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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비 Apr 22. 2024

장산(by. 못골)

#16. 우리 동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

우리 동네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

해운대 좌동은 옛날에는 분지형의 땅 모양에 모두 논밭이었다. 신시가지 조성사업에서 제외되어 남아있는 지금의 문화회관이 있는 뒤쪽에 돼지를 기르는 민가가 몇 채 있었다고 한다. 그 이외는 모두 군사작전지역으로 군인들이 주둔하여 인근 해안초소를 경비하던 민간인 통제지역이었다.


경제 개발이란 이름으로 부산 시내의 온 하천은 복개되고 시내로 내려오는 계곡류는 상인들의 독점으로 오염되고 망가져 모두 하수구로 변해 버렸다. 부산에서 유일하게 청정지역으로 남아있는 곳이 장산에서 발원하여 대천천을 이루고 다시 춘천을 거쳐 미포 쪽으로 빠져나가는 계곡류이다. 벌써 옛날에 망가졌을 조건이지만 군대 주둔 덕분에 살아남아 지금은 부산에서 유일하다. 이 계곡은 소규모이지만 폭포를 이루고 자그마한 암자를 품고서 해운대를 내려 보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자주 찾는 곳이 이 장산 계곡이다. 집에서 장산까지 걸으면 30분 정도 거리이다.


고당 할매당이 있는 것을 보면 장산은 여자 산으로 보인다. 겨울에도 수량이 풍부하다. 겨울에 눈이 하얗게 내리면 장산은 아름다운 설국이 된다. 해운대 문화회관에서 산 쪽으로 보이는 작은 다리 옆에 계곡류가 흐르고 있다. 더 아래로 가면 이 계곡류는 생활오수로 오염되기 때문에 여기까지가 청정 구간이다. 물이 있는 곳은 어디에나 갈대꽃이 날아와 자리를 잡고 흘러가는 물을 정제하여 아래로 아래로 내려보낸다.


저녁에 이 계곡을 따라 밤에 장산에 들어가면 어둠에 싸여 깜깜한 오지로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그런 원시적인 느낌이 나는 좋다. 산에 들어가면 장산사, 석태암, 폭포사, 원각사 그리고 정상에 장산마을을 품에 안고 있다. 장산 계곡은 규모가 작을 뿐이지 계곡에 여울을 만들며 흘러내리는 맑은 물을 보면 마치 지리산 계곡 같은 느낌이 난다.


해운대 구청 푸른과가 이 계곡을 많이 망쳐 놓았다. 이 길을 걸을 때면 자연이 관의 소유인 것처럼 구청 마음대로 개발하고 바꾸어 놓은 그들의 무모함에 분노가 인다. 계곡 바닥에 넓은 암반을 깔고 콘크리트를 부어 마치 하천 하수구 바닥처럼 만들어 놓은 구간이 있다. 무슨 멋을 부린다고 자연에 역행하는 큰 인공 계단 모양의 가짜 폭포를 만들었다. 하류에 있는 물고기들이 위 상류로 회유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대천 호수를 지나 계곡에서 왼쪽 산으로 등산길을 잡으면 옥녀봉, 중봉,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다. 이 코스가 좌동에서 올라가면 제일 힘든 등산로이다. 죽을힘을 다해 빨리 올라가면 대개 40분 정도 소요된다. 여기서 다시 중봉까지 가는 데 10분이 걸린다. 중봉에 서면 바위 위에 작은 소나무가 세월을 이겨내고 있다. 언젠가 장산을 등반하고 하산하는 길에 길이 아닌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가 길을 찾지 못한 동료가 "장산을 우습게 봤다가 벌 받는 모양이다." 라고 한마디 했다. 장산은 중간산 지역으로 걸으면 온종일 걸린다. 장산마을을 내려와 원각사 입구에 서면 해운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초입 단계에서 길을 따라 걸으면 왼쪽에 장산사가 있고 입구에 석불이 서있다. 밤에 조명이 비치면 신비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여름이 되면 장산 계곡은 인근에서 몰려든 아이들로 목욕탕처럼 붐빈다. 뛰어내리고 곤충채집망으로 물을 훑어 고기들은 아마 정신이 없어 바위 밑에 온종일 숨어 있을 것이다. 석태암 뒤쪽으로 150m 정도 걸어가면 양운폭포가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규모가 더 큰 폭포가 있다. 양운 폭포가 규모는 작지만, 위쪽에 있는 큰 폭포보다 더 아름답다. 폭포 주변은 작은 규모의 협곡을 이루고 깊은 계곡물이 모여 수영이 금지된 곳이다. 양운 폭포는 안전 문제 때문인지 펜스로 막아서 출입을 못 하도록 아예 감추어 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일반 등산객은 존재 자체를 잘 모른다.


여름에 아이들이 종일 놀다가 해거름이 지기 시작하면 서서히 집으로 돌아간다. 그즈음인 4시쯤 이제 우리가 과일과 간편한 안주를 구입하여 석태암 앞 물가를 찾는다. 그냥 반바지 옷을 입은 채 물속에 앉으면 한여름의 더위는 계곡 물길 따라 흘러가고 함께 하는 벗들의 즐거운 표정이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 낸다. 친구와 어울려 한잔 술을 거나하게 나누며 즐거워하며 시간을 보낸다. 지나가는 등산객이 부러운 듯 쳐다보다가 준비해 온 술을 한 병 달라고 요청한다. 오랜 친구인 양 웃으며 술을 건네주면 가고 오는 모든 사람이 동료가 되고 친구가 된다.


겨울이 되면 석태암에는 따뜻한 보온 차탱크를 준비하여 등산객들이 추위에 언 몸을 녹이도록 배려한다. 정상 가까이 있는 원각사 입구에도 따뜻한 보온통과 커피를 내어놓아 등산객은 누구든지 커피 한잔을 대접받을 수 있다. 주지 스님의 고맙고 이쁜 마음이 느껴진다. 이곳 근처에서 재배되는 장산차가 맛이 참 좋다고 소문이 나 있다.


장산은 해운대구 주민에게 휴식처이며 관광지이고 생태학습장이다. 장산에는 관심 갖고 찾아보면 많은 야생화들이 홀로 계절 따라 피어서 진다. 아이들이 여름이 되어 깨끗한 물에 몸을 담그고 멱을 감으면 섬진강으로 흘러 들어오는 지리산 계곡의 물만큼이나 반가운 피서지이다.


차로 정상에 가려면 53사단 정문에서 주민등록증을 확인받고 장산을 들어가게 된다. 마치 민간인 통제 구역을 지나 휴전선이 있는 전방의 철책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정상에 있는 습지는 갈대가 무성하여 가을이 되면 갈대꽃과 억새로 환상적인 은빛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낙엽을 밟으며 오솔길을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면 하루해가 저문다. 급한 경사의 적당한 난코스가 배치된 최적의 등산로이다. 등산을 마치고 좌동 재래시장에서 푸짐한 술과 안주를 실비로 맛볼 수 있는 서비스도 덤으로 즐길 수 있다.


해운대 신시가지 고등학교들은 11월이면 장산에 올라와 수능 대박 산신제를 올리기도 한다. 방학이 개시되면 기장 k고등학교는 수령산에서 좌동재래시장까지 산을 타고 오르내리는 등반대회를 한다. 이제 장산은 길이 포장되고 길 양옆으로 조명이 켜져 강근호 열사 집까지는 밤에도 조명이 있다. 평일이나 휴일 구분 없이 각지에서 모여드는 등산객으로 인해 장산은 몸살을 앓을 지경이다. 보호를 위해 때로 휴식년제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산은 많은 사람이 애용하는 산이다. 글을 쓰는 중에 친구에게서 장산 가자는 전화가 왔다. 장산 입구에 있는 농협에서 만나자고 한다. 좌동 주민은 장산을 늘 품고 산다. 걷고, 또 걸으며 때로는 한잔 술을 마시고 장산 입구에 시가 새겨진 너럭바위 위에 앉아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장산이 있어 행복한 날들이 이어진다.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땡비] #16.우리 동네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 

 - 못골 글 보러가기 : 장산 https://brunch.co.kr/@ddbee/71

 - 흔희의 글 보러가기 : 덧칠 https://brunch.co.kr/@ddbee/70

 - 아난의 글 보러가기 : 두 곳에 동시에 서기 https://brunch.co.kr/@ddbee/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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