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나아가기
이제 내가 하고자 하는 길은 명확하다. 빵과 관련된 업을 삼고 싶은 것. 그래서 바로 제과 제빵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로 결심했다. 필기시험을 위해 독학으로 공부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패기 있게 1주일 뒤로 시험을 신청했다. 책을 사기도 전에 시험부터 신청한 것이다. 보통은 독학을 2-3주는 해야 한다는데 아마도 책을 먼저 샀더라면 한 달 뒤 시험으로 신청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됐건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일주동안 도서관을 다니며 꽤 많은 시간을 공부를 했다. 현재 일을 하지 않기에 공부에만 전념했다.
하지만, 공부를 하다 보니 생각보다 어려웠다. 포도상구균 엔테로톡신,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늄균 뉴로톡신, 클로스트리디움 퍼프리젠스와 같은 읽기조차 어려운 세균성 독소형 식중독에 관한 것들도 알아야 했다. 빵 만드는 것은 과학이었던가. 먹기만 잘 먹었지 빵을 만드는 과정이 이렇게나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지는 몰랐다.
역시 관객과 플레이어는 엄연히 달랐다.
드디어 시험날. 결과는 53점. 웃음이 나왔다. 60점을 넘어야 합격이었기 때문이다. 1주일 공부한 것치곤 잘 나온 것이지만 애매한 점수에 헛헛한 웃음이 먼저 나온 것이다. 시험은 바로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치를 수 있지만, 불현듯 내가 지금 이 시간을 들여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맘 편히 공부할 때가 아니라 돈을 버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이 길의 경력이 없으니 신입으로라도 들어가서 경력을 쌓고 돈을 벌면서 자격증을 따는 게 더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 말이다. 필기 이후에 실기도 보아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2-3개월은 더 걸릴 텐데, 나에게는 그 정도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다음날 바로 이력서를 지원했다. 평소 눈여겨봤던 빵 관련 회사들에 이력서를 넣었다. 3곳 정도 넣었는데 한 곳에서만 불합격이라는 메일이 날아왔다. 다른 곳은 확인조차 안 한 건지 깜깜무소식이었다. 안 되는 게 당연하고 되면 좋은 거다라고 생각했지만 '불합격'이라는 단어는 늘 마음이 쓰리다. 쿵 하고 심장에 지진이 난 것처럼 온 마음에 흔들림이 남아있다. 이러다 진짜 시간만 지나가는 거 아닐까? 너무 앞뒤 안 가리고 일을 그만둬버린 걸까 내 마음의 불안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것은 찾았지만 그 길을 걸어가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불현듯 한라산을 등반할 때가 떠올랐다.
목표는 한라산 정상을 찍고 내려와 인증서를 받는 것 하나뿐이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산을 오르기 시작했었다. 평소에 등산이라곤 청계산 '옥녀봉' 정도 다녀오는 실력이었다. 게다가 등산화만 새로 샀지 배낭이나 기타 장비도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올라간 길이라 더 어려웠고, 내게는 정상을 올라가는 것보다 하산이 더욱 어려웠다. 내 다리가 뇌와 분리된 느낌이랄까. 나의 예상보다도 한라산 완등의 길은 더욱 고난도였다.
정상에서 간식도 다 먹은 상태라 당이 떨어지는데 채울 음식이 없었다. 옆에서 귤을 먹는 아주머니가 어찌나 부럽던지. 약 8시간 등반에 골반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아 더 이상 걷지 못할 거 같았다. 옆에 보이는 '부상자 레일'을 호출할까도 깊이 고민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내려와서 레일을 타고 끝을 내기는 싫었다. 괜한 오기가 발동한 것이다. 그렇게 가다 쉬다 반복하며 숨 막힐듯한 고비를 지나고 나니 어느새 나는 평지에 발을 딛고 있었다.
한라산 등반 날을 떠올리며 또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방법을 찾아가기로 했다. Don't Look Back. 이제는 뒤를 봐도 돌아갈 수 없다. 앞만 보고 회사에 지원도 해볼 데로 해보고, 지원사업도 도전해 보고, 정안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자고 다짐했다. 움추러들지 말고 앞을 향해 걸어가자. 한 달 일 안 한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니까. 나를 믿고 응원해 주자. 세상에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기다려주자. 내가 새로운 길에 발을 디딜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