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올봄에는 안토시아닌 성분이 풍부하여 눈에 좋다는 블루베리 20, 열매가 크고 유기농 재배가 가능하다는 바이오체리 1, 항암효과 꾸지뽕 3, 내한성 바나네무화과 4, 사철 푸른 반반하게 생긴 반송소나무 12, 낙락장송이 될 일반소나무 11, 실크로드를 만들어낸 뽕나무 오디 5, 폭풍성장 가죽나무 4, 개두릅 엄나무 3, 땅두릅 독활 5, 항산화효과 나무딸기 8, 요강 뒤집게하는 복분자 12,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주목 3을 심었습니다. 삽자루를 두 번이나 부러뜨리고 난 뒤 철물점 어르신 사장님의 추천으로 쇠자루로 된 조경용 삽을 샀습니다. 무게는 두 배에 가깝고 튼튼해서 땅 속에 박힌 큰 돌을 몇 개나 캐내가며 나무를 심었어도 아직 끄떡없습니다. 3월 한 달간 이른 아침에 삽을 잡고서부터 어스름 저녁에 삽을 놓을 때까지 식사시간을 빼고도 평균적으로 하루에 거의 열 시간 일을 했고 그중에 열두 시간 일을 한 날도 많았습니다. 아무리 자신의 일이라 할지라도 재미와 흥미를 느끼지 않으면 불가능한 노동시간입니다
나무를 심는데 재미가 붙은 것은 나무의 생명력 때문입니다. 작년과 재작년에 심고 난 뒤에 죽은 줄로 알았던 나무가 한 번의 겨울 또는 두 번의 겨울을 지나고서 싹을 틔워 줄 때의 반가움과 기쁨이라니. 돌아가신 부모님이 살아 돌아오신 것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뭐라 형언하기 어려움이 있습니다. 죽은 줄 알고 베내어버렸더라면 '살목(殺木)의 중죄'를 저질렀을 일입니다.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의 주장 근거에는 사형수에게 형을 집행한 후 나중에 진짜 범인이 잡힐 경우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 이의 억울함이 있습니다. 마른 가지로 죽은 듯이 보이는 나무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뽑아내버렸다면 입이 없는 나무가 '나 살아있소 ~' 말도 못 하고 얼마나 억울하게 죽어갔을까요.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는 이도 없지 않겠으나 나무를 심고 돌보며 식물과 가깝게 지낸 3년간의 세월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나 봅니다.
차는 우려내야 그 깊은 맛을 알 수 있고, 사람은 어려움을 겪어 본 후에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인생에 겨울이 찾아오고 태풍이 불어와도 맞서서 견딘 사람이 강한 사람이듯이 나무는 겨울을 지나고 난 뒤 틔운 싹을 보고 알 수 있고 거센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 뿌리의 튼튼함으로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고산 윤선도는 그의 시가 <오우가(五友歌)>에서 '더우면 꽃이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 모르는가 구천(九泉)에 뿌리 곧은 줄 그로하여 아노라'라고 소나무의 기상과 정절을 노래했습니다.
제가 심은 자색 목련이 두 번의 겨울을 지내고 외로운 꽃 한 송이를 피웠고 수국이 작년보다 더 무성한 잎을 냈고 올여름에는 수국꽃이 둥근 웃음을 활짝 터트릴 겁니다. 한 번의 겨울을 잘 견뎌낸 괴좆나무 구기자도 휘영청한 줄기를 내고 작년과는 사뭇 다른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심은 초췌했던 살구나무는 얼추 육십여 개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작년에 지인의 농장에서 얻어서 심은 몇 포기의 작약이 꽃을 피우지도 않고 장마를 지나고서 말라 없어져 버리더니 올봄에 싹을 틔워 잘 자라고 있습니다. 복지부동(伏地不動)의 은거(隱居) 후 기사회생(起死回生)과 구사일생(九死一生)하는 참뜻을 식물을 통해 깨우치게 됩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고 가꾸는 일을 하나의 기업을 창업하고 경영해 나가는 것에 비유해 봄 즉합니다. 묘목을 심는 일은 창업이요. 때맞춰 거름 주고 물을 주는 것은 투자입니다. 기업이 투자에 타이밍 조절을 잘해야 하듯이 나무를 기르는데도 타이밍 조절이 필요합니다. 기업체의 사원들이 회사를 위해 진심으로 일하도록 사기를 북돋우는 성과급 보너스 지급도 타이밍입니다. 나무에도 구조조정이 필요합니다. 여러 나무 가운데 어느 나무를 베어낼 지와, 한 나무를 두고서 살릴 가지와 쳐낼 가지를 잘 판단해서 아름다운 수형을 갖게 하고 햇빛을 잘 받게 하고 효율적인 영양전달이 이루어지게 하는 일도 구조조정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나무의 가지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브랜치(branch)가 기업이나 은행의 지점을 뜻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잎들은 사원들이고 이들은 기업의 최일선에서 이익을 창출하여 뿌리와 줄기와 가지를 키우고 꽃이 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기업이 망하는 것은 나무뿌리가 고사(枯死)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가지가 마르는 것과는 다릅니다. 불황과 경기침체의 늪을 건너서 다시 회생하려면 기업의 본부이며 본사인 뿌리가 살아 있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그만큼 나무나 기업체에서 뿌리가 중요합니다.
해병대와 공수특전사의 훈련을 잘 견뎌내고 빨간 명찰과 특전사베레모를 쓴 용사처럼 겨울을 잘 버틴 어린 나무는 기사회생과 구사일생의 계급장을 달고 '포기'가 아닌 어엿한 '그루'라는 용사로 태어나게 됩니다. 나무 용사를 키워내는 맛에 나무를 심고 가꾸게 됩니다. 거기에다가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되면 더 이상 나무가 아니라 반려목 (伴侶木)의 지위로 오르게 됩니다. 한 가정을 이루는 반려자인 아내나 남편은 서로의 배우자인 남편 또는 아내에게 동반자가 되어 몸과 마음의 합일을 이루어 몸과 마음에 위안을 주고 경제공동체를 이루어 가계에 한몫을 담당하게 됩니다. 반려목이 되면 산소 공급으로 꽃과 향기로 몸과 마음에 위안을 주기도 하고 영양가 높고 맛난 열매로 아내가 구입한 장바구니에 든 식품들을 대신할 수 있으므로 삶의 동반자로서 한몫을 해낼 수 있습니다.
반려목이기를 넘어 나무 자체를 사람에 비유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장래가 기대되는 장밋빛 인생을 살아갈 젊은이를 꿈나무 또는 재목(材木)이라 부르고 한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분을 거목(巨木)이라 일컫고 그분의 영향력이 미치는 영역을 그분의 큰 그늘이라 표현합니다. 사군자 식물로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꼽습니다. 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성품을 식물의 성질 중에서 찾아 빗댄 것입니다. 이 또한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땅에 뿌리를 박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 듯 서있는 나이 많은 노거수(老巨樹)를 보면 죽은 이를 장사 지내는 방법으로서의 수목장(樹木葬)에 대한 이해가 빨라집니다. 수목장은 입지가 좋은 곳에 나무를 심어 가꾸고 그 뿌리 부분에 화장한 고인의 뼛가루를 묻는 방법을 말합니다. 죽은 이가 나무로 환생하여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향해 나의 영혼을 거두어 달라고 비는 듯한 모습은 서양 중세의 고딕양식의 첨탑이나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의 무덤인 피라미드의 종교적 의미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애써 가꾸고 돌본 산 또는 농장에서 자신이 직접 심어서 거름 주고 가지치고 가꾼 나무 아래에 묻혀 나무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생명의 아름다운 순환을 직접적으로 실행하는 일입니다.
나무는 나모입니다. '나의 모(母)'인 나의 어머니 나모입니다. 내가 심은 나무들이 숲을 이룰 그때를 생각하며 어머니처럼 나를 품어줄 나모를 꿈꾸며 나무를 심습니다. 올봄은 유난히 산불이 많이 났습니다. 내가 땅속에 박힌 큰 돌들을 캐내가며 힘들여 나무를 심는 가운데 일어난 대형 산불 소식에 내 마음도 타들어가는 듯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