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잔디가 펼쳐져있는 앞마당과 분위기 있는 나무 계단이 있는 이층집. 이층 창문 너머로 보이는 파란 바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집. 이런 집에 살다니, 그것도 제주도에서. 꿈만 같던 일이 벌어졌다.
처남이 지내던 집에서 같이 지내면서 계속해서 살 집을 알아봤다.
"제주도까지 왔는데 이층 집에 잔디마당이 있는 곳으로 가자.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살아보겠어."
내가 아내에게 외쳤던 말이다.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지 하며 생각만 했던 일이 눈앞에 펼쳐질 날이 얼마 안 남았다. 꿈꾸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정말 사실이었다.
제주도는 대부분 연세 계약을 한다. 매달 월세를 내는 것이 아니라 일 년 치를 한꺼번에 내는 연세. 제주도에만 있는 독특한 문화다. 정확하게 왜 제주에만 이런 독특한 문화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번 내고 나면 일 년 동안은 걱정 없이 살 수 있으니 괜찮은 문화인 것 같다. 당장 목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부담이겠지만 제주의 문화가 이러하니 안 따를 수가 없었다.
운 좋게도 6개월 남은 전원주택이 매물로 나와 집 상태를 확인하고 계약을 했다. 경험 삼아 짧게 살아보고 좋으면 더 살고 아니면 다른 데로 이사 가기로 했다.
정말 우리가 원하던 것이 다 있었다. 앞마당엔 잔디가 있고, 일층엔 넓은 거실과 주방이 가려지는 것 없이 확 트여 있었다. 이층에도 방이 2개나 있고, 넓은 옥상은 고기 구워 먹기 최고의 장소였다. 특히 2층은 지인들이 놀러 오면 지낼 수 있는 곳으로 딱이었다.
집 구경하러 가자마자 시아가
"우리 여기서 살자."
하고 신이 난 얼굴로 소리쳤다. 아내와 나도 이 집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정말 우리를 기다린 것처럼. 이곳에서 우리 세 식구가 지낼 생각을 하니까 너무 흥분된 기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침마다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식탁에 앉아 저 멀리 바다를 볼 때면 '내가 어떻게 여기 있지?'라는 생각과 함께 입가에 미소가 머물렀다. 평소 같았으면 모니터랑 눈싸움을 하고 있을 시간인데. 조금 지나 시아가 잠에서 깨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왔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사랑스러운 알람이다. 시아를 안고 잘 잤는지 물어보고, 모닝 뽀뽀를 하고 나면 기분 좋은 하루가 시작된다. '육아휴직이 이런 거구나.'
집 주변 산책을 하면 서울에서 못 보던 꽃과 열매들이 눈앞에 가득하다. 참외도 길거리에 자라고 있고, 무화과나무도 보이고. 특히 야자수가 양쪽으로 곧게 뻗어있는 모습은 동남아에 와 있는 듯한 기분까지 들게 만들었다. 그 가운데 시아는 신나게 뛰어다니고 사진도 찍고. 시아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 행복했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접할 수 없는 풍경을 언제든지 보여줄 수 있어 더 좋았다.
처음으로 손님이 찾아온 날. 우리가 더 흥분됐다. 서울에서만 보던 가장 친한 친구 가족들을 제주도에서 보게 되다니. 그것도 우리가 장만한 집에, 첫 손님으로. 나와 아내를 소개해준 아주 고마운 친구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혼자만 있던 시아에게 오랜만에 친구들이 찾아왔고 오빠, 동생과 앞 잔디밭에서 물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찡했다. '더 일찍 이렇게 할 걸.' 시아의 행복해하는 모습은 아직도 내 마음속 저 깊이 고이 간직하고 있다.
늦은 밤. 아이들을 다 재우고 넷이 둘러앉아 우리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육아휴직부터 제주도에 내려온 이야기를. 대단하다며 '나도 육아휴직하고 제주도에서 살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한 일이 정말 잘한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멋진 삶을 살라고.' 응원해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동생이 친구와 놀러 오고, 처남과 같이 가게를 준비하는 친구들도 초대하고. 우리만의 아지트에서 우리만을 위한 조금 한 파티가 시작되었다. 맛있는 음식과 달콤한 이야기를 안주삼아 저 멀리 사라져 가는 해를 보며 '내일도 웃으면서 다시 보자.' 인사를 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시아와 아내. 이렇게 손님이 찾아오고, 음식을 대접하고, 같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것. 아무 연고 없이 내려온 제주도이지만 손님이 찾아오는 소소한 행복이 제주살이를 더 풍족하게 만들어 주었다. 누군가가 우리를 생각해 주고 찾아준다는 것. 이것보다 더 행복한 것이 있을까.
시아와 자주 보던 영화 '코코'가 생각난다. 죽었어도 살아있는 사람이 기억해 주면 죽은 자의 삶이 이어진다는 이야기이다. 몇 번을 봐도 감동적인 이야기. 아무도 우리를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슬플까.
틀에 박힌 회사에서 벗어나, 익숙한 동네를 떠나고, 시아가 좋아하는 유치원을 그만두었을 때. 버려야만 새로운 행복을 품을 수 있다는 것. 육아휴직을 하며 배운 또 하나의 교훈이었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나도 그랬고. 하지만 큰 맘먹고 버리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이다.
제주도, 마당이 있는 이 층집, 눈앞에 펼쳐진 바다 그리고 우리를 찾아주는 고마운 친구들. 나의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