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어린이의 지혜
인간관계에 한껏 지쳐있던 때였다. 맞지 않는 사람은 끊어내면 그만이었는데 그만둘 수 없는 관계가 한꺼번에 닥쳐오던 때였다. 관계를 맺은 건 다름 아닌 나이기에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하고 자책했다. 빨리 이 부정적 감정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해결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상담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여러 달의 개인상담 이후 상담 선생님의 권유로 집단상담에 참여하였다.
처음에는 영화 속 알코올 중독에 쩔은 주인공이 집단으로 재활 치료를 받던 장면에 내가 들어온 느낌이었다. 참가자들은 원형으로 둘러앉아 각자 별명을 정하고 그 외 어떠한 정보도 제공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은 했을까 싶은 앳된 얼굴부터 푸석푸석한 얼굴의 중년 어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별명이 적힌 이름표를 가슴팍에 달고서 어색한 침묵을 깨고 누군가 화제를 가져와 이야기를 했다. 바깥 사회에서는 적나라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참던 감정을 쏟아내며 내 안의 필터를 걷어내는 과정을 연습하는 시간이었다. 상담 끝자락에는 오늘 갈등에 대한 소감을 각자 이야기하며 늘 마무리했다.
한 달 동안은 집단상담에 쉽게 참여하지 못하고 방청객처럼 앉아있었다. 미친 듯이 울부짖고 때로는 쌍욕을 하며 갈등을 격렬히 쏟아내는 사람들이 무서웠고 모두가 성격파탄자처럼 보였다. 어떤 때는 사람들의 속내나 인생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라 '이게 어떻게 현실이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이 와중에 바깥 사회에서처럼 여전히 내가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커 어느 갈등에도 개입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와도 관계가 이어지지 않았다.
이래서는 참여의 의미가 없겠다 싶어 내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기 시작했다. 이입이 잘 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일부러 ‘이 감정은 대체 뭐지?’하며 감정을 더 표현하며 관계 맺기를 시작했다. 상담 선생님이라는 안전장치가 있으니 용기 내서 내 안의 날 것 같은 감정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있는 힘껏 소리치고 화를 냈는데 사람들이 화를 낸 거냐면서 내 분노를 알아차리지 못해 당황했다. 화를 내다 말고 “이렇게? 어떻게?”하며 벙쪘다. 나는 화나는 상황에서 참고 서늘해졌다가 다시 그 상황을 이야기할 때면 화를 꺼내와야 하는 사람이라 화에 대한 에너지가 곱절은 더 드는 사람이라고 했던 선생님의 말이 무슨 말인지 조금씩 깨달아갔다.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어떻게 화를 내는지, 지금 이 감정은 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퇴근하고 학원 가듯 상담실로 가 배워나가는 시간이었다. 울부짖고 소리치다 보면 골이 아플 정도로 감정의 진폭이 크게 오갔다. 집에 돌아갈 때면 모든 기가 몸에서 빠져나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속내 깊은 곳의 상처를 모두 꺼내며 각자 이야기하다 보니 별명 밖에 모르는 상담 참여자들이지만 누구보다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선을 따라 들어가 보면 각자 상처받았던 그 시절의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었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도 아버지의 등살 때문에 제대로 애도할 시간을 가지지 못해 시간이 멈춰버린 딸. 경제적으로 무책임한 부모님 때문에 일찍 철들어버린 아들. 늘 욱하는 자신이 사실은 평생 꾹 참기만 하다 몸만 자란 장남이라는 걸. 저마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상처 받았던 그때 그 시간에 묶여있는 어린이들의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서로 불같이 갈등하다 위로하기도 하고 보듬으며 깊은 관계 쌓기를 배워나갔다.
약 1년 정도의 집단상담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감정 자체에는 잘못이 없다는 것을.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문제로 삼고 없애려고만 했다.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 있는 내 모습이 싫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감추는 것이 상대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며 부정적 감정을 감추고 그런 감정이 드는 나 자신을 속으로 나무랐다. 이런 나를 집단상담 시간 동안 잘 이해해 주던 ‘오드아이’라는 별명의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오드아이와 크게 갈등을 하다 그가 물어왔다.
“지금 마음이 어때?”
“다 내 탓인 것 같아.”
“또 도망치고 선 긋는 거야? 왜 내가 책임져야 하는 감정의 몫을 너가 가져가놓고 착한 척하는 거야?”
오드아이는 내가 봐왔던 모습 중 가장 크게 화를 내며 나를 나무랐다. 머리가 댕-하며 생각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경험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내 탓으로 돌리는 생각이 상대를 위한 배려라 여겼다.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내 안에서 원인을 찾고 나만 바뀌면 되는 게 쉬운 해결책이라 생각했다. 상대도 이런 나의 노력을 좋게 봐줄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오히려 깊은 관계로 나아가지 않으려 혼자만의 문제로 선 그으며 뒷걸음질 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나의 노력이라 생각했던 배려가 사실은 나만 편하자고 내린 생각일 뿐이었다. 늘 좋고 밝은 사람이고 싶은 내 안의 어떤 막이 진짜 마음을 가두고 깊은 관계를 막고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 모두 마음속에 든 감정을 바깥으로 잘 표현하던 어린아이였다. 말 못 하던 갓난쟁이 조카가 두 발을 드높이 들었다가 바닥으로 팡팡 내리치며 몸을 건드리지 마라고 싫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던 때가 있었다. 이제 갓 세상에 나와서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투명하게 마음을 그대로 바깥으로 꺼내보여 주는 게 신기했다. 인간관계가 또다시 버거워질 때면 격하게 발로 나를 내리치던 갓난쟁이 조카를 떠올린다. 내가 나 자신을 또 억누르고 있는 건 아닐지 드문드문 질문을 던져본다. 그럴 때면 내 안의 어린아이가 걸어 나와 나를 다독여준다.
“마음에는 좋고 나쁜 게 없어. 그냥 그런 마음이 떠오른 것뿐이야. 다른 사람의 몫까지 가져오지 말고 네 마음을 토해내.”
오늘 드는 이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마음에 와닿게 말로 표현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내 안에 살고 있는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잘 들리도록 오늘도 말을 걸어본다.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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