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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치나 Apr 29. 2024

리뷰)시간여행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후속작. 다만 후술하겠지만 난쏘공에 비해 은유적이고 실험적인 서술, 그리고 우화적인 면모가 늘어났기에 이전 작의 이름만 따온 별개의 작품이라 보는 것이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여러 단편 소설들 모음과 중편 소설이며 이 책이 이름이기도 한 '시간여행'이 합쳐진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록된 몇몇 작품들에서 난쏘공의 인물들이 나오지만, 딱히 이 점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보는 데 지장은 없다.


    시간여행과 난쏘공의 가장 큰 차이점은 현실과 환상의 주객이다. 난쏘공 연작의 경우 현실을 배경으로 동화적인 묘사를 더하기에 현실의 어떠한 부분을 건드리는지 파악하기 쉬운 편이지만, 시간여행은 환상의 비중이 더 많아지고 이를 위한 특이하고 실험적인 연출이 합쳐지며 알맹이를 파악하기가 어려워졌다. 또한 난쏘공은 글의 분위기가 일률적이지만 시간여행은 글마다 주제와 분위기가 확확 변하는 편이다.


    현실을 배경으로 동화를 이야기하냐, 동화를 배경으로 현실을 이야기하냐의 차이지만, 이에 더해 작가가 글을 대하는 태도 또한 사뭇 다르다. 난쏘공이 일관된 주제와 서술 방식으로 연작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면, 시간여행은 난쏘공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다. 난쏘공과 비슷한 느낌의 단편이 이어진다 싶더니 갑자기 짧은 콩트가 이어지고, 극본이 이어지고, 작가의 자전적인 토로가 이어진다. 짧은 콩트나 극본은 난쏘공의 일정 부분을 극대화했다고 볼 수 있지만, 단편들 사이에 갑작스럽게 나오는 작가의 허심탄회한 자기 고백은 아무래도 매우 당황스럽다.


    특이하고 실험적인 서술 방식과 일관되지 않은 글의 분위기 때문도 있지만, 이 책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미완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 다른 단편들 또한 그렇지만 중편 소설인 '시간여행'도 하나의 시도일 뿐 작가 자신만의 새로운 서술 방식을 완성하지는 못했다. 난쏘공에 잠시 등장했던 중산층 신애를 중심으로 두 세계의 대립과 다른 방식을 제시하려 했지만, 작가 스스로 다음 이야기를 자세히 이끌어갈 능력이 지금의 나에게는 없다는 서술과 함께 소설은 갑작스러운 결말로 직행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이 너무나도 맘에 들었다. 주객이 전도되며 이해하기 어려워 지더라도 이 우화가 나는 아름답다고 느꼈다. 작가 본인이 미완이라 말하지만, 이것이 작가의 탓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러한 솔직한 고백이 맘에 든다. 대립적이지 아닌 방식으로 사회를 서술하는 것은 아직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닌 상황이다.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사람이 이 문제를 회피하거나 이용하기만 하는 상황에서 작가의 시도와 솔직한 고백은 매우 용기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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