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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Feb 04. 2024

이럴 줄 알았으면 엄마를 선택하지 않았을 거야

"하아...."
거울을 보는데 한숨이 난다. 떡진 머리에 세수도 못한 얼굴은 푸석푸석하다. 다크서클은 턱밑까지 내려와 있고 기미도 보이는 듯하다. 어디 그뿐일까. 수유할 때 편하라고 가슴 부근에 가로로 지퍼가 있는 원피스형 티셔츠도 별로인데 목이 늘어나 더 추레하게 보인다. 빠지지 않는 붓기는 살이 될까 걱정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처럼 빠지는 머리카락들을 보면 두렵다. 통잠 자본 적이 언제더라... 통잠은 바라지도 않는다. 한 번만 늦잠이라도 자 봤으면 소원이 없을 거 같다. 거울 안에 낯선 여자가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결혼 하고 임신 해서 출산했을 뿐인데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엄마를 선택하지 않았을 거다.

 결혼하는 그 해 삼 살 방위와 대장군이 서는 위치에 신혼집이 있다는 시어머님의 말씀 때문에 구정이 지날 때까지 각자 집에서 지냈다. 허니문 베이비를 품은 나는 졸지에 신랑 없는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남편은 나름 도와준다 했지만, 함께 살지 않아기에 필요할 때는 도움 받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 시기는 평가인증 준비 기간이라 일이 엄청 많았다.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며 일하고 집에도 일하고 새벽에 잠들면 너무 피곤했다. 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골반부터 발목까지 너무 아파서 20분이면 가능한 거리를 1시간이 걸려 오기도 했다. 그때는 출산 날짜를 손꼽아 기다렸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출산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출산하니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의 하루를 돌보고 책임지게 되었다. 배고플 때, 기저귀 갈아야 할 때, 졸릴 때 울음소리가 다 다르다고 하지만 전혀 구분을 할 수 없었다.

아이 끼니는 칼같이 챙겨도 내 식사는 어물쩍 넘어가기 일쑤였다. 아이 잘 때 같이 좀 자야 하는데, 눈에 밟히는 집안일하다 보면 숨 돌릴 틈 없이 하루가 간다. 등 센서를 장착하고 나온 아기는 절대 누워서 자지 않기에 안고 재우다 보면 손목이 저릿하고 허리가 아파왔다.

밤에도 2시간마다 깨는 아이 먹이고 트림 시키다 보면 숙면은 가당치도 않다. '차라리 일하는 게 낫겠다.' '난 모성애가 없는 엄마가 분명할 거야'

오른쪽 어깨에 손수건을 걸친 뒤 아이를 안고 등을 토닥이는 새벽에는 별생각이 다 든다. 출산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신랑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물론 가장으로서 느끼는 무게는 상당하겠지) 내 삶은 180도로 달라져 있었다.

외출 한 번 하기 쉽지 않고, 새벽 6시 일어나는 아이 덕분에 늦잠은 꿈도 꿀 수 없다. 100일 넘어서도 통잠은 자 본 적이 없었고, 혼자만의 시간도 없었다.

아기 어깨에 눈물이 떨어진다. 넓게 퍼져가는 동그라미는 깊고 커다란 호수가 되었다. 내가 사라져 버릴 거 같은 두려움은 온갖 감정을 토해내게 했고  기어이 밑바닥까지 보고 난 후 끝낼 수 있었다.
 인정. 나는 좋은 엄마는 아니었다. 세상이 말하는 엄마의 기준에 맞지 않더라. 하지만 내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믿으며 나를 챙기기로 했다.
 주말에는 신랑에게 맡겨놓고 콧바람도 쐬고 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 하는 건 초코 아이스크림 먹는 것처럼 달콤했다. 집안일도 애써서 하지 않았다. 시간 되면 아이랑 자면서 체력을 보충했다. 그렇게 조금씩 쌓인 챙김으로 회복하고 있었다.

엄마를 보며 웃고 있는 아이들 눈동자 안에 내가 가득하다. 옆에 있어만 줘도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과 행복인 당신이니 애쓰지 않아도 충분하다.  아이가 소중하듯, 나 역시 소중한 사람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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