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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비 Aug 02. 2024

우리도 한 때는 어린이었음을(by. 흔희)

#21. 어린이의 지혜


아이가 네 살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하루 종일 붙어 있던 생활을 뒤로하고 나는 직장에, 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니며 각자의 생활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앞에는 아이들이 어울리기 좋을 만한 규모의 놀이터가 있었다. 친구들과의 헤어짐이 아쉬운지 아이들은 하원 후에도 놀이터에 몰려들어 구슬땀을 흘리며 함께 어울렸다. 저녁때가 다가오자 아이들은 하나둘씩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갔고 놀이터에는 아이와 나만 있었다. 직장에서 업무를 마무리하고 한달음에 달려와 다시 엄마로 역할을 바꾸려니 그 숨 가쁨이 벅찼다. 벤치에 퍼져서 가만히 앉아 있으니 아이도 모래 놀이를 하던 손을 툭툭 털고 걸어와 내 옆에 앉았다. 초여름이었다.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에 아이의 잔머리가 좌우로 흔들렸다. 목이 마를 듯하여 가방에서 물통을 꺼내주었다. 아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을 마시다가 갑자기 말을 건넸다.


“엄마, 바람이 보여.”


무슨 말인가 싶어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니 아이가 손짓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손끝을 따라 시선이 멈춘 곳에는 바람에 나무들이 넝실넝실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는 나뭇가지들의 나부낌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앞 뒤 설명을 다 자르고 눈에 보이고 느끼는 것만을 냅다 던지고 보는 아이의 천진난만함에 웃음이 났다. 군더더기가 붙고 설명이 길어지는 어른의 말과는 달리 아이의 말은 시의 한 구절처럼 간결했다.


흔히 우리는 어린이를 과도기적 존재로 생각한다. 미성년자. 아직 성인에게 미치지 못한 존재. 그래서 어른들은 어린이를 완성되지 않은 존재로 대하며 그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고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 윤여정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터뷰를 할 때 ‘나도 60은 처음이라 늘 서툴고 헤맨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인생에 있어서 완성되는 시기가 과연 있기는 한 걸까? 우리가 어른이라고, 좀 더 오래 살아봤다고 어린이보다 더 나은 존재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아이가 여섯 살 때, 함께 저녁을 먹다가 유치원에서 친구와 나눈 이야기에 대해 말해주었다. 반에서 단짝 친구와 블록을 갖고 노는데 갑자기 친구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고 했다. 자기의 엄마는 외국에서 일하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다고. 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와 함께 생활을 하는데 자기 생각에는 엄마와 아빠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엄마나 아빠가 눈을 보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거나 셋이서 같은 공간에서 무언가를 한 경험이 별로 없는 것이 그 추측의 근거였다. 여섯 살 아이들끼리도 그런 내밀한 대화가 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무심코 내뱉은 아이의 말이 혹시 친구에게 상처는 되지 않았을까 미리 걱정이 되었다.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는 친구에게 '넌 어떻게 반응을 했냐'고 되물었다. 아이가 말했다.

“그냥 듣고 있었어. 그리고 내가 꽂으려고 남겨뒀던 예쁜 블록 친구한테 줬어. "

“혹시 우리 엄마 아빠는 안 그런데~ 하고 말한 건 아니지?”

아이가 버럭하고 화를 낸다. ”엄마! 내가 그럴 것 같아?”


어린이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현상 너머에 숨어 있는 의미를 굳이 찾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의도를 심고 의도를 찾고자 하는 어른들의 세계와는 달리 어린이의 세계는 담백하고 직관적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받아들이는 것을 바탕으로 말하고 행동한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는 군더더기도 없고 주저함도 없다. 자기의 직관과 마음에 따라 행동해 보는 것도 용기다. 어른들에게는 그런 용기가 없다. 어른들은 타인에게 비친 나의 모습도 생각해야 하고 나중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생각하고 염두에 둬야 할 것들이 많으니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은 꽁꽁 숨어버리고 말은 길어진다. 검열의 단계가 많을수록 원래 하고자 했던 의도와 표현은 멀어진다. 말과 말이 꼬리를 물어 오해를 낳고 균열이 가는 이 사회에서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배워야 할 지혜는 그들의 직관력이다. 내가 본 것을 믿고 행할 수 있는 용기. 타인의 말을 판단하지 않고 말 그대로를 품어 줄 수 있는 너그러움.


가끔 하루가 고단할 때, 퇴근 후 나에게 뛰어오는 아이의 품에 꼭 안길 때가 있다. 어른보다 다소 빠른 박자로 콩콩거리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그 소리를 듣다 보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어른의 품보다 아이의 품이 더 크고 넉넉할 때가 있다. 기억하자. 우리도 한 때는 그들처럼 넉넉함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땡비] #22. 어린이의 지혜

 - 못골 글 보러가기 : 아이에 관한 여러 경험들 https://brunch.co.kr/@ddbee/84

 - 흔희의 글 보러가기 : 우리도 한 때는 어린이었음을 https://brunch.co.kr/@ddbee/86

 - 아난의 글 보러가기 : 내 안의 어린아이로부터 https://brunch.co.kr/@ddbee/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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