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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아 Mar 28. 2024

3월을 돌아보며

일상 기록

  잘 쓰려고 하다 보니까 안 쓰게 된다. 어떤 말이든 좋으니 검열하지 않고 써야지.

2024.03.28.

  3월 마지막주 목요일, 급한 과제들을 마무리하고 여유를 찾은 요즘. 순식간에 지나가는 일주일의 중간 지점에서 한 달을 돌아보며 이 여유를 잠시나마 즐겨보려 한다.


<출발이 좋은 학기>

  학기 초부터 새로운 자극이 많아 학교 다닐 맛이 난다. 특히 정보문화학 수업을 두 개 듣는데 <비주얼라이제이션이라는 분야, 오픈 채팅 및 채팅 프로그램으로의 초대, 무료 코딩 강의 청취=수업 대체> 모두 처음 접하는 경험이라 벌써부터 기대가 앞선다.

  새로운 마음가짐 역시 이번 학기가 이미 좋아진 이유가 될 것이다. 학기 시작 전 《나는 왜 나를 함부로 대할까》라는 책이 내 변화에 큰 도움을 주었다. 자기동정이 아닌 자기연민으로 나의 상처를 바라봐야 하고, 누구에게나 어두운 면이 있다는 사실(보편적 인간성)을 깨달아 남과 나를 '괜찮은 사람' 혹은 '괜찮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는 이분법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것은 여전히 두근거리는 일이지만 별 생각 없이 시작된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질문과 대답을 이어가는 나를 보고, 선의를 주고 받는 관계를 형성하는 나를 보고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싫어할 수가 없는 손길은 그다지 거창하지 않았다. 수줍게 내민 젤리 하나, 진심을 담은 연락 한 통이 관계를 확장하고 지속시키는 작지만 강한 힘을 가졌다. 이 관계들이 얼마나 오래 갈지, 또는 더욱 친밀해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섣불리 기대하거나 실망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저 나와 대면하는 모두에게 환대의 미소와 손길을 내미는 나, 전보다 성장한 나에게 만족할 뿐.

  자신감을 가지고 학기를 시작한다. 어떤 영역에서든지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3학년 첫 학기가 되기를,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기를,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아자아자파이팅이닷


2024.03.05. 처음으로 쓴 긍정적인 분위기의 일기라니 조금 씁쓸


  갤럭시 노트에 모아둔 일기를 보면 하나같이 우중충하다. 그럴 때만 일기를 써서 그런가. 하루 중에 나를 웃게 만든 일상의 작은 조각들을 좀 기록해두면 좋았을 걸. 이전에 쓴 대부분의 일기가 고민, 불안, 우울, 외로움 등의 감정과 글 끄트머리에 어렴풋이 담긴 희망이나 다짐으로 차 있다. 3월 초는 조금 달랐다. 여전히 상대적으로 부족한 나임을, 상대적으로 친한 사람이 많지 않은 나임을 알지만 그게 그렇게 나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물론 배워야 할 것들과 비교 대상이 늘어나면서 금세 위축되고 답답해졌다. 역시 아무리 마음가짐을 새롭게 단장한다고 한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나보다.


서울대에서 만난 사람들

  글감 없는 일상에서도 가끔은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열등감으로 가득 찬 나에게 한없이 친절한 사람들. 그야말로 똑똑한데 정말 착한 사람들. 어제 비주얼라이제이션 팀플 회의를 마치고 사회교육과 언니가 내게 말했다. 병아리 같다고. 너무 잘하고 있다고. 작년에 나처럼 정보문화학(서울대학교 연합전공 중 하나) 수업을 듣기 시작했을 때가 생각나서 내 마음을 잘 안다고. 아이디어 뱅크, 내가 이 팀에서 잘난 것 하나 없어서 안간 힘을 쓰고 스스로 정체화한 역할이었는데 팀원인 언니가 나를 그렇게 평가해주고 있었다. 노력하고 있는데도 점점 눈에 빛을 잃어가고 나만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나보다 나를 더 보듬어주는 사람이 그렇게 힘이 되었다.

  나와 거의 매일 일상과 고민을 공유하는 유일한 대학 친구이자 가장 친한 사람. 한때는 이 친구의 열정, 에너지, 친화력에 내가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점차 그의 삶과 나의 삶을 분리해서 바라볼 줄 알게 된 후, 이제는 그냥 귀엽고 웃기고 똑부러지는 소중한 아이로 그 친구를 바라보고 있다. 같이 산 지 3년차에 접어드니 참 애틋하고 고마운 존재다. 대학에 와서 어떤 집단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중고등학교에서 만난 친구와는 멀어져만 갈 때,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친구가 어른이 되어가는 여정에 함께 할 수 있음에 기쁘고 감사하다.

  멋있고 단단한 사람, 나의 지향점이었다. 학교를 3년째 다니다보니 내 이상향과도 같은 사람을 만나는 때가 드물지 않다. 교수님 몇 분은 말할 것도 없고 가끔은 선망의 대상이 되는 선배도 더러 만난다. 나는 뭐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아직 멀었다. 이런 생산적이지 못한 사색에 종종 빠지다가 정신을 차리고 내 삶에 집중한다. 내가 제일 잘난 줄 아는 것도 오만이지만 내가 제일 부족한 줄 아는 것도 어쩌면 오만이 아닐까. 내가 지어낸 이상적인 인물상이라는 틀에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끼워넣고 부족한 사람을 자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우와 멋지다. 우와 대단하다. 우와 똑똑하다. 사람들의 페르소나만을 보고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하기보다 '저런 사람을 알아가고 싶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내 삶에 더 이롭고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가 아닐까 한다.


  3월 말에 꽃이 필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유독 쌀쌀한 기온에 아직 나무가 휑하다. 과거의 기대와는 다른 풍경, 예상보다 평범한 일상. 그럼에도 조바심을 내지 말기로 했다. 늦더라도 꽃은 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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