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저 지켜볼 뿐, 너는 스스로 잘 커가고 있다.
도아야, 많은 사람들이 돌잔치 때는 아기가 걷는다고들 했다. 할머니 말로는, 너의 아빠는 돌잔치에서 뛰었다고 했다. 엄마 또한 돌잔치 때 걸어서 입장했다고 한다. 나는 너와 함께 걸을 그날을 기대했고, (사실 자꾸 밖에서 기어 다니려는 너를 잡는 게 힘들어서 걷길 바란 것도 있다.) 돌잔치 때 귀엽게 입장할 너를 상상했으나 너는 돌잔치에서 아빠 품에 안겨서 입장했다.
10개월쯤 되었을 때 너의 또래 친구가 걸음마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나는 괜히 조바심이 났다. 걸음마 연습을 시키고, 보조기를 사보고 걸음마에 좋다는 건 다 해봤던 것 같다. 하지만 너는 그래도 걷지 않았다. 돌잔치에서도 너는 걷지 못했고, 돌 사진 속 깜찍한 너의 모습은 전부 맨발이다. 나는 괜히 속상했다. 마치 뒤처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내가 널 덜 건강하게 키운 건 아닌지 의심했다. 너무 안전만 생각하고 집에 꽁꽁 숨겨 놓고 너를 키운 탓에 네가 많이 걸을 기회를 잃게 만든 것은 아닐지 걱정했다.
너는 그렇게 돌이 지나고도, 또 한 달이 더 지난 후에야 엄마 아빠한테 스스로 걸어와주었다. 네가 걸어와주던 그 순간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날 가족들과 다 같이 있었기에 나는 눈물을 꾹 참고야 말았다. 아마 혼자 있는 시간에 너의 첫걸음마를 보았다면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다 못해 너무 좋다며 너를 안고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침내 걸어와 준 네가 엄마는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마치 늦게 걸은 것 같지만 네가 걸은 그때는 아이들의 걸음마 시작의 평균적인 시기였다. 대체 뭐가 그렇게 조바심이 났었는지, 나도 과거의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
사실 걸음마 이외에도 말하는 것, 먹는 것부터 다양한 발달 과정을 나는 걱정하고 다른 아이들은 어떤지 찾아보곤 했다. 이게 얼마나 바보 같고 의미 없는 것이었는지를 너는 직접 잘 커가는 너를 통해 보여주었다. 내가 어떠한 노력을 해도 혹은 어떠한 실수를 해도, 너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상관없이 너만의 속도로 잘 성장해주고 있었다. 내가 해야 하는 것은, 그래, 그저 지켜보는 것일 뿐 인 듯하다. 그리고 응원해 주는 것. 좋은 음식을 주고, 다치지 않게 옆에서 있어 주는 것.
너의 걸음마를 기다리고 조급해하던 어설픈 모습의 나는 앞으로 잘하기 위한, 너를 키우는 엄마의 연습 과정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앞으로 너를 키우며 수많은 성장 과정들이 있을 테고, 또 수많은 비교군들이 있겠지만 나는 너의 성장을 더 이상 비교하지 않고 조바심 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연습했으니. 너는 너만의 속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도아야, 너는 언젠가 어린이가 되고 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겠지. 네가 커갈수록 아마 이런 나의 고민들은 더욱 현실이 되고 어쩌면 그런 고민으로 인해 너와 충돌을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너의 공부 문제로 혹은 너의 진로 문제로 우리는 종종 부딪힐지도 모르겠다. 난 그럴 때마다 너의 첫걸음을 기억하며 너를 믿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