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머슴을 변하게 한다
사람이 살면서 종속변수인 출생과 죽음을 제외하고 인생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큰 변수가 있다면 결혼이 아닐까 싶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어여쁘고 지혜로운 여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건 남자들의 로망이지 않은가.
지금은 사라졌지만 예전 젊은이들의 메카였던 강남 "뉴욕제과"에서 친구의 소개로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 1990년대 중후반 최애 아이템이었던 노래방 100점의 인연으로 결혼까지 골인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대다수의 남자들은 일단 살이 찐다. 나이가 들어서이기도 하지만 하이에나의 삶을 마치고 안정감이 들어서 일 것이다. 결혼은 남자들에겐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데 특효약이기도 하다.
나 또한 결혼 후 투덜거리며 이직의 위험을 택하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 기르고, 전셋집을 넓혀가면서 가끔은 툭탁 거리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유일하게 100% 이해관계가 합일되는 파트너인 부부끼리 회사 상사들에 대한 험담도 해가면서 나름 평탄한 직장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때로는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 직장 상사인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2007년~2008년 미국 금융시장에서 촉발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사태는 전 세계로 파급되었고 내가 다니던 증권회사의 주인도 또다시 바뀌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화무십일홍인지 권무십일홍인지 처음 기세와는 다르게 조금씩 기울어지던 법인영업팀도 주인이 바뀌자 10여 년 전 IMF 때와 똑같은 일들이 다시 벌어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주인과 함께 입성한 새로운 머슴들이 기존의 늙고 노쇠해져 가고 있던 조직원들을 보직해임하거나 부서변경 및 해고하면서 또다시 새 판을 짜기 시작한 것이다.
나 또한 이제 10여 년 전 어린 직원이 아니었다. 차장급 관리자로서 불혹의 나이 40을 넘기며 지난번과는 또 다른 무게의 압박으로 살 길을 도모하여야 했다.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고 이제 주택청약도 넣어야 하는데...
또다시 10여 년 전 IMF의 데자뷔처럼 회사로부터 새롭게 전권을 위임받은 신임 임원께서 긴 칼 옆에 차고 나를 임원실로 불러들이셨다.
김 차장! 도대체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거지?
나의 직장 생활의 운명은 또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