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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Jul 06.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벚꽃 자객 114

벚꽃 자객       

   



꽃에게 마음을 베인 적 있는가. 나는 그 아련한 쓰라림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안다. 사람에게 베인 것보다 꽃은 더 깊다.

오래전 봄바람이 띄운 벚꽃이 예리하게 다가왔다. 허공을 무게감도 없이 가르는 한 조각 꽃잎은 비수였다. 아름다운 것이 아프고 쓰릴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종잇장 같은 허공의 궤적은 금세 사라지는 그림자 같아 은밀하였다. 나는 떨어지는 벚꽃에 ‘자객’이란 이름을 붙여 놓았다. 왜 ‘자객’이란 단어가 떠올랐을까!

나는 어렸을 때 만화를 보면서 날을 새곤 했었다. 백호 만화를 좋아했다. 만화 속 자객이 허공을 날아올라 불의를 베고 멋지게 착지를 했다. 어느새 자객의 칼은 칼집에 꽂혀있었다. 자객은 옷자락을 휘날리며 강호를 떠돌았다. 쓸쓸하고 멋있었다. 자객이 나비처럼 공중으로 날아오를 때 칼끝에 별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햇빛에 반짝거리는 벚꽃이 낙하할 때 자객이 떠올랐다. 친구들은 요새 세상에 ‘자객’이 뭐냐고 낄낄거렸다.  

“그럼 벚꽃 킬러, 벚꽃 총잡이, 벚꽃 칼잡이, 벚꽃 폭탄, 벚꽃 살인이라고 해야 쓰겄냐, 이 무식한 것들아!” 나는 생억지를 부리다가  검도장에 등록해버렸다.

킬러와 자객 사이에서 내 벚꽃에 대한 첫 직관은 종 치고 막을 내려 버렸다. 그 두 단어의 뉘앙스에 묶여 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글을 완성하지 못했다.  

  

나는 처음 서울에 입성해 석촌호수 근처에 살았다. 그때 석촌호수에 반해버렸다. 벤치에 앉아있으면 눈앞 풍경이 꾸민 자국이 없어 좋았다. 사람 구경도 재미있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서울에는 석촌호수에만 벚꽃이 있는 줄 알았다. 그땐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봄이 오면 벚꽃을 보러 석촌호수에 상춘객들이 몰려들었다. 아침저녁 걷는 사람들이 밀려들어 서로 어깨를 부딪치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남녀가 보듬고 입을 맞추는 일도 속출했다. 특히 왕 수양버들 벚꽃은 포토존이 되었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 몇 미터씩 줄을 서곤 했다. 꽃이 사람을 구경했다. 나는 인파를 피해 밤늦게나 새벽에 벚꽃을 보러 갔다.  

    

지금 사는 산밑 고골도 벚꽃 천지인데 나는 석촌호수 벚꽃 아래 혼자 앉아있다. 반짝이는 수면에 떨어지는 내 손톱보다 작은 꽃잎들. 그 반짝이는 찰나가 나의 어딘 가를 순식간 베고 호수로 떨어졌다. 나도 모르는 내 깊고 어두운 곳을 스치는 벚꽃에게서 여전히 칼날을 느낀다. 꼭 총칼에 맞아야만 죽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죽고 사는 일에 친해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방황을 하는가. 보이지 않은 그곳을 치고 간 벚꽃은 명치끝을 아리게 했다. 피 한 방울 흘리게 하지 않고 쑤시고 들어오는 꽃날에, 봄마다 나는 가슴이 저린다.


그래 나를 베고 간 것이 꼭 꽃만이었을까. 섬마을 어렸을 적 봄이었다. 아버지와 이웃 마을로 돼지 대를 붙이러 갔었다. 가는 길에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 거름 썩은 냄새, 꽃들과 뒤섞인 길을 나는 강아지처럼 뛰어갔다. 기억이 기억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는 아직도 그 틈 속에 혼자 앉아있다. 석촌호수 저 무수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봄마다 삭제된다. 내년 봄에는 벤치에 혼자 앉아있는 사람 옆에 슬며시 앉아볼까.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잊어버렸을까. 봄마다 벚꽃이 피면 저 너머 그곳을 백번도 더 뒤돌아본다.

나는 끝내 벚꽃의 비밀을 낚아채지 못하고  푹 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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