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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청년들의 수다

너무 많은 경력을 지닌 사람들

by 코지

내년이면 마흔. 나는 아직 청년에 속한다. 청년 막바지랄까. 나는 아직도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고군분투 중이다.

정확히 말하면 진로는 찾았지만, 어찌 시작해야 될지 방법을 모르겠다.


얼마 전 나의 절친 K를 만났다. K는 디자이너로 이직준비 중에 있었다. K가 면접을 본 날 서로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동안 K는 이력서를 100곳 넘게 쓰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면접 연락이 오는 곳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K는 나보다 더 일찍 일을 시작했기에 경력이 14-15년 차이다. 소위 말해 팀장급인데, 지금 디자인팀의 팀장급을 뽑는 회사가 많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회사가 가장 선호하는 연차는 5-7년 차의 대리 과장급이니까.


K와 나는 나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서로 '우리가 올해 몇 살이지?'라고 물어보며 나이에 대한 감각이 둔한 사람들이다. 좋게 말하면 철없이 젊게 사는 사람들이고 나쁘게 말하면 현실과 다소 동떨어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의 이력서를 보는 사람들은 매우 현실적인 사람들일 거라는 사실을.


나이에 연연하고 싶지 않았지만 현실이 그러했다. 소위 이력서를 열람하는 팀장급들이 우리보다 나이가 적을 가능성이 많았다. 그럼 우리의 서류는 읽히지도 않고 창이 꺼지겠지. 확실히 예전 30대 초반에 이직을 했을 때와 서류 합격의 빈도가 다르다. 점점 이직하기도 힘들고 적응하기도 힘들다던 그 말을 이제야 체감한다.


물론 서류의 내용이 부족해서 떨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면접을 보기도 전에 나이로 걸러지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현실을 생각하니 씁쓸했다. 면접의 기회가 생긴다면 잘할 자신 있는 우리였다. 사실 우린 서류보다는 면접에 강한 타입이기 때문이다.


그날은 기분 좋게도 나와 함께 수다를 떠는 시간에 K의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내 일처럼 기쁜 순간이었다. 지금처럼 힘든 시기에 연봉까지 올려 야무지게 이직에 성공한 내 친구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이런 실력자를 나이로만 걸렀을 얄미운 기회들이 야속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동안 이직준비를 하며 맘고생 했을 친구를 위해 술 한잔을 선물했다. 기쁜 일에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여기저기서 실직 소리가 들려온다. 조만간 퇴사를 할 것 같다고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있던 분야는 마케팅 분야이기 때문에 더 그러할 것이다. 매출이 떨어지면 제일 먼저 없어지기 쉬운 자리이다.

매출이 저조해서 나가라는 건 이해라도 간다. 능력이 부족해 보이니 자르겠다고 하는 거 까지도 이해하겠다. 회사에서는 매출이 인격일 테니.

얼마 전에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직한 곳에서 매출을 냈음에도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했다고 한다. 장기 근무한 상사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라나. 이건 또 무슨 경우일까?


하지만 이직이 어려운 나이라고, 고용시장이 얼어붙었다고 세상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아무리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도 1%의 아주 적은 가능성이 있다면 나는 도전해 볼 것이다. 나는 나이에 상관없이 꿈을 이뤄가는 사람이니까. 인생은 방황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경제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청년들이 현실에 부딪혀 자신의 실력을 의심하며 움츠려 들기보다는 내 안의 강점을 발휘하고 희망을 보며 일을 했으면 좋겠다.

아직 우리는 인생의 시계에서 오후를 막 시작한 사람들이니까. 방황 좀 하면 어떤가.
움직이고만 있다면 언젠가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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