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우리 이제 사장님이야."
가게를 준비하면서 듣게 된 기분 좋은 소리.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그 이름.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와 아내를 부르는 그 목소리.
다 같이 제주도로 내려오기 전. 혼자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처남을 만나기 위해. 공항까지 처남이 마중을 나왔고, 앞으로 시작할 가게와 그 주변을 둘러봤다. 여행이 아닌 제주살이를 위해 주변을 둘러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좋은 풍경과 맛있는 음식점을 찾는 것이 아닌 주변 관광지는 뭐가 있는지, 영어 마을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월급쟁이가 아닌 사업가 마인드로 주변을 보게 되었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한 나 자신에 대한 자기 체면이었을까.
이런저런 이야기 중 아내 이야기가 나왔다. 혼자서 시아를 키우느라 힘들어했던 아내를 위해 뭐든 해주고 싶었고, 처남도 고생한 누나를 위해 선물을 해주고 싶어 했다. 이것이 나와 아내가 사장님이 된 시발점이었다.
"처남. 미란이한테 조금 하게 공방이라도 해줬으면 좋겠어요. 취미로 뜨개질도 하고, 자기만의 공간이 있으면 더 좋아지지 않겠어요?" 내가 말을 꺼냈다.
"좋죠. 저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괜찮은데 있는지 알아볼게요. 매형."
역시나 처남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갑자기 처남에게서 연락이 왔다. 3층짜리 건물을 보고 있는데 같이 봤으면 좋겠다고. 원래 계획했던 고깃집 건물이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싸움으로 소송에 들어가는 바람에 처남은 다른 곳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괜찮은 건물이 나왔고 우리가 이야기했던 아내의 공간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보니 산방산이 정면에 보이고, 건물도 깔끔해서 조금만 꾸미면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을 것 같았다. 아내와 시아도 마음에 들어 했고, 여기서 시작해 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일이 너무 커져버렸다. 작은 공방을 생각했던 나에게 처남은 나와 아내를 사장님으로 만들어 버렸다.
1층은 처남이 맡아서 식당을 하고, 2층은 카페와 소품샵을 같이 하기로 했다. 소품샵이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분야였다. 소소한 아내의 뜨개질이 커다란 사업으로 눈앞에 다가왔다.
소품샵을 먼저 오픈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우고 건물 외관과 2층을 꾸미기로 했다. 먼저 건물 외관은 가리고 있던 야자나무들을 옮겨 멀리서도 잘 보이게 만들었고, 2층은 예쁜 소품들을 진열하기 위한 선반 설치, 멋진 조명 설치 그리고 소품들을 업체로부터 구매했다.
모두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회사에서 주어진 일만 하던 나에게 '어떻게 진열하면 손님들 눈에 더 예뻐 보일까. 어떤 소품들을 사야 손님들의 관심을 더 끌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집에 가는 길에도, 집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는 중에도, 아내와 계속해서 의견을 주고받았다. 고된 날이 계속되었지만 우리 가게라는 생각에 힘든 줄 몰랐다.
가게를 꾸미기 위해 새벽까지 짐을 나르고, 비가 오는 중에도 바깥 정리를 하고, 손님들에게 맛있는 커피를 드리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여러 종류의 커피를 만들고, 좀 더 예쁜 소품들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업체에 전화를 하고.
매일 새로운 일들로 하루가 채워져 갔다.
남을 위해 일하지 않고 나를 위해 일한다는 것. 책으로만 봐왔던 일이 나에게 다가온 것이었다. 누군가의 지시를 받지 않고 나 스스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 이것보다 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게 있을까.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했다.
회사로 출근하는 것이 아닌 우리 가게로 아내와 같이 출근을 하고, 같이 가게를 꾸미고, 같이 가게를 정리하고, 같이 집으로 오는 일상이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다. 혼자 놀아야 했던 시아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우리 세 식구 떨어지지 않고 계속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큰 기쁨이었다.
드디어 가게 오픈 날.
손수 만든 간판을 입구 앞에 설치하는 그 순간. 마음이 뭉클했다. 육아휴직 신청한 날, 제주도 오던 날, 가게 계약한 날, 머릿속에 순간순간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계획에 없었던 일이었지만 해냈다는 생각에 벅차오르는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첫 손님이 왔다. 카운터에서 긴장되고 조마조마했던 기분이 싹 사라졌다. 이제는 어떻게 손님을 상대해야 할지가 가장 큰 숙제였다. 처남에게 배웠지만 실전은 역시나 어려웠다. 가게를 둘러보는 손님을 지켜보는 아내와 나. 서로 눈을 마주치면 웃기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자리에서 이런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라니시아'
가게 이름이다. 아내와 딸 시아의 이름을 합친 예쁜 단어. 지금 생각해도 너무 예쁜 이름이다. 아내가 몇 날 며칠을 고민해서 탄생한, 세상에 하나뿐인 이름이다. 우리의 첫 가게에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딸의 이름이 들어가 있으니 지금까지 아내와 딸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만회한 느낌이었다.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항상 마음 한구석에 뭉쳐있던 몽우리가 사라져 버린.
새로운 일에는 항상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존재한다. 하지만 두려움을 이겨내면 더 큰 즐거움이 다가오고, 가슴 떨리는 설렘은 가슴 뭉클한 행복으로 다가온다. 항상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던 나에게 가게 오픈이라는 새로운 도전은 어찌 보면 메말라 있던 나의 마음속 새싹에게 촉촉한 한 움큼의 물이지 않았을까. 이를 바탕으로 한 층 더 자랄 수 있는, 한 층 더 가족에게 다가가는 내가 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