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요, 꿈나라로

#잠 #약

by 스텔라박

나는 잠이 많은 편이다. 아주 어렸을 적, 갓난아기 때부터 나는 잠이 많았다고 한다. 저녁 9시 땡 하면 자서 아침 9시 땡 하면 일어났다며, 엄마는 내가 그런 면에서 효녀였다고 종종 말씀하셨다. 하지만 잠이 많다는 똑같은 이유로 학창 시절 나는 엄마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아침마다 늦잠 자는 나를 깨우시느라 워킹맘 엄마는 동동거리셨다. 중고등학교 때는 왜 그리 시시때때로 졸린 건지, 고등학교 아침 자습 시간에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점심 먹은 후 수업시간에는 졸린 눈을 힘겹게 뜨느라 눈 뒤집어지는 경우가 흔했다. 지금도 중고등학교 교실에 엎드려 자는 학생이 그렇게 많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발달단계 상 청소년기에 잠이 많은 것은 이론적으로 증명이 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논문이 있나 찾아보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잠 못 이루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학원을 다니던 때부터 대학교를 졸업하고 발령이 난 첫 해까지 그 동안 나는 종종 잠을 자지 못했다. 심지어 재수 시설 수능을 보기 전날에는 밤을 꼬박 새웠다. 그 시기의 나는 자려고 누울 때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카락이 곤두서며 긴긴 밤이 시작되었다. 머릿 속 생각이 휘몰아치고 꿈이 아닌 현실과 현실이 아닌 생각 사이에서 발버둥 쳤다. 그 생각들은 대부분 안좋은 생각들이었고 나는 발령 첫 해 가을이 되어서야 나에게 병이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진단받고 그때부터 약을 먹으며 제대로 된 치료를 시작했다.

수많은 약들, 그 중에서도 정신과 약의 대부분이 그렇듯 그 약은 부작용이 어마어마했다. 각종 신체반응으로 나오는 부작용을 견뎌야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졸림, 수면과다였다. 약을 먹기 시작했던 초창기에는 평소처럼 11시, 12시에 잠이 들었는데 아침 7시에 일어나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눈이 반쯤 감긴 채로 출근을 했고 오전 내내 항상 졸음과 싸워야 했다. 내 눈은 항상 졸린 눈이라고 주변 동료들로부터 놀림을 받기도 했다.

약을 먹기 시작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은 약 용량이 조금 줄기도 했고 몸도 익숙해졌으며 나의 루틴을 만든 덕분에 그나마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졌다. 평소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나는 저녁 9시부터 서서히 잘 준비를 한다. 빠르면 9시 반, 좀 늦장부리면 10시면 침대에 눕는다. 잠이 드는 시간은 10시-10시 반 사이. 그러면 적어도 6시 반, 7시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할 수 있다. 아침에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날이면 늦어도 9시 반에는 잠이 들 수 있도록 조정한다. 개인적인 일이 있거나 회식이 있는 경우면 그 다음 날 하루 종일 졸림과 싸워야 한다.

중요한 건 어떤 날, 스트레스를 받거나 생각거리가 많아지는 밤이면 약이고 뭐고 잠에 들기가 힘들다. 최대한 일찍 침대에 누워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늦게 잠이 들곤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 긴장과 부정적인 생각들을 없애주는 숙면 도우미, 냥이들이 있다. 내가 자려고 누우면 쪼르르 침대로 달려와 나에게 얼굴을 부비대는 둘리와 쭈쭈가 나의 숙면 도우미다. 쭈쭈는 내 배 위, 둘리는 내 옆구리에 자리를 잡는다. 고양이들의 보드라운 배와 말랑말랑 발바닥, 보들보들 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쓰다듬어 주면 그들은 여지없이 고롱고롱 골골송을 불러댄다. 그 소리를 듣다 보면 부정적인 생각 주머니의 바람이 슉 빠진다. 종종 고양이들도 같이 잠이 들어서 서로 몸이 엉켜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보드라움이라면 그 정도쯤이야 언제든 견딜 수 있다.

태생 자체가 잠이 많았던 사람인지라 나는 여전히 잠을 자는 건 소중하고 생각만 해도 좋다. 어둑해진 밤,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며 편안한 잠옷으로 푹신한 침대에 눕는다. 기지개를 쫙 펴고 몸을 움직여 침대에 몸을 맞춰 최대한 편안하게 한다. 그러면 온몸의 긴장이 쫙 풀리고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머릿 속이 후루룩 정리가 되며 찡-해진다. 편안하게 잠이 들면 자연스럽게 무의식의 세계로 빨려간다. 중간에 한 번도 깨지 않고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젯밤의 근심 걱정이 무엇이 되었든 깔끔하게 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어 상쾌한 기분이 든다. 좀 더 자고 싶지만 더 자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게 습관적으로 몸을 움직여 일어난다. 씻기 귀찮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재빨리 칫솔을 입 안에 밀어넣고 기계적으로 샤워를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잠이 깨 있다. 일어나기 싫다, 씻기 귀찮다 라는 생각이 치고 들어오면 잠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진다는 건 사십 년 인생을 통해 깨달은 진리다. 비록 깊은 잠을 못 이룬 날이라도 알람이 울리고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면 바로바로 움직여야 한다. 약 기운을 이겨내며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꿀 팁이다.

주말이 좋은 이유이자 잠시 휴직했을 때 가장 기대되고 즐거웠던 것은 늦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다. 알람을 듣고 일어나지 않고 자고 싶은 만큼 푹 자고 여유롭게 일어나는 것. 그리고 그 전날 늦게까지 깨어있을 수 있다는 것. 휴직했을 때 좋았던 여러 가지 중 가장 큰 좋았던 점이다. 하지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게 건강에 더 좋다고 스스로에게 세뇌시킨다. 평생 직장생활을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실제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몸과 마음에 더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이렇게 날마다 출근할 직장이 있다는 게 소중하다고 다시 한번 나에게 주문을 외워본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건 주말로 충분하다. 그렇다. 정말로. 정말로?

이 소중한 주말 동안에는 종종 고양이들이 침대에서 낮잠을 잘 때 나도 가만히 옆에 눕곤 한다. 하루 중 20시간을 잔다는 고양이들의 자는 모습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며 몽글몽글 해진다. 나도 옆에 누워 꼼지락꼼지락 고양이들을 만지며 그들의 숨소리에 내 숨소리를 맞추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내가 잠 못 이루는 시간이 있었듯, 남자친구도 힘든 일이 있어 잠 못 이루던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오빠와 같이 자게 되면 항상 나보고 먼저 자라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내가 자는 숨소리에 맞춰 숨을 쉬다 보면 잠이 온다는 거였다. 오빠는 내가 자고 있는지, 눈만 감고 있는지 숨소리만 들어도 기가 막히게 맞췄다. 그걸 어떻게 아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고양이들의 숨소리에 맞춰 잠이 들고, 나의 숨소리에 맞춰 오빠가 잠이 든다. 혼자 깨어있으면 어둡고 두려운 밤이 다같이 자면 무지개색 꿈나라가 된다.

인터넷에 여러 가지 초능력 중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고르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잠을 자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데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지다. 비록, 약으로 인한 과수면, 졸림과 싸우긴 하지만 그 잠자는 시간이 있기에 하루를 잊고 또 새로운 하루를 살아간다. 잠들며 그날의 하루와 작별하고 깨어나며 새로운 나로 태어난다. 그 전날 어떤 힘든 일이나 어떤 즐거운 일이 있었건 간에 잠을 통해 정리하고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실제 뇌에서도 잠을 자는 동안 머릿속이 청소가 된다고 한다. 그 달콤한 지우개가 참 좋다. 언제까지나 나는 하루 8시간 동안 푹 자고 싶다. 누군가 잠은 죽어서 평생 자는 건데! 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날마다 하루에 8시간씩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고 싶다. 그렇게 매일 새롭게,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