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흐르는강물처럼 Nov 30. 2023

신비스럽고 싶으신가요?

-  Homo Deus가 되기를 원하는 Homo Sapiens

신비(神祕)는 신의 영역 안의 일이다. 인간에게는 비밀스러운 것이어서 인간이 알아서는 안되거나 알려 들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종교란 초자연적인 절대자 즉 신의 힘에 의존하여 인간 삶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이다. 절대자 힘에 의존할 수는 있지만 의존으로 끝나야 한다. 고뇌 해결의 방법까지 알아내려 들면 신은 노하신다. 창세기에는 에덴동산에 심어져 있던 '선악과'를 따먹어 지혜를 얻으려던 아담과 이브가 동산에서 추방되는 장면이 있다. 그리스신화에는 신들만이 사용하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데 대한 벌로 독수리에게 간을 파 먹히는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가 있다.


사람으로서 신만이 뿜어낼 수 있는 신비의 분위기가 자신에게서 우러나오게 하고자 하는 성향을 신비주의라고 하는 것 같다. 어린아이들조차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 또는 슈퍼맨의 복장을 하기를 즐기는 것은 공상영화의 주인공처럼 하늘을 날고, 괴력을 갖고, 중력을 거슬러 벽을 기어오르는 초능력을 갖고 싶어서이다. 인간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이 신과 같은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 열망을 버리지 못한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유인원으로서 네 발로 걷다가 두 발로 걸으며 호모 에렉투스의 경지에 이르더니, 언어를 사용하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창작의 지혜를 가진 호모 사피엔스가 되고는 이제 '선악과'를 찾아다니며 호모 데우스(Homo Deus - 라틴어 'Homo'는 사람 또는 인간을 의미하고 'Deus'는 신을 의미함)로서 신과 같은 인간이 되려고 '시건방'을 떨어쌋고 있다. 연예인뿐 아니라 요즈음에는 운동선수까지 화장, 분장, 영상의 힘을 빌어 제정일치 시대의 주술사와 같은 모습을 연출할 때가 있다. 타고난 그리고 다듬어진 멋진 몸으로 정교한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멋진 몸을 더욱 멋져 보이게 만들어 영웅이 된다. 특이한 헤어스타일과 머리염색 심지어는 문신까지 이용하고 있다. 신비스러움을 덧입고 싶은 것이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하며 '광신도'가 되기를 열망하는 군중은 늘 대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애교스럽다. 여기까지는 봐줄 수 있다. 사이비 교주들은 신비주의가 아니라 신비 자체가 되려 한다. 인간이 지은 죄를 인간인 교주가 다 용서해 주겠다고 하니 신과 다름 아니다.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비행기를 타고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열광하는 군중을 만나는 연출을 즐겼다. 될 수만 있다면 신이 되고 싶은 열망에 차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모래성을 지어본 적이 없지 않을 터이니 이는 호모사피엔스가 '호모데우스 신드롬'을 앓는 일이다. 모래성이란 허영의 플랜으로 허망이란 결과를 맛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인간적이면서 동시에 신적인 모래성 건축 취향을 버리지 못한다. 신에게 바치는 인간으로서의 고백이다. 모래성을 쌓으면서, 그 모래성이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성이 되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을 받을 수 있대도 그 능력을 마다하겠는가. 아니라면 그는 호모데우스인 것이다. 그가 바로 여러분이고 그리고 나다.


호기심은 판도라상자를 기어코 열게 만든다. 먹어봐야 맛을 알고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는 마음을 심어준 신의 '실수'가 아니런가. 1990년대 들어 인간 유전체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2003년에 인간유전자지도가 완성되었다. 영어로 genome map(게놈지도)으로 불리는 유전자지도는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의 두 단어를 합성해 만든 용어이다. 유전자 지도는 염색체(DNA)에서 유전자의 위치와 유전자 간의 상대적 거리를 나타낸 지도를 말한다. 유전자의 위치와 거리(distance)를 알아냈다는 것은 택배기사가 수취인이 살고 있는 거리 이름과 번지를 알고 있음과 같은 일이다. 위치를 안다는 것은 배달물건을 대문 앞에 둘 것인지 수취인에게 직접전해줄 것인지에 선행해야 하는 일이다. 남은 것은 배달을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피부색을 결정하고 키와 머리 곱슬 정도 등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원하는 유전자로 교체하는 시기 결정만 남은 일이다. 암 발병은 가족력이 결정적이라는데 이 또한 유전자를 바꾸면 될 일이 아니런가.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 게놈 계획은 난치 유전질환 등의 원인을 밝히고 치료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제 인류의 기대수명은 각기 백 세와 구십 세에 아들 이삭을 얻은 아브라함과 사라와 같은 몸을 같게 될 것이다. 그러나 태어날 아이의 성별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고 인간복제를 마음대로 하는 호모데우스가 되려 한다면 생명윤리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신께서는 그냥 신을 흉내 내는 정도의 '신비주의'는 애교로 보아주실 것이다. 아빠의 넥타이가 멋지게 보여서 목에 걸치고 다니는 아이 정도로 여기고 넘어가 주시지 않을까. 그냥 '신비'를 옷처럼 입으려는 정도로만 만족하고 살아야지 진짜 신이 되려 하면 괴물이 되려고 하는 일이다. 입으면 신의 모습을 닮지만 벗으면 인간으로 돌아오는 정도이어야 한다. '창조적'인 모습은 인간의 모습이지만 '창조'하겠다는 것은 신이 되겠다는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미녀는 글 속에 있다. 그림으로 그린 미녀는 보는 이의 취향에 따라 평점이 달라진다. 실물 미인은 더욱 그렇다. 글 속의 미녀는 글 읽는 사람이 자신의 머릿속에 자신이 그려낸다.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어내겠는가. 금방 자고 깨어났지만 눈에 눈곱도 없다. 머리에는 베개자국도 남지 않는다. 방귀도 뀌지 않는다. 뀌어도 향기롭다. 트로이전쟁의 불씨가 된 헬레네는 호메로스의 글 속에 있었고, 경국지색이라던 서시, 왕소군, 달기, 초선, 양귀비 역시 글 속의 미녀들이었다. 춘향이도 그랬다. 글 속의 미녀들은 늙지도 않아 영원한 10대와 20대이다. 3000여 년 전 청동기 시대의 헬레네는 지금도 30대의 나이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현실이 아니라 추상 속에 있다. 추상은 신비로 통하는 문이다. 동명(同名)의 소설을 읽고 난 후에 보는 영화는 그런대로 봐줄 만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소설은 도무지 읽을 수가 없다. 영화의 장면들과 주인공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소설의 신비를 깨고 있기 때문이다. 신비주의의 속성은 이와 같은 것이다.


일본의 9세기 여류작가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가 쓴 소설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에는 귀족이며 높은 지위에 있는 히카루 겐지(光源氏)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고귀하고 지체 높아 대단한 권력과 책임을 가진 사람인데도 국가정사는 모두 아랫사람들에게 맡기고 음주가무와 시를 짓고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 되는 일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황진이를 만났더면 조선으로의 귀화도 서슴지 않았을 양반이다. 일을 하지 않으니 능력여부는 알 수 없는 일이고 중대사 결정에도 차일피일 우유부단이 특기다. 주변사람들에게 싫은 소리 할 일이 없으니 욕먹을 일도 없고 시화와 가무에 능하니 신선이 따로 없다. 이상한 것은 현대 일본의 지도자들에게는 이 히카루 겐지가 최고의 이상적인 인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바로 신비주의다. 운명적 만남이라고 여길 만한 이성을 만나면 그 이에 대한 모든 게 궁금해진다. 운명이란 하늘이 정한 것이니 하늘만큼 땅만큼의 호기심은 당연한 것이다. 신비주의의 속성은 이와 같은 것이다.


고상한 취미 하나씩을 갖춘다면 품격이 높아진다. 지위가 높을수록 그렇다. 접하기 힘든 인물에게서 기대하지 못한 일면을 보아서일 것이다. 물론, 지위에 맞는 정치, 행정 능력을 펼치는 게 우선이겠지만, 만일 대통령이 신년사 앞에 현제명 작곡의 <희망의 나라로>를 성악 발성으로 멋지게 불러낸다면, 만일 총리가 태권도복을 입고 절도 있게 공중 이단발차기를 선보인다면, 장관이 마라톤을 완주해 낸다면 국민들은 얼마나 환호하게 될 것인가. 똑같은 인간인데 연예인을 만나면 딴 세상에서 온 인물인 듯하다. 스크린에서 보던 '세종대왕'께서 거리를 걷고 있다면, '잔혹한 연쇄살인마'가 백화점에서 나와 함께 쇼핑을 하고 있다면 어떨까. 신비주의의 속성은 이와 같은 것이다.




인간은 신비를 추구하며 신비를 가슴에 품고는 살아갈 수 있지만 신비 자체가 될 수 없다. '주의(主義)'의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한 개인이나 집단이 평소에 지니고 생활하는 일정한 신념 체계,
또는 그와 유사한 타성의 경향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daum 어학사전

'민주주의국가'는 국민이 주인인 사회를 이룬 나라가 아니라 민주를 신념으로 삼고 그에 맞도록 노력하겠다는 정신적 가치이다. '공산주의국가'는 물질을 만인에게 균등하게 분배하는 사회를 이루겠다는 노력의 지향점을 말하는 것이지 그런 사회를 이미 완벽하게 이루었다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신비주의는 신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신비한 존재가 되어보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쯤이다. 신비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또 이러하다.

(1)    [철학] 절대자나 신 등의 초월적 존재를 내적인 직관이나 영적인 체험에 의해 직접적으로 체험하려고 하는 종교 또는 철학상의 한 관념.

(2)    모습이나 하는 짓이 이성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을 만큼 신기하고 묘한 태도나 경향.

- daum 어학사전

 

신은 영험하시나 매력은 없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일 뿐이다. 신비주의는 그래서 가끔씩은 품어봄즉하다. 우리는 인간이다 그래서 매력 덩어리다.


작가의 이전글 '이찌닌마에(一人前)'와 '노블리스 오블리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