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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이안 Jun 01. 2023

반환점을 돌아서니 끝이 보인다_Ep.06

2020년 10월 15일, 아침 바람이 제법 쌀쌀하게 느껴지는 맑고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난생처음으로 가게 된 법정행이라 그런지 집을 나서면서 다소 긴장이 되었다. 오전 11시 정각, 서울 서초동 서울회생법원 제4별관 9호 법정 안으로 들어섰다. 개인회생 신청자들이 모여 있었고, 참석여부를 확인하는 명부에서 내 이름을 찾아서 옆 빈칸에 사인을 하고 법정 안으로 들어섰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적잖이 놀랐다.


얼추 세어봐도 최소 20여 명은 넘는 거 같았다. 일반적인 법정 풍경과는 달리 넓은 방청석 자리에 채무자들이 앉고, 앞쪽에는 담당 변호사(개인회생위원으로 지명된 변호사)와 법원 직원들이 위치해 있었다.


잠시 후 판사가 들어오고 본격적인 개인회생 채권자집회가 시작되었다. 판사는 개인회생위원 변호사에게 채무자 참석여부를 확인하고 난 후, 사전 이의 신청한 채권자들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호명된 몇 명의 채권자들이 판사 앞쪽의 자리로 나갔고 곧바로 심의가 시작되었다.


채권자들의 이의신청 대부분은 채무자들이 재산을 따로 빼돌려 놓고 일부러 갚지 않기 위해 개인회생을 신청했다는 내용이었다. 판사는 채권자별로 이의신청 내용을 확인하고, 각각의 해당 채무자에게 그에 대한 소명자료를 준비해서 언제까지 제출하라는 식으로 결정을 내리며 빠르게 집회를 진행해 나갔다.


1시간 정도의 지루한 이의신청 확인 과정을 거친 후 판사는 더 이상의 이의신청이 없는지 마지막으로 확인을 했다. 5분 정도 기다렸지만 더 이상의 채권자 이의신청은 없었고 그것으로 채권자 집회는 마무리되었다. 다행히도 나에게 이의신청을 제기한 채권자는 전혀 없었고, 내 개인회생 신청 건에 대한 법원의 공식적인 절차도 이것으로 마무리된 것이었다. 앞으로 5년간 매월 정해진 변제금액만 성실하게 납부하면 나머지 채무액에 대해서는 면책해 준다는 회생법원의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후 반년 가까이 경제적 좌절과 고통 속에서 헤매다가 알게 된 개인회생제도. 그 제도 덕분에 감당하기 힘든 과다한 채무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개인회생제도가 도입된 배경 중 하나는 채무자들도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인권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보니 채권자의 재산 손실에도 불구하고 국가에서 개입해 ‘강제로 채권 채무를 재조정’해서 다시 경제적으로 재기하고자 노력하는 선량한 채무자들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성실하지만 불운한 채무자를 구제하기 위한 제도라는 것이다.


법원에서 개인회생 인가를 내주는 기준도 그래서 무엇보다도 채무자의 “성실함”을 중요하게 보는 게 분명하다. 이는 법원이 요구하는 신청서 서류만 봐도 대략 짐작이 간다. 개인회생 신청 진술서부터 시작해서 채무 관련(채권자 목록, 부채증명서 등) 서류, 각종 세금 납부서류, 채무자 개인 재산 관련(동산, 부동산, 보험, 주식, 개인연금 등) 서류, 회사통장 거래내역, 개인통장 거래내역, 통신사 통화내역 등 법원에 제출해야만 하는 서류가 70~80가지에 이르고, 1차 서류 검토 이후 보정 명령이 나오면 보정 서류 준비도 1차 못지않게 많은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서류를 준비하면서 느낀 거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 일상의 삶이 어떠했는지 등이 서류를 통해서 다 드러날 수밖에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개인회생제도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아직도 과도한 채무에 억눌려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불가능했을 것이고, 끊임없이 지속되는 추심 압박에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서 삶 자체를 영위해 나가는 것조차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나야말로 개인회생제도의 혜택을 톡톡히 본 사람 중의 하나일 것이고, 이런 부채감이 날 끊임없이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개인회생 변제금을 납부해 온 지 2년 6개월이 지난 현시점에서 돌아보니,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어려움과 변수가 있었다. 셋째 형 회사에서 5개월 정도 일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무엇보다 형 회사에 부담을 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기에 계속 다른 회사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는 계속 악화되어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가 않았다.


심적부담이 큰 상황에서 일을 하다 보니 업무 효율성도 갈수록 떨어졌고 불안감은 계속 커져만 갔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텨 나가고 있던 와중에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고, 그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출판사를 설립, 운영하며 가까스로 생계를 유지해 올 수 있었다.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이제 막 반환점을 돌았다. 앞으로 2년 6개월만 더 변제금을 납부하면 개인회생에서 졸업하게 된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엄청 길게만 느껴지던 5년이라는 시간이 벌써 반이 지난 것이다. 반환점을 돌아서니 결승점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단 한 번의 미납이나 연체 없이 이제까지 끌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다시 재기해서 내가 받은 혜택만큼 사회에 다시 갚아 나가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개인회생 이후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준비해 나가고 있다.


회사를 운영했을 때에는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배우기를 미뤄뒀던 포토샵, 일러스트와 같은 그래픽 프로그램, 프리미어와 애프터 이펙트 등의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들을 시간 날 때마다 반복학습을 통해 익히고 있다. 언젠가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준비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그리고 예전에 사놓기만 하고 읽지 않았던 책들을 다 모아 놓고 한 권 한 권 정독해 나가고 있다. 책을 읽으며 생각나는 것들을 그때그때 기록하며 나만의 역사를 다시 정리하고 있다. 지금의 내 형편으로는 경제적으로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우뚝 서는 것보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의 나눔을 통해 세상에 도움이 되는 길을 찾는 게 더 빠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어떤 계획이나 도전의 실패는 있을지 몰라도 인생 그 자체의 실패라는 건 없다. 과거의 실패 경험을 자양분 삼아 성공의 열매가 가득 넘치는 내일을 만들어, 이를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즐거운 상상을 해보며 난 오늘도 힘차게 현관문을 나선다.



사진 : Unsplash의 JOHN TOW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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