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정말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고, 정말 사랑받을만한 사람인데...'
왜 너는 내가 얼마나 사랑받을만한 사람인지 말하면서, 더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을까. 그게 얼마나 모순된 말인지, 얼마나 오래도록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정말 너는 몰랐을까.
나한테 왜 그랬어? 물으면 너가 좋아서 네 의지대로 한 거잖아 하는 답이 돌아온다. 적정선이 그어졌을 때 멈추지 않은 건 네 의지였잖아. 왜 이제 와서 남 탓을 해?
그러게. 왜 나는 그들처럼 하지 못했을까. 허용하는 범위를 정해두고 그 안에 들일만한 사람을 골라내고 선을 넘은 사람들과 냉정히 거리를 두는 그런 일을 왜 나는 하지 못했을까. 왜 나를 보호하는 일에 번번히 실패했을까.
내가 사랑에 주린 사람이라 그런 것 아닌지. 그래서 선을 그어두면 아무도 내게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절박해져서 그런 게 아닌지. 그래서 그렇게 자주 벌거벗은 마음을 들고 다니며 구걸한 건 아닌지. 그게 '다정함'으로 포장된 것은 아닌지.
당신이 보기에 내가 다정한 사람이라서 내게 좋을 일일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한테 남은 건 무어인지 모르겠다. 그냥 착취하기 적당하고 쉽다는 소리는 아닌가. 가늘게 실눈을 뜨고 의심을 한다. 내가 다정하면 세상도 다정하고 사람들도 다정해야지, 생떼도 쓰고 싶다.
그러나 반드시 찾아오는 불운을 막을 도리가 없다. 내 다정함이 나를 상하게 한다. 내 다정함에는 운이 필요하다. 아니, 사실 운보다 어떤 충격에도 깨지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마음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적정선을 넘어가면 마음은 여지없이 깨지고 상처가 난다. 적정선을 지키기가 어렵고, 언제 어디에서든 그게 늘 문제였다.
있지, 나는 아직도 다정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 그럴때면 작게 소름이 돋아. 지금 내가 감당못할 짓을 하고 있다고 일깨워주는 말 같아서. 그런 마음으로 한 말이 아닐텐데, 그런 무서운 기분이 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