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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현 Feb 20. 2023

같은 곳에 있지만 다른 일상의 경험

매일노동뉴스 기고

노동정책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에서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맥도날드 알바를 시작해,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에서 그다음엔 관악구노동복지센터에서 활동했다. 20대 내내 노동운동을 하면서 현재의 낮은 노조 조직률과 저신뢰 속에서 노조의 의미와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됐다. 다른 배경의 다양한 사람들의 여러 의제를 접했던 것이 나에겐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계기였고, 고민 끝에 해외에 잠시 머무는 것을 선택했다. 16개국의 배경을 지닌 25명이 함께 공부하고 있다.



처음엔 혹시나 물건들 도난 당할까 봐 잠금장치도 챙겨 왔지만, 이제는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임을 느끼고 있다. 저녁에 일찍 닫고 일요일에는 열지 않는 상점들도, 야외에선 마스크 쓰지 않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익숙해지고 있다. 어느 날은 나를 향한 뜻 모를 고함에 이게 인종차별일까 아닐까 고민하지만, 또 어느 날은 모르는 사람들의 친절에 ‘만약 내가 길거리에서 울고 있으면 누군가는 도와줄 것’이라는 신뢰감도 느끼고 있다.



사람 사는 곳은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생활 속에서,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쭉 살았을 땐 경험하지 못했던 낯선 점들도 문득문득 느끼고 있다. 지금 느끼는 이상함을 처음 느낀 때는 몇 년 전 스위스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가했을 때였다. 많은 사람이 모이고 사람마다 못 먹거나 안 먹는 음식이 다르기 때문인지 점심은 자율로 먹었는데, 다 같이 모여 회의를 하던 사람들이 점심시간이 되니 행선지가 대륙별로 저절로 나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필요한 참여자들에겐 회의 기간에 생활할 수 있는 비용을 주최 측에서 지급했다. 그럼에도 스위스와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국가에서 온 참여자들은 식당으로, 나를 비롯한 국가들은 마트로, 물가 차이가 크게 나는 나라들은 조리시설이 갖춰진 본인들의 숙소로 향하는 경향을 느꼈다. 수능이 끝나자 같은 반 친구들이 몇은 바로 알바를 하러, 몇은 PT를 받으러 가는 모습을 봤을 때 느꼈던, ‘같이 있지만 다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에 오고 본격적으로 학기가 시작하기 전, 교수님과의 특강은 온라인 수업으로 이뤄졌다. 교수님이 비자 문제로 독일에 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학기가 시작됐지만 여전히 온라인으로만 만나고 있는 동기들도 있다. 역시 비자 문제 때문이다. 학교의 도움으로 지금은 문제를 해결했지만, 특정 국적의 신분이기에 은행계좌 개설을 거부당한 동기도 있었다. 본국과의 물가차이로 장학금을 수령하기 전까진 숙소에만 머문 동기들도 있었다. 국가 간 경제적 불평등 때문에 모든 사람이 보장받아야 할 자유와 권리임에도 불평한 일상을 보내야 한다.



이러한 불평등을 메꾸기 위해 해외 노동운동에 연대하고 지원하는 노조와 노동단체들에 감사하다. “오징어 게임 봤다” “삼성, 현대, 손흥민 안다” “박정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한국에 대한 말과 질문들 말고도, “그래도 한국의 노조들이 아시아권 지원 잘한다” “우리나라 공장 문제를 한국과 같이 공동대응하고 있어” 이런 이야기도 듣고 싶다.



몇몇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노동법을 위반하고, 노조를 탄압하고, 아동노동을 비롯한 노동착취를 하는 것에 공동대응해야 한다. 다른 국가의 노동자 착취를 기반으로 우리도 생활의 편의를 누리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국제 불평등 해결을 위한 노동운동에서의 국제연대와 공동대응은 의무이기도 하다. 해외의 노조와 운동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던 한국의 노동운동이 이제 받은 것을 돌려주는 길이기도 하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5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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