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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치나 May 07. 2024

리뷰)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의 자유로운 대담. 학생운동, 걸프전, 한산 대지진, 옴진리교와 같은 일본 사회의 중요한 사건부터 소설 쓰기나 픽션의 힘, 심리 치료, 개성, 결혼과 같은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언더그라운드가 발매되기 1년 전에 나온 책이라 하루키의 detachment에서 commitment로의 전환이 어떠한 흐름에서 나왔는지 대화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일본의 풍토 아래에서 글을 쓰기가 싫었던 하루키는 다년간 해외를 떠돌며 소설을 썼다. 당시 하루키는 소설을 쓴다는 것이 개인적인 작업이 아닌 일본 사회의 축소판 아래에서 행해지는 것에 대해 큰 반감을 품었었다. 그러나 해외의 생활을 통해 얻은 결론은 하루키 자신은 일본어로 소설을 쓰며 일본식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일본인이란 사실이다. 이렇게 적으면 체념과 같이 보일지 몰라도, 하루키 자신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음을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 물론 단순한 심적 변화뿐만 아니라 일본 문단이 시간이 지나며 분위기가 느슨해진 것도 한몫했다.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간이 지나며 반항할 만한 것이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야오는 하루키의 반항할 만한 것이 남아있지 않다는 표현을 보충해서 이야기한다. 1960년대 학생운동 시기에는 반항할 상대를 상정하기가 쉬웠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반항할 존재가 명확하지가 않다. 체제에 반항하는 반체제에 대하여 하야오는 부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체제를 규정하고 이에 반하는 반체제를 생각하는 방식은 결국 반체제가 본질적으로 체제 안에 편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야오는 이러한 접근이 깊어질 수 없다고 말하며 가장 좋은 본보기는 하루키처럼 거의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하는 것이라 말한다. 반항이 아닌 젊은이만의 스타일이 기존 사회나 문화의 바닥을 깨고 변화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둘의 대화에서 나오는 주된 부분 중 하나는 일본 사회의 폭력성에 대한 모순이다. 평화 헌법을 애매함을 주축으로 전쟁의 책임은 전후 세대에 애매모호한 피해자 의식만을 낳았다. 또한 병적일 정도의 전후 폭력성의 배제는 일본인들이 폭력성을 접하고 상대화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1960년대의 떠들썩한 사회 변혁이 실패하며 애매함은 그대로 이어졌고 1990년대 걸프전에 이르러서야 이 문제점이 어느 정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루키는 해외 생활 동안 이러한 모순을 상대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말한다. 하야오는 당시 젊은이들의 반항이 실패했던 이유는 본질적인 폭력성에 대한 인식이 없는 단순하고 원시적인 폭력이었기에 실패했다 말한다. 큰 틀에서 앞의 체제에 편입되었다는 말과 동일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여러 가지 주제로 자유롭게 대담을 진행하기에 글 하나에 정리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반항이나 폭력성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모로 와닿았다. 일본을 중심으로 1996년에 이루어진 대화이지만 반항할 존재가 명확하지 않은 점은 지금도 유효하다 생각한다. 하야오는 기존 체제를 규정하고 이에 반하는 모습이 아닌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하는 것이 정답이라 이야기하지만, 확신이 오지는 않는다. 당장 많은 이들이 적을 상정하며 자신을 규정하고, 그것으로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 체제에서 벗어난 순수함이 작품과 생활 방식에서는 가능하더라도, 이것이 흐름을 바꾸고 기존 체제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지는 모르겠다. 너무 짧은 식견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본 세상에서는 결국 어떤 식으로든 돈이 흐르면 기존의 흐름에 편입되어 편 가르기에 이용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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