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운전 엔지니어로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항상 가슴에 품고 사는 말이 있다. ‘시운전이란 공장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시운전 엔지니어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첫 면담 때 팀장님께서 해주신 말이다. 이 말은 지금까지 시운전 일을 하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헤쳐나갈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싶었던 나에게 시운전이라는 일은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입사 원서를 준비하면서 ‘시운전이 뭐 하는 일이지?’ 의문을 품고 있던 나에게 세계 곳곳에 거대한 공장을 짓고 운전하는 일을 하다는 것 자체가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건설업에 종사하시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아버지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일하셨는데 자식도 떠돌이 생활을 한다고 하니 탐탁지 않으셨다.
입사 후 사우디 아라비아, 태국, 이집트 다양한 대륙과 국가에서 일을 했다. 첫 프로젝트로 사우디 아라비아를 갔을 때는 말로만 듣던 사막 한가운데 공장이 건설되고 있었고, 숙소도 그 옆 컨테이너 박스로 되어 있었다. 문화적 충격이었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모래 폭풍은 한 치 앞도 안 보이게 만들었고, 난생처음 외국인과 일도 같이하게 되었다. 일 년 동안의 사우디 아라비아 경험은 앞으로의 프로젝트 수행에 밑거름이 되었다. 처음부터 혹독한 트레이닝을 했으니 앞으로의 일은 뭐든지 잘해 낼 자신이 있었다.
첫 프로젝트 복귀 후 결혼을 하게 되었고, 이 책에서 다루어질 두 번째 프로젝트를 본사에서부터 수행하게 되었다. 두 번째 프로젝트인 태국 프로젝트는 내가 시운전 엔지니어로서 성장할 수 있는 뼈대를 만들어 주었다. 프로젝트 초기부터 완공, 공장 운전까지 총 5년 동안의 경험은 시운전이라는 업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프로젝트가 없었다면 아마 현재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특히 업무 뿐 아니라 태국 생활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아내와의 태국 생활, 사랑하는 딸의 탄생, 팀원들과의 여행 등 다시 떠올려봐도 기분 좋은 일들이 많았다.
두 번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복귀하자마자 6개월 후에 또 다른 프로젝트로 파견을 가게 되었다. 이번엔 이집트. 아내와 어린 딸을 두고 떠나야 했지만 이 프로젝트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나를 만들어냈다. 이제까지 회사에서 해보지 않은 공정을 맡아 성공적으로 공장 운전까지 마무리하였고, 매니저로서의 역할도 조금씩 수행해 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시운전 엔지니어로서 한층 성숙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시운전이라는 일에 대해 자부심도 가질 수 있었다. 시운전은 프로젝트 전체 중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 대략 프로젝트 수행 비용의 1 ~ 2%를 차지할 뿐이다. 하지만 금액으로 표현되지 않는 많은 일들이 그 적은 금액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특히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책임을 진다는 사명감은 어느 부서보다도 크다. 차갑게 얼어붙어 있는 공장에 생명을 불어넣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은 시운전이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시운전이라는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다.
공장이 돌아가고 제품이 나올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온몸이 짜릿해지는 이 느낌을 겪어보면 항상 현장이 그리워진다. 왜냐하면 현장에 있을 때 시운전 엔지니어는 빛나기 때문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달려 나가는 사람이 바로 시운전 엔지니어다. 그래서 공장이 돌아가는 순간부터 시운전 엔지니어는 항상 긴장하며 지낸다. 퇴근을 해서도 공장 생각, 밥을 먹으면서도 공장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누구는 ‘그럼 하루종일 스트레스 받아서 어떻게 살아’라고 하지만 이것이 시운전 엔지니어의 운명이다. 이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시운전 엔지니어를 할 수 있다.
시운전 엔지니어는 Generalist이면서 Specialist다. 시운전 작업 외 배관, 기계, 계장, 전기 등 다양한 공종들의 설계 자료도 볼 줄 알아야 하고, 공사 작업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후속 작업들을 진행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운전 엔지니어는 Generalist이다. 그리고 후속 작업들은 시운전 고유 업무이기 때문에 그 작업에 대한 스터디와 자료 분석을 진행해야 한다. 여러 공종들의 자료를 바탕으로 시운전 만이 진행할 수 있는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Specialist다.
이제는 시운전 엔지니어로서 경험하고 받았던 모든 것들을 알려주고 싶다. 시운전이 어떤 일이지, 시운전 엔지니어가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운전에 관심이 있고 시운전 엔지니어가 되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이 책 한 권으로 시운전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으나 ‘시운전이 이런 거구나’ 하는 느낌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시운전은 특별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시운전 엔지니어의 꿈을 품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분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세상은 넓고 시운전 할 일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