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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Sep 21. 2024

불량품들의 사계

개들이 저녁노을을 핥고 136

개들이 저녁노을을 핥고



                                        

구름이 흩어져 떠돌다 돌아온다.

특별한 볼일이 없는데도 방이동에 나갔다가 집에 왔다. 몸을 계속 움직여도 허전하다

밭에서 휘어진 상춧대를 끊었더니 하얀 진이 나왔다. 진을 손가락으로 찍어 혀에 갖다 대봤다. 씁쓰름했다. 방으로 들어와 어젯밤에 삶아 놓은 감자껍질을 벗기다가 달력으로 눈이 갔다. ‘아! 오늘이 말복이네.’ 눈에 뭐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따가웠다.

복날마다 당귀, 대추, 마늘을 넣고 푹 삶아 산이랑 먹던 일이 떠올랐다. 산이 빈자리가 허전해 그렇게 내가 움직였는가 보다. 보고픈 마음은 왜 시간이 흘러도 엷어지지 않을까.  

   

운전대를 잡았다. 산이랑 다녔던 방이시장 생닭 집에 가서 중닭을 샀다. 닭집 쓰레기통에 어마어마하게 닭똥집이 쌓여있다. ‘똥구멍을 닫으먼 아무 소용이 없네’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전 성길씨가 나에게 준 가시오가피와 당귀, 대추, 마늘을 넣고 백숙을 끓였다. 식탁 위에 왕소금과 김장김치와 백숙을 차려놓았다. 비닐장갑을 끼고 닭다리를 집었다. 평소 나는 혼자 잘 먹는데 오늘은 맘이 거시기했다. 오늘같이 복날에는 산이에게는 닭 가슴살을 주고 나는 닭다리를 먹었었다.

산이 생각에 코가 시큰거렸다. 코를 누르고 닭다리를 막 뜯으려는 그때였다.

“누님.”

수저를 입에 넣다 뿜을뻔했다.

풀치가 푹 꺼진 눈으로 마당에서 나를 불렀다.

‘어디서 엿보다 온 거여, 뭐여!.’

 평상에 앉는 풀치를 보고 나는 닭다리를 내려놓았다. ‘잘됐다’ 닭다리 하나와 가슴살을 국그릇에 덜어 쟁반에 받쳐 내갔다.

“술 안 마셔서 주는 거여. 얼른 먹어.”

나는 성길씨 마당 쪽을 보면서 말했다. 풀치는 평상에 내려놓은 백숙을 보고 무슨 일이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평소에는 풀치가 라면을 끓여달라고 해도 나는 무자비하게 거절을 했었다.

“먹다 남은 거 가져온 것이여.”

나는 풀치와 선을 그으려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나는 선을 잘 못 그어 문제가 생긴 적 많아 금을 잘 그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다.

“천천히 먹으께요.”

“빨리 먹어야.”

“이빨이 없어 빨리 못 먹어요.”

그렇다고 내가 손으로 일일이 발라 찢어 주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재촉을 하는 것은 성길씨가 볼까 봐서이다. 성길씨까지 먹을 양이 안 되었다. 무엇보다도 나와 풀치랑 뙤약볕 아래 앉아 이 꼬라지를 보면 성길씨가 뭐라고 할까 싶기도 했다.

“그럼 국물이라도 얼른 마셔.”

“뜨겁잖아요.”

나는 쟁반을 잡아당기는 시늉을 했다.

“원, 빨리 틀니를 하든지 해야지.”

풀치는 나 속 타는 줄도 모르고 ‘세월이 좀 먹냐’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풀치는 두 손으로 그릇을 들고 국물을 천천히 마셨다. 된 낮에 국물을 마시는 풀치 이마에 땀이 흘러내렸다. 나는 풀치가 땀 흐른 것을 처음 봤다. 하도 골아 살이라고 찾아볼 수가 없다.  

    

풀치는 그릇을 내려놓고 나무젓가락으로 닭다리를 집으려 했다. 그때 성길씨 슬리퍼 끄는 발소리가 났다. 나는 나무젓가락을 빼앗고 닭다리와 가슴살이 담긴 그릇을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풀치는 황당해했다. 빨리 먹으라고 재촉할 때는 언제고, 고기가 아직 남았는데 집으로 들어가는 나를 보고 이해가 안 된 것이다.

성길씨가 평상에 걸터앉은 풀치 앞에 마주 섰다. 나는 풀치가 성길씨에게 백숙 먹었다는 말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풀치는 다행히 백숙 말은 하지 않았다. 하기야 국물만 마셨으니까 백숙을 먹은 것도 아니지.

“오늘이 말복이야.”

성길씨가 말했다. 나는 방에서 나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아! 오늘이 복날이야.”

하면서 풀치는 창 쪽을 보면서 씩 웃었다. 나는 풀치가 닭 국물 먹었다는 말을 할까 조마조마했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성길씨 뒤에서 풀치를 보고 검지손가락을 내 입에 가져다 댔다. 풀치는 알아들었다는 듯 웃었다. 눈치를 챈 것이었다. 풀치는 싱글벙글 이었다. 비록 국물만 먹었더라도 본인만 먹었다는 것에 감동한 표정이었다.

“일해서 얼른 틀니 해야 되겄네.”

풀치가 말했다. 풀치는 내 앞에서 웃을 때 언제부턴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다. 풀치는 내가 처음 볼 때부터 앞니가 없었다.

“그래 술 먹지 말고. 돈 모아 틀니 해.”

성길씨가 해를 등으로 받으며 말했다. 풀치에게 자연스럽게 그늘이 생겼다.

나는 연자방아 호두나무 아래 서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성길 씨가 갖다 준 가시오가피로 백숙 끓여 풀치만 준 게 찔렸다. 성길씨는 나보다 음식을 잘해 알아서 해 먹겠지 생각했다.

풀치는 더웠는지 일어섰다. 나는 얼른 가라고 손짓을 했다. 그때였다.

“니 입가에 기름기가 잘잘하네. 뭐 먹고 왔어?” 성길씨가 말했다.

“땀나서 번들거리는 거지.” 풀치가 재치 있게 말했다.

“아따, 어째서 바람 한 점도 안 부까.”

나는 집으로 들어와 버렸다. 구름은 머뭇거리다 흘러갔다.

‘성길씨 미안허요. 다음에 할머니랑 백숙 삶아 먹게요.’     


산 너머로 해가 져가고 평상에 앉아 나는 어스름 해지고 있었다.

카톡이 왔다. “오늘 개나 소나 닭이나 다들 복 받으세요.”

요새 일한다고 자주 못 보는 ‘술푸자’ 모임 단후였다. 반가웠다.

나무 사이로 가벼운 바람이 분다. 그래 살아있을 때 사람 노릇을 해야겠다.

복날은 무엇을 먹는 게 아니라 누구를 그리워하면 복 받는 날로 하자.

개 공장에서 개들이 저녁노을을 핥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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