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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호의 아침 안개

영원히 걷히지 않을 것 같던

by 코지 Mar 17. 2025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중인 나. 하고 싶던 일을 하기 위해 지원 사업도 도전해 보고, 오랜만에 이력서를 업데이트하여 지원도 해봤으나 좋은 소식은 선뜻 들려오지 않았다. 남들은 바쁘게 일하고 있는데, 나 혼자만 여유로운 시간들을 보내는 것 같아 자책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밀려왔다.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지인들은 나에게 일을 그만둔 지 한 달 정도 되지 않았냐며 여유를 가지라 했다. 물론 나도 매일 마음을 다스리려 하지만 불안함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내 인생에서 다음을 생각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일을 그만둔 것은 처음이니까. 어쩌면 심란한 게 당연했다.


그때 친한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머리 시킬 겸 가평에 갈 건데 놀러 오라며. 예전이었으면 망설임 없이 갔겠지만, 고민이 됐다. 당장의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내가 지금 놀러 가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집에서 머리 싸매고 있어도 바뀔 것은 없기에 언니의 요청에 응했다. 


마음이 답답했던 요즘 근교라도 떠날 생각을 하니 설레었다. 그런데 그때 간단하게 먹을 저녁거리를 사가는 길에 지원했던 곳에 서류가 탈락했다는 메일을 받았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람. 헤드헌터에게 먼저 요청이 왔던 지라 면접까지는 수월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이번에 연이 닿지 못했다는 것이다.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만 흘러가지 않는구나. 씁쓸했다. 하지만 크게 낙담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된다 한들 내 마음이 이끄는 곳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탈락'이라는 사실에 기분 좋을 리 없었지만, 나름 괜찮았다. 오히려 나의 고민을 덜어 줬구나. 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도착해서 칼집 삼겹살과 복분자 와인을 마시며 언니와 긴 수다를 떨며 서로의 고민을 나눴다. 일, 사랑, 앞으로의 미래 등에 관하여. 내가 놀랐던 부분은 언니는 누가 봐도 안정적인 회사를 다님에도 나름의 고민이 또 많았다. 곧 불혹의 나이에 진입한 우리가 겪어야 할 성장통인 걸까? 그날 나는 한숨도 이루지 못했다. 걱정과 고민이 또다시 자기 꼬리를 물며 뱅뱅 도는 강아지처럼 반복됐기 때문이다. 


꼴딱 밤을 새운 아침, 3월의 아침과 어울리지 않게 안개가 자욱했다. 3미터 너머의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평화롭던 청평호의 풍경이 사라져 버렸다. 그 풍경을 보는데 내 머릿속과 같다고 느꼈다.  무겁고 진한 안개들이 내 앞의 미래를 차단한 느낌. 저 너머에는 뭐가 있을지 추측할 수 조차 없어 불안감을 조성하는 느낌이랄까. 그건 그렇고, 창가에는 반신욕을 할 수 있는 욕조가 있었다. 나는 욕조에 몸을 담그기로 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가 있는 풍경을 감상하며.


20분쯤 몸을 담갔을까? 나를 감싸고 있던 피로가 씻겨갔다. 더 이상 나의 기분은 날씨와 상관없었다. 이걸로 충분했다. 나의 다리와 팔을 주무르며 고생했다는 말도 함께 전했다. 그동안 속 시끄러웠을 텐데 애썼다. 잠깐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쉬자라고. 언젠가 유명 연예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반신욕이라도 하는 날에는 이미 충분히 행복하니 오늘 하루 망쳐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나도 딱 그러했다. 

우울한 풍경과는 정 반대로 오늘 하루 이미 행복이 꽉 찬 느낌이었다. 


반신욕이 끝나자 눈이 쌓인 산 끝자락이 빼꼼하고 나타났다. 슬슬 배가 고파 빵과 차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창가에 앉았다. 그러자 1시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맑고 청량한 풍경이 내 앞에 나타났다. 누군가 슬라이드로 풍경을 갈아 끼운 것 마냥. 심지어 그날 오후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스한 봄날의 햇살마저 함께했다. 산책하는 동안에는 키가 큰 나무 위에 학처럼 보이는 새들 여럿이 둥지를 틀고 있는 관경도 보았다. 굉장히 먼 곳에서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행복했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가끔 그 순간이 영원할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마치 오늘 아침 내가 안개를 마주하고 하루 종일 안개가 가득할 것이라고 속단하고 단정 지었던 것처럼. 사실 나는 잠시 머물다간 안개의 찰나의 순간을 본 것이고, 그것은 잡아 둘 수도 없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인데 말이다. 어쩌면 내 안의 불안과 괴로움도 모두 내가 단정지은 것들 인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이럴 것 같다는 섣부른 판단인 셈이다.


아침 안개에 교훈을 얻어 나의 걱정과 괴로움을 찰나의 순간으로 기억하려고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처럼, 지나간 것들을 붙잡아 내 마음에 욱여넣는 것을 멈춰야겠다. 나를 스스로 불안하게 만드는 것을 그만둬야겠다.  결국 걷히지 않는 안개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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