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기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영화를 좋아한다. 현실이 답답한데, 영화 볼 때마저 답답한 건 내 취향이 아니다. 영화를 자주 보지 않고, 두 번 이상은 더욱 보지 않지만 <오션스8>은 두 번 봤다. 정의로운 결말의 영화도 좋아한다. 영화에서라도 ‘사이다’를 들이마시고 싶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도 세 번쯤 봤다.
하나 더 잘 본 영화가 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다. 주연 세 명은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여성 직원이다. 회사 내에서 권한 없고 발언권 없는 세 명이 회사의 폐수 방출 문제를 파헤쳐 나가는 내용이다. 회사에서 무시당하는 직군의 여성노동자들이 함께 힘을 모아 환경 오염과 재해, 성차별, 노동문제에 맞서 싸워 나가고 끝내 승리하는 이야기는 내 취향에 딱 들어맞는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나오는 주연 중 한 명인 이자영은 회사의 폐수 방출을 목격한다. 이자영은 내부고발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동료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영화감독이 밝히길, 이자영 캐릭터는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의 임종린 지회장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파리바게뜨지회를 처음 알게 된 건, 파리바게뜨의 불법파견에 항의하는 투쟁에 연대하면서였다. 파리바게뜨에서 빵을 만들고 음료를 제조하는 제빵기사와 카페기사는 본사의 업무지시를 받아 가맹점에서 일하지만, 협력업체 소속이었다. 고용노동부는 이들을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시정명령을 내렸으나, 이후 합의를 통해 ‘3년 내에 본사 직원과 동일 수준의 급여를 적용한다’는 내용과 함께 자회사 피비파트너즈를 세웠다. 그러나 동일 수준의 급여는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민주노총 조합원에 대한 승진 차별과 탈퇴 압박 또한 있었다. 현재 파리바게뜨지회는 사회적 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회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도 항의하고 있다.
파리바게뜨지회의 투쟁이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가맹점으로 흩어져 일하는 노동자들을 조직했다는 점도 있다. 몇 년 전 파리바게뜨에서 주방보조 일을 한 적이 있다. 실제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25시간을 일했지만, 계약서는 주 3회 14시간50분으로 작성했다. 가맹점에 자문해 주는 공인노무사가 있었고, 노무사가 매장을 방문한 다음날 14시간50분 계약서를 작성했다. 주휴수당이나 연장수당은 없었고 (추후에 노동청에 직접 진정을 넣어 체불수당을 받았다) 휴게시간과 휴게공간 역시 없었다. 매장 응대를 담당하는 노동자는 애초에 주 14시간30분만 근무하게 했다. 주휴수당과 퇴직금 등을 피하려고 초단시간 계약을 한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여성·청년이며, 시간제로 일한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조직하는 활동을 하며, 파리바게뜨지회의 활동을 종종 참고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가맹점과 계약을 맺고 가맹점에서 일한다’는 점과, ‘다른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과 만날 일이 없다’는 점에서 제빵·카페기사와는 다른 상황에 있기도 하지만, ‘불안정한 노동조건’ ‘가맹점으로 흩어져 일하는 점’ ‘본사에서는 자기들 책임이 아니라고 발뺌한다’는 점은 같기도 하다. 노동조합 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사업장을 조직한 성공적인 사례라는 점에서 파리바게뜨지회는 나에게 희망을 줬다. 30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가 1천100만명이 넘는 것에 비해, 30명 미만 사업장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0.2%에 불과하다. 흩어져서 일하는 노동자가 많은 현실에서 ‘직원들 사이의 네트워킹 활용’ ‘분명한 의제’ ‘정치와 연계를 통한 파급력’ ‘비슷한 상황의 여성·청년·불안정노동자와 연대’를 만들어 낸 파리바게뜨지회의 활동은 노동운동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준다.
회사가 노동조합을 파괴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힘껏 투쟁하는 파리바게뜨지회를 응원한다.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지만, 때로는 현실이 더 영화 같을 때도 있는 법이다. 통쾌하고 정의로운 승리를 기원한다.
*2022년 6월 기고한 글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9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