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가족학 전공생의 글쓰기_2022 서울대학교 인권·성평등 에세이 공모전
>>
초등학생 때까지는 명절에 할머니 댁에서 엄마를 돕는 일은 딸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대대로 가부장적 가족 질서에 문제 삼지 않는 이들로 구성된 집안에서 엄마를 도와야 한다는 친척 어른들의 말에 어떠한 의문도 가지지 못했다. 심지어 아빠조차도 엄마 일을 거들라 하고 정작 본인은 본인의 고향 집에서 자신과 성이 같은 남자 어른들과 차려주는 상차림을 즐길 뿐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봐온 풍경이라 그저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명절 분위기였다. 여자들 특히 엄마는 이 집의 유일한 ‘며느리’로서 음식 준비와 상 정리를 하고, 남자들은 가만히 앉아 먹고 마시는 풍경. 그게 내가 알고 있던 유일한 명절 문화였다.
내가 날카로워진 시기는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성평등 교육도 여럿 받고, 가치관이 형성될 즈음에 친한 친구가 생긴 나는 명절을 앞두고 친구들에게 내 신세를 한탄하곤 했다. 명절마다 대가족이 모여 2박 3일가량을 보내는데 우리 엄마 불쌍해 죽겠다고, 나도 일 거들기 싫다고, 엄마가 음식 조금만 하라는 내 말은 듣지도 않는다고, 왜 우리만 부엌에 있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그 말을 듣고 난 친구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뭐? 2박 3일이나 삼시세끼를 차리신다고? 우리 집은 그냥 하루 모여서 맛있는 거 먹고 끝내는데.’ ‘아니, 적어도 치우는 일은 다 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너무하다.’ ‘우리 집은 아예 추석 때 안 모여.’ ‘와, 우리 집도 그래. 그냥 엄마 모르는 척하고 너도 하지 말아버려.’ 등등. 친구들과 함께 불만을 토로한 뒤로는 절대 우리 집의 명절 풍경을 당연시하지 않게 되었다.
>> 다음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