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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Sep 16.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바람이 돌 위에 앉아 울 때 135

바람이 돌 위에 앉아 울 때  


   

              

나는 반쯤 오그라진 채 단호박을 젓가락으로 쑤시다 멈췄다. 뒤적거리던 신문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시골에서 시 선생님이 할머니들을 모시고 도서관에 가는 길이다. 할머니들은 글을 깨우치고 나서 시를 배우고 있었다. 신문 속 ㄱ자이신 할머니들은 길을 걷다가 숨이 차면 길옆 불거진 돌에 앉았다. 나는 시 선생님의 ‘풀들을 건너 다니며 뒹구는 바람이 할머니 치맛자락도 살짝 만지고 간다’는 시를 읽다가 울컥했다. 돌 위에 앉아 땀을 닦는 할머니들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슬픈 글이 아닌데 눈물이 났다.


나도 산을 오르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돌이나 풀밭이나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러면 바람은 어느새 얼굴이면 목덜미 땀을 식혀주며 머물다 간다. 그 바람은 멀리 있는 자식들에게 부모님의 소식을 전해주고 가는 것만큼 위로를 준다.

장소나 나이에 따라 몸에 와닿는 느낌이 달라지는 것도 바람이다.    

  

엄마는 고향에서 인천으로 이사와 살다가 요양원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마지막을 보내던 엄마 말이 생각났다.

“나, 아직 여기 있을 때 왔다 가거라.”

엄마는 죽어야만 바깥으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요양원 안은 선풍기 바람이나 에어컨 바람뿐이다. 엄마는 요양원 들어간 날부터 눈을 감고 나올 때까지 실개천 같은 뺨 저 너머에서 부는 생 바람을 한 번도 쐬 본 적 없었다. 엄마는 생 바람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엄마는 젊어서 혼자되셨다. 자식들을 위해 평생 뾰족 돌에 엉덩이를 걸터앉다가 사그라들었다.


먼 훗날 나는 어떤 난간이나 어느 버스정류장에 기다릴 사람 하나 없이 흐릿하게 서 있지 않을까! 찬바람을 맞으면서. 그런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비탈길에서 굴러다니던 톡 볼가진 돌 위를 바람이 가만히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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