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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May 09. 2024

단편

오솔길


가느다랗고 높게 뻗은 나무들이 빼곡히 들이찼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루어졌으며, 굽어졌기에 전방의 시야가 닫혀있다. 나는 친구와 그 길을 걷고 있었다. 볼이 빨개진 어린아이들이 뛰어서 스쳐간다.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노래를 부르며 길 따라 굽어진 방향으로 사라진다. 어차피 길은 하나뿐이다. 소리가 들려오는 길을 따라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키가 큰 나무들에 둘러싸여서일까, 해가 지는 것보다 빠르게 어둑해진다. 아이들의 노랫소리도 희미하다. 더 까마득함이 채워지기 전에 집으로 들어가길 바란다. 꺾어진 길을 따라 세 번쯤 새로운 풍경을 맞이했을 때에 바닥에 떨어진 운동화가 보였다. 습기를 머금은 갈색 흙이 물들어버린 하얀 운동화는 길 한복판에 놓여있었다. 너무나 아이의 분실물이다. 어른은 잃어버릴 일 는 것이다.





후미등


아직은 해가 보이지 않을 시간이지만 이미 아침이라 인식할 만큼 밝아졌다. 푸른색 공기가 한강을 감싸고 흐르는 강변북로에 가득하다. 출근기엔 너무 이른 시간임에도 분주한 차들이 많다. 강을 따라 굽어진 도로 위에는 붉은색 후미등이 끝없이 명멸하며 이어진다. 내 눈길이 바라볼 수 있는 곳부터 나의 뒤까지도 그러하다. 빨간빛은 모두 떨어져 있지만 멀어질수록 하나의 선으로 보인다. 선은 결국 무수한 점이라는 차원의 설명을 증명 중이다. 점은 각각의 개체, 독립적으로 존재한 하나의 것. 가까이서 보면 저마다의 모양을 품고 있지만 멀어질수록 그저 같은 색깔의 빛무리로만 남아진다. 서있는 곳이 곧게 뻗었는지 부드럽게 휘었는지만이 점들의 형태를 정의한다. 색은 달라지지 않는다. 조금 더 밝아지거나 아니거나, 차이는 딱 그만큼이다. 내가 남겨둔 점들은 어느 선으로 그어졌을까.





반성


빛바란 하늘이 보고 싶었다. 오밀조밀하게 뭉쳐진 솜구름들이 가득 채워져 쉽지 않았다. 자그마한 틈새로 조금씩 비춰지는 게 전부다. 끝없이 흐르는 구름이니 기다리면 될 것이다. 기다림의 기간은 알 수 없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 반갑게 인사했다. 신나게 손을 흔들며 함박웃음으로 맞았다. 안부를 나누고 헤어지며 바로 느낀 것은 아무런 저항 없이 반가웠던 것, 다른 이들에겐 이리도 간단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 누구보다 반가운 너에겐 그러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다, 미안했다. 그러려고 그러진 않지만, 그렇게 되어버리는 고장 난 모습은 끝없이 미련으로 다가온다.





휴식

나의 뇌는 내 나이보다 늙었다. 끊긴 적 없이 혹사당하고 있다. 뉴런의 움직임을 반짝임으로 바꾼다면 세상 어느 클럽보다도 화려할 것이다. 게다가 뇌로 직통한다는 담배도 끊임없이 물고 있었으니 그것이 독립적인 개체로 분리된다면 나에게 엄청난 불만을 토로하겠지. 뇌를 쉬게 해줘야 한다. 그러한 생각조차 그것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스위치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동력을 깨우친 존재인양 쉬지 못한다. 심지어 자는 순간에도 꿈이 끊기지 않는다. 잠시 꺼내서 쌓인 먼지라도 닦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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