 흘러서 글 한 줄 쓰고 티슈 한 장을 뽑길 반복했다.





12. 나 진짜 가?
28년 생애 토박이에서 벗어나다


 아침 6시 반, 온 가족이 인천행 길에 올랐다. 절대 다 들어가지 않을 것만 같던 가방들이 기적같이 차 안에 다 들어갔다. 트렁크에 쑤셔 넣는 과정에서 빨래바구니가 박살 나 버리고 출발해야 했지만 말이다. 다 같이 피로회복제를 한 병씩 복용하고 출발했다. 좋은 예후인지 주말임에도 도로 위엔 차들이 없었다. 그럼에도 울산에서 인천까지 약 5시간은 정말 먼 여정이었다. 이때까지도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게 크게 실감 나지 않아 마치 다 같이 이사를 가거나, 다 함께 여행을 가는 듯한 느낌도 있었다. 


 이동하는 중에는 이사 갈 집의 인터넷 연결을 알아봤다. 엄마 아빠 밑이 얼마나 안락한 곳이었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지금까지 TV는 그냥 틀면 나오는 줄 알았다. 보일러는 터치만 하면 켜고 끄는 것인 줄 알았다. 침대, 와이파이는 당연히 있는 것인 줄 알았다. 모든 걸 다 직접 신청하고, 직접 사고, 장만해야 한다는 걸 몰랐다. 대학시절 자취할 때에도 랜선 포트에 랜선을 꽂으면 인터넷이 당연히 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 모든 걸 사용하고 유지하는 데 다달이 돈이 들어간다는 걸 몰랐다.


 휴게소마다 들러 잠깐씩 쉬어 가니, 그 멀어 보이던 곳도 어느새 도착했다. 작년부터 채용이 많아 집이 빠르게 나갔다던 부동산 소장님 말대로인지, 부동산엔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락날락했다. 코로나 때는 집값이 절반 이상 떨어지기도 했는데, 회복이 되면서 다시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고 한다. 집주인들은 계약이 끝나면 임차인을 빨리 내보내고, 올린 가격으로 새로운 세입자를 받길 원한다고 했다. 그래서 회복과 함께 집값이 더 올랐다고 했고, 그 과정에서 내가 겪은 것처럼 5만 원을 올리는 경우도 가끔 있다고 했다. 작은 해프닝들이 여럿 있었지만 계약까지 무사히 잘 끝마쳤다. 잔금을 치르고, 복비도 내고, 이제 정말 입주만 남았다.



(다음 편)

평안하지만은 않은 입주 첫날, 돈을 또 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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