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어린이의 지혜
동생이 없으니 젊을 때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부담스러워하며 그들을 가까이 하지도, 가까이하는 방법도 몰랐다. 아이에게 인기가 있으면 출세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욕구에 맞추기가 어려운 대상이라는 말이다.
아이를 키워보면서 그들도 생각하고 말하고 느끼고 판단하는 모든 사고방식이 어른과 꼭 같아서 ‘아! 그렇구나!’하고 탄성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다만 경험하지 않아서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고 적절하게 언어로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이들을 아이로만 생각한다.
아이들은 처음 만나는 낯선 동무들과도 금방 친해지고 어울려 잘 논다. 마음이 순수하고 따로 이해(利害)를 앞세우는 목적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손녀가 유치원으로 진학하여 처음에는 몹시 재미있게 등교하고 즐거워하더니 어느 날부터 유치원 가기를 싫어한다. ‘갑자기 왜 이런 반응을 보일까?’ 하며 궁금하였으나 선생님이나 동무들과의 문제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하였다. 유치원에서 하는 생활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물어보았다. 동무들과의 문제였다. 짝꿍인 아이가 다른 친구와의 관계를 차단하고 아이를 독점하며 옆자리에서 이것저것을 지시형으로 이야기하며 통제했다. 자율형으로 자란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표해 보지 못하고 계속 간섭을 받으니 갑갑한 마음에 대응할 방법도 알지 못해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짝지는 이미 선행학습을 하여 한글을 읽고 쓰고 하니 학습면에서도 뛰어나 문맹인 아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미리 포기해 버렸나 보다.
아이가 의기소침하여 등원을 하지 않으려 한다. “가슴이 답답하여 죽겠다”라고 어른 같이 표현하여 깜짝 놀랐다. ‘이것 보통 문제가 아니라 심각하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되도록 그 동무와 함께 앉지 말고 무슨 일을 하라고 시키면 “너가 해라!”라고 친구에게 되받아 치라며 연습을 시켰다.
“동무가 ‘이것 해!’하고 시키면 뭐라고 답하지?”
“‘니가 해!’라고 답하지!”
그 대답이 자신도 만족스러운지 웃는다. 그 이후로 아이도 적응하여 짝지를 바꾸어 앉으며 위기를 피해 가는 방법도 스스로 알아 갔다.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제어당하고 상대방에게 포획되면 아이도 견디지 못하는구나.’를 나도 알아갔다.
카페에서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아이는 딸기 잼을 먹으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 노랗게 머리를 염색한 젊은이와 외국인이 있는데 아이가 이들을 바로 쳐다보지 않고 슬쩍 곁눈질로 신기한 듯 쳐다본다. 바로 쳐다보면 상대방이 민망해할 것을 염려하는 마음에서이다. 사고하는 폭이 어른과 꼭 같다.
고등학교 때 고종 사촌 누나가 고모와 함께 나에게는 할머니인 고모의 어머니를 보러 친정인 우리 집에 왔다. 내가 여치를 잡아 고종사촌 누나의 등에 올려놓으니 여치가 자기 엄마를 잡아먹는다고 생각한 듯 누나 등에 업힌 조카가 떠나갈 듯 울어 제친다. 그래서 여치를 다시 아이에게는 할머니인 고모의 등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할머니는 여치가 잡아먹어도 괜찮다는 듯 재미있다고 웃는다.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매우 이기적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 나름의 살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 때문일 것이다. 등에 업힌 젖먹이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목적에 맞게 행동을 한다.
한때 사진관을 운영하였다. 늘 손님에게 포즈 교정을 한 후 촬영을 하니 둘째 딸아이도 그런 순간을 많이 보았나 보다. 손님이 사진관에 들어오는 소리가 나면 5살짜리 둘째가 나보다 먼저 뛰어 나가서 손님보고 “이렇게! 이렇게! 바로 앉아!”라며 짧은 소리로 “포ㅡ즈” 지시를 한다. 그러면 손님은 “그놈 참! 허~” 하며 웃는다. 아이는 보고 배우고 표현하고 나름 판단한다. 늘 살아가는 순간이 배움의 장이고 경험이다.
어른인 부모는 아이가 언제나 어린애이고 생각이 깊지 않고 자기중심적이라고 믿는다. 아이들은 어른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살아나가기 위해 나름의 생존전략을 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 아이를 어른의 관점에 올려놓고 대화를 한다. 그렇게 해도 하등 불편함이나 부족함이 없다. 어쩌면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맞벌이 부모가 직장을 나가고 정글 같은 세상을 혼자서 떠돌며 스스로 살아 나가는 영악한 방법을 배우기도 한다. 상급생 언니가 아이에게 물건을 받으며 “저번에는 내가 500원어치를 너에게 사 주었으니 이번엔 너가 600원어치를 나에게 사줘.”하며 이자 개념 같은 웃돈 몫을 요구한다.
승강기에서 아이가 “나중에 ‘내 집에’ 놀러 와” 한다. 이제 아이들은 공동체의 용어인 ‘우리’를 쓰지 않고 영어식 표현인 ‘마이 홈’으로 표현한다. ‘형제 없이 홀로 자라 개별화된 세상으로 바뀌어 버렸구나.’하는 섭섭한 생각이 든다. 그런 면도 아이들이 현실에 적응하며 스스로 살아나가는 방법들이다. 우리들이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지금 현실에 맞추어 그들의 생존전략을 짜고 그 요령을 터득해 가는 중이다. 아이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눈높이에서 짐작해 보면 나이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그들도 성인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행동하고 고민하며 정글 속을 헤쳐 나가고 있다.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못골 글 보러가기 : 아이에 관한 여러 경험들 https://brunch.co.kr/@ddbee/84
- 흔희의 글 보러가기 : 우리도 한 때는 어린이었음을 https://brunch.co.kr/@ddbee/86
- 아난의 글 보러가기 : 내 안의 어린아이로부터 https://brunch.co.kr/@ddbee/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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