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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Jul 13. 2024

시키지도 않은 짓


학교에서 근무할 때 희한한 내용의 공문을 받았습니다. <적극행정면책제도 적극 홍보>. 때는 4차 산업혁명의 시작과 더불어 창의의 시대에 창조적인 인간 육성을 교육목표로 삼기 시작할 때였고, 더불어 벤처기업, 창업이라는 단어도 많이 쓰이던 때였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후 공직사회는 <청탁금지법>으로 얼어붙어 있었고 미래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인 학교도 '복지부동'의 낮은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직무관련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뇌물수수 여부가 결정되므로 식당, 기념품 제조사, 꽃집 등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자는 좋은 취지로 시작한 제도가 '가는 X 싸고 길게 가자'로 몸을 사리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적극행정면책제도>는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하다가 얼마간의 실수를 하더라도 그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겠다는 것이지만, 그 배경은 긍정적이지 못했습니다. 공직사회가 얼마나 몸을 사리는 사회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인류역사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명이 발달해 온 것은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 많은 선조들의 희생 때문입니다. 라이트 형제는 조잡한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날으려 시도하였고 비행사 린드버그는 단엽비행기로 대서양 횡단비행을 하는 목숨을 건 '시키지 않은 짓'을 했습니다. 린드버그는 비행기의 무게를 줄이고 대신에 더 많은 가솔린을 싣기 위해 라디오 수신기를 떼내버리고 목숨을 건 비행을 한 결과 현대의 우리는 안전한 비행기를 타고 세계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가지고 왜 회사에 손해를 끼치나, 엉~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고 하지, 야~ 니가 책임져 난 몰라
-어느 회사의 부장

일이 즐거우면 인생은 낙원이다. 일이 의무에 불과하면 인생은 지옥이다
-알렉세이 막심 고리키

모든 일은 거기에 사랑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공허하다
-칼릴 지브란



시키지도 않은 짓은 아무나 하지 못합니다. 시키지 않은 짓을 하려면 불타는 열정이 있거나 모험심이 강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일에 대한 열정, 모험심 둘 다를 가지고 있다면 많은 '사고'를 치겠지만 인류발전의 시금석이 됩니다.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 아니면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어느 쪽이든 가르침을 주게 됩니다.


수많은 맛집들을 보십시오. 그 요리의 일반적인 레시피를 그대로 지켜서 맛집이 된 경우는 없습니다. 시키지도 않은 짓 뭔가를 분명히 한 것입니다. 인생에 레시피라는 게 있나요. 한 번뿐인 목숨이니 너무 조심하면 공허합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삶을 소중히 여긴다면 시키지 않은 짓도 더러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무모한 짓거리는 삼가야 되겠지요.



<시키지도 않은 짓을 잘하는 사람들>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도(세종대왕)

- 언문으로 천시되던 한글로 우리는 세계최고의 문자를 가진 민족이 되었다


서쪽으로 항해하여 인도로 가다가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 그의 탐험과 모험으로 1492년에 세상은 두 배로 더 넓어졌다


계란을 품에 안고 창고 안에서 병아리를 기다리던 토마스 에디슨

-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다. 그의 99%는 시키지도 않은 짓이었다


일생동안 산야를 걸어 다니며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

- 그의 지도는 농업, 상업, 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 중요한 자료였다



각계각층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후배들이 <적극행정면책제도>를 통해 활기차게 일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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