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선에서 두 걸음 먼저 출발했다. 2년이란 시간을 두고 뒤늦게 출발한 녀석은 나의 발걸음이 멈춰지지 않는 한, 평생 동안 나를 앞지를 수 없다. 내가 6살일 땐, 인생의 3분의 1이나 되는 큰 시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나란히 서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차이.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난 들 녀석은 나보다 앞에 설 순 없다. 불합리하다 느껴질 수도 있지만 유감이다. 태어나는 순간 이미 정해진 불변의 관계. 마냥 귀엽기만 했지만 어느덧 누군가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버린 녀석은 나의 동생이다.
"여기가 안방이고 이쪽이 애기방이야"
유난스럽진 않았지만 묘하게 들뜬 목소리로 열심히 집구경을 시켜준다. 결혼하고 두 번째로 정착한 새집을 모델하우스 직원이라도 된 마냥 구석구석 설명한다. 반쯤은 자랑이, 반쯤은 형아에게 대견하단 소리를 갈구하듯. 무뚝뚝한 형은 그저 '좋네'라는 뉘앙스만을 풍기며 특별한 감흥 없이 가이드의 소개를 흘린다. 이사한 지 벌써 세 달은 지난 거 같은데 이제사 와봤다. 만들어진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새 아파트엔 조카가 다니는 어린이집도 단지 내에 있다. 이번에 아파트에서 행사를 하는데 행사장 주변에 어린이집 아이들이 그린 그림도 같이 전시를 해둔다고 한다. 그 덕에 겸사겸사 조카 그림도 보고 이사 온 새집도 보러 동생집에 들렀다. 그렇게 이것저것 구경하며 집 근처를 산책했다. 조카의 손을 잡고 앞서 걷는 녀석의 뒷모습은 여전히 나의 동생이지만, 동시에 한 아이의 아버지의 모습을 품고 있었다. 새삼스럽다.
형아의 손을 잡고 골목으로 뛰어간다. 이미 나와있던 앞집 친구와 건너편에 살던 형은 벌써 축구공을 신나게 뻥뻥 차고 있다. 녀석은 자기도 한번 차보겠다고 열심히 공을 좇는다. 하지만 막내에게 따로 배려를 남길 정도로 성숙한 나이들이 아니었다. 학교도 아직 못 들어간 어린 꼬마들은 그저 자신의 즐거움을 채우기에 바쁘다. 왔다 갔다 몇 번을 뛰어다니다 공 한번 건드려보지 못한 녀석은 금세 입술이 삐쭉거리며 울음이 터지려 한다. 그때서야 황급히 녀석의 상태를 눈치챈 내가 공을 잡아 세워 녀석에게 굴린다.
"혁아 형아한테 공 차봐"
하지만 내가 조금 늦었다. 이미 으앙 하고 터져버린 녀석은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나는 황급히 공을 녀석의 발 앞에 대령해 주고 눈물을 훔쳐준다. 아이의 울음은 생각보다 금방 그친다. 인중을 빛내는 콧물을 달고선 공을 찬 녀석은 어느새 기쁜 얼굴이다. 귀엽다.
두 살 차이 남자형제에겐 하루 걸러 하루 싸움이 필수인 시기가 온다. 이유는 딱히 없다. 그저 아무거나 걸리면 싸우는 것이다. 밥 먹다가, 놀다가, 학교 가다, 심지어는 쳐다봐서. 사춘기라서 그랬던 건지 모르겠지만 꽤 자주 그랬다. 싸움이라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때렸던 건 일방적이었다. 형과 동생이라는 위력관계에 의한 것인지, 2년이란 시간의 성장차이가 꽤 많은 차이를 내던 시기라 그랬던 건진 모르겠지만, 녀석은 내게 많이 맞았다. 그런 내가 말하는 게 이상하지만 우린 우애가 좋은 형제였다. 좋아하는 음식도 같고, 게임도 함께 하고, 같은 방송을 보며 낄낄댔다.
나는 녀석에게 '형'으로선 어땠을까. 10대 후반쯤부터 '평범'하다 불리는 것과는 조금 달라진 형아는 녀석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고3 시절을 겪어보지도 않았고 입시나 대학 생활도 몰랐다. 적당한 인문대로 진학한 녀석과는 앞으로 선택할 직장도 카테고리가 전혀 달랐기에. 나는 녀석에게 '반면교사' 그 이상의 역을 자처할 수 없었다. 딸이 없던 우리 집에서 둔감한 아빠나 장남 대신 그나마 딸 같은 부분을 맡은 것도, 이쁜 며느리가 우리 가족이 되게 해 준 것도, 부모님께 마냥 귀여운 손주를 보게 해준 것도, 모두 녀석의 공이다. 그렇게 형아가 하지 않는 부분들을 잘 챙겨 온 것이다. 그렇다 해서 대신 고맙다던가, 대견하다거나, 자랑스럽다거나 하는 감정은 없다. 녀석이 지금과 정반대의 결과를 취했다고 해도, 여전히 내 동생일 뿐이다.
소파에 앉아 조카가 퍼즐을 맞추는 것을 멍하니 바라본다. 퍼즐조각을 들고 어디다 끼워 맞출지 고심하는 얼굴에서 문득 혁이 얼굴이 보인다. 우리 막둥이도 요래 귀엽던 때가 있었지. 고작 두 살 차이였지만 한없이 어렸던 내 동생. 인생의 3분의 1이나 되는 커다란 시간차가 있었지만 이젠 우리 둘 다 그것을 무시해도 될 만한 나이를 먹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의미가 옅어질 테고. 이젠 울면서 형아를 찾을 일이 없겠지만, 그럼에도 녀석은 여전히 내 귀여운 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