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무인도섬을 떠나야 할 때
직장생활을 할 때였다. 쉴 새 없이 울리는 휴대폰을 바라볼 때면, 정신이 산란해졌다. 밤낮없이 주말이고 휴일이고 상관없이 울려댔던 내 휴대폰. 여러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했던 나의 업무 덕에 휴대폰 알림과 전화 소리에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였다. 회사에서 업무용 휴대폰을 지급해주기도 했는데, 너무 많은 연락에 휴대폰만 바라봐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가 아니더라도 나의 휴대폰은 쉬지 않고 울려댔다. 개인톡, 단톡방, 협력사 전화, 상사의 전화, 동료의 전화할 것 없이 가족의 전화, 친구들의 전화 등등. 내가 보고해야 될 것들 그리고 내려야 할 결정들이 많던 때였다.
해외 광고촬영을 담당했을 때가 휴대폰을 싫어하게 된 계기였는데, 프라하에서 진행되는 광고촬영이었다. 처음부터 일이 좀 꼬여서 매끄럽지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현장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그것도 아주 큰 문제가. 어찌어찌 현장 문제를 급하게 해결하고 다음 날 촬영 일정을 위해 잠깐 눈을 붙이려는데 한국에서 전화가 빛발 쳤다. 회사에서 오는 전화였던 것이다. 무슨 일이냐며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소리에 2-3시간 잘 수 있던 나는 그마저도 포기해야 했다. 당시 나는 그 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출장기간인 3일 동안 3킬로가 넘게 빠졌다.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힘들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나는 휴대폰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마저 들었다.
휴대폰이 나를 옥죄 오는 것 같았고, 나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물론 휴대전화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말이다. 그때 나는 아무와도 연락이 닿을 수 없는 무인도 섬에서의 일주일간 휴가를 떠나고 싶다는 상상을 했다. 그 정도로 나는 연락에 지쳐있었다.
그런데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더니 드디어 휴대폰이 울리지 않는 날이 온 것이다. 요즘 나의 휴대폰은 다른 행성에 있는 것 마냥 조용하다. 기지국을 떠난 느낌이다. 가끔은 이렇게까지 연락이 안 올 수 있다고?라는 생각에 휴대폰이 꺼져있는 건 아닐까 하고 자꾸 확인을 하게 된다. 그러고는 일을 쉬고 있는 요즘, 나를 찾는 사람들이 현저히 줄었다는 생각에 바쁜 것도 다 한때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리운 감정마저 든다. 아주 조금이지만.
그리고 지금 나와 연락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함께 든다.
휴대폰을 비롯해서 내 인생에서 이렇게 고독했던 적은 없었다. 늘 사람들 속에 쌓여있었고, 늘 바빴고, 늘 할 일이 넘쳐났던 나였다. 그런데 요즘 신기하리만큼 내 주변은 적막하다. 미래가 불투명하니 누군가와 약속을 잡거나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의욕이 사라지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도 나의 소식이 궁금하지만 섣불리 물어보지 못하는 눈치다. 어쩌다 나를 만나거나 연락을 하면 "요즘 뭐 하고 지내? 너무 조용해서'라며 말을 건다.
어쩌면 지금의 고요함은 내가 그토록 원하던 무인도 섬에서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처음이라 낯설지만 마냥 싫지많은 않다. 마음과 주변이 정리가 된 느낌이랄까? 쓸데없이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이 사라지니 중요한 것에 집중을 할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난 것 같다. 예전에는 그저 세상에 휩쓸려서 살아갔던 느낌이라면, 그래도 지금은 하루하루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채워가는 기분이다.
적당히가 가장 어렵다고 이제는 나의 휴대폰이 적당히 울렸으면 좋겠다. 예전처럼 바쁘기만 한 연락 말고, 지금처럼 적막하기만 한 연락 말고, 좋은 소식도 전하고 의미 있는 소식도 전해주는 그런 울림들 말이다.
언젠가 휴대전화 벨이 기대되고 설레는 날이 오겠지. 그날이 많이 멀지는 않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