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자 팀장님은 아깝다고 좀더 생각해보는 게 어떠냐고 하셨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휴가를 썼다. 메신저 알림도 꺼놓고서 쭉 쉬기로 결심했다. 주변에 이 사실을 알리자 누구는 해외 여행을, 누구는 제주도나 국내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다. 결론은 집이나 익숙한 장소에서 시간 보내지 말라고, 어떻게든 집 밖으로 나가 익숙한 곳을 벗어나 생각할 시간을 가지라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어떤 곳에도 갈 수 없다. 길을 잃었다. 나는 나인데, 내가 아닌 것 같다. 이것부터가 글러먹었다. 나는 내가 어떻게 생겨먹은지 모르겠어. 도무지 알 수가 없어. 회사를 다니는동안 회색빛 인간이 된 기분이다.
한때 '너는 좋아하는 게 뚜렷해서 멋있다'라는 말을 들었고, 그 말에 동의하며 행복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내 모습이 무척 낯설고 무서웠다. 내가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인지 까먹어서,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도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도 기억나지 않아 막막했다.
빛깔 뿐만 아니라 소리도 그렇다. 내가 말하면 다들 이렇게 되묻는다. "예, 뭐라고요?" 목소리가 작기 때문인데, 매번 그 반응을 볼 때마다 곤혹스러워 주눅든다. 반복되는 만큼 스스로 부끄럽다. 다시 용기를 쥐어짜내서 소리를 낸다. 그렇게 다시 힘 써 크게 말해야 상대방이 알아듣는다. 세상에, 말하는 데에 용기가 필요하다니. 예전에는 어딜 가든 똑부러지게 말했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용기가 필요하다. 일상적인 대화가 비일상적이게 되었다. 용기씩이나 필요한 일이 되었다.
힘들다고 퇴사 이야기를 꺼내니 일이 물러졌다. 그렇지만 회사에서 굴러지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럴까. 모니터 속 화면을 보면서 눈은 영혼없이 비어있다. 멍 때린다.
집으로 갈 버스를 타려 정류장에 도착했다. 수년간 그곳을 거쳐 집에 갔기 때문에 풍경은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었던 곳이다. 그런데 그날은 고개를 들어보니 전에 없던 거대한 물체가 보였다. 어두운 저녁에 텅 빈 채 빛나는 고층 빌딩. 뻥 뚫려있던 곳에 눈 깜짝할 사이에 건물이 생겼다. 이 건물은 오랫동안 지어지는 중이었으나 그동안은 가림막에 가려 티가 나지 않았던 거다. 가림막 건너편에서 보고 있었으니 공사가 진척이 되는 줄도 몰랐다.
높은 건물을 세우기 위해서는 깊게 파야 한다던 말을 떠올렸다. 안정적이기 때문이던가. 여전히 건축 중이라 부지런히 엘리베이터가 물건과 사람을 실어나르는 것이 멀리에서도 보였다. 부지런히 위로, 위로 향한다.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빌딩을 보며 다시 스스로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