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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선 Feb 27. 2023

화장실에 숨어서 크래커를 먹었다

모두가 식사를 하는 곳에서 가장 굶주린 사람


출근 준비를 하다가 주방으로 향한다. 전자레인지 밑 간식 창고 안을 손으로 더듬거리면 참 크래커 한 봉지가 손에 잡힌다. 서둘러 가방 속에 찔러 넣고 가장 만만하고 튼튼한 검정 운동화를 꺼내 신는다. 그렇게 향하는 곳은 소위 말하는 ‘인스타 핫플’ 브런치 카페였다.


‘Breakfast’와 ‘Lunch’가 합쳐진 그 말처럼, 브런치 가게는 애매한 식사 시간부터 확실한 식사 시간까지 손님들로 가득하다. 그동안 손님들은 식사를 했고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근로기준법상 고용주는 8시간 근무자에게 1시간의 휴식 시간을 주도록 되어있다. 보통은 그 시간에 식사를 한다.


면접 날, 담당자는 “저희는 점심으로 진짜 맛있는 뷔페식을 줘요.” 하며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순 사기였다. 알바들이 그만두는 바람에 로테이션 인원이 부족하다고 했다. ‘바쁜 점심 시간 말고, 근무 시간이 끝나거든 그때 밥을 먹고 가라.’ 심지어 생색도 냈다. '그래도 뷔페식이니 얼마나 맛있냐, 남는 음식은 싸가도 좋다'는 식이었다.


8시간을 서서 일하면 당장 집에 가서 쉬고 싶어지는데, 5분 거리의 집밥을 두고 여기 앉아 눈칫밥을 먹고 있을 이유가 어디 있나? 머릿속으로는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당장의 굶주림은 퇴근 후 뷔페식, 혹은 집밥보다도 가까웠다. 견디기 힘들었던 나는 그동안 허락된 음식을 찾았다.


첫번째는 라떼 아트가 망해버려서 손님에게는 나갈 수 없는 커피였다. 손님들이 보지 못하도록 바 안에 쭈그리고 앉아 벌컥벌컥 마셨다. 빈 속에 카페인을 있는대로 들이부은 탓에 멀미가 날 때도 있었지만 주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의 수치스러움보다야 나았다.


그 다음은 손님이 예약을 취소하는 바람에 애매하게 남은 케이크였다. 그것 또한 싱크대를 가림막 삼아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다른 알바생들과 나눠 먹었다. 단번에 입 안으로 밀어넣어 꿀꺽 삼키고 벌떡 일어섰다. 손님들에게 들키면 안되니까.


매일 오늘도 어느 착한 손님이 예약을 취소하기를 기도했지만 그런 행운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예측 불가하게 남겨지는 음식들을 필사적으로 수집하여 속을 채웠다. 손님이 나간 테이블을 치우고 남은 음식물을 접시에 담아 주방으로 들어왔을 때, 음식물 쓰레기통 앞에 서서 갈등했다. 내 안의 아주 기본적인 무언가가 바스라지고 있었다.


견딜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집에서 챙겨온 참 크래커의 진가는 이때 발휘되었다.


“매니저님, 저 화장실 체크하고 오겠습니다!”


화장실 가는 길에 사물함에 들러 가방 속 참 크래커 한 봉지를 챙긴다. 우선은 화장실 상태를 체크한다. 변기가 막힌 곳은 없는지, 핸드타올이 모자라지는 않는지, 핸드워시는 충분한지, 세면대 위에 물기가 너무 많지는 않은지. 이런 저런 점검을 하는 동안 손님들이 모두 나가면 아무렇지 않은 척 화장실 칸에 들어간다.


참 크래커를 꺼내서 조용히 봉지를 뜯는다. 하나를 입에 통째로 넣고 살짝 녹여가며 먹어야 한다. 그래야 수상한 소리 한번 안내고 조용하게 먹을 수 있다. 마지막 하나를 먹을 때에는 쓰지도 않은 변기 물을 내린다. “쏴아아” 소리가 날 때, 그제야 시원하게 “와삭와삭” 소리 내어 씹어 삼킨다.


배곯는 사람 하나 없을 것 같이 아주 멋들어지게 꾸며진 건물 구석. 나를 고용한 하청 업체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퇴사 의사를 전달했다. 왜 그만두느냐고 묻는 말에 법정 휴게 시간도 없이 굶으며 일했다고 답했다.


안타까워서 였는지 입막음을 위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내가 넉넉히 챙겨 받을 수 있도록 힘을 써주겠다고 말했고, 며칠 후 월급이 들어왔다. 휴게 시간 1시간에 해당하는 시급을 1.5배로 계산해줬다는 말과 함께였다.


단돈 만 이천 원짜리였다. 화장실에서 숨죽여서 하나하나 녹여먹던 참 크래커도. 손님이 남긴 음식이라도 먹고 싶어 음식물 쓰레기통 앞에서 갈등한 순간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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