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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 Nov 24. 2023

꿈틀거리는 마그마

- 김현아의 『활활 발발』 -

  ‘1인 1책 프로그램’ 신청 마감을 하루 앞둔 날. 난 고민하고 머뭇거리기만 할 뿐 결심이 서지 않았다.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도, 어려우니 포기하는 게 낫다고 부추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글쓰기는 두려웠다. 그나마 사춘기 시절에 일기라도 끄적거리며 일상을 기록했는데 대학에 들어가고는 일기장마저 덮었다. 직장 다닐 때도 마찬가지다. 교육 관련 계획서와 보고서는 적지 않게 썼어도 형식에 맞춘 공적인 문서이지 글은 아니었다. 다행히 읽는 것은 좋아했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다 보면 조금 눈치라는 게 생긴다.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란 것과 내가 그럴 만한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1인 1책 프로그램에 지원하려고 써 둔 계획서를 아예 삭제하였다. 


  오랜 고민 끝에 단념한 일이지만, 개운하지 않았다. 자꾸 엉뚱한 생각들이 따라붙더니, 이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괜히 포기한 건 아닐까?,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일인데….’ 이미 마감일이 지난 일인데도, 용기를 내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후회했다. 그리고 사전 강의로 듣던 강사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조차 알 수 없다더니, 후회가 갈망으로 변하며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의 불씨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사람’. 

  이 말이 불쏘시개처럼 내 마음에 불을 지폈다. 내가 한 번도 들여다본 적 없는 마음 깊은 곳에서 글을 쓰고 싶다는 의욕이 마그마처럼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것은 분출하지 못하고 땅속에서 가만히 머물러 있었다. 서서히 밖으로 표출할 순간만을 기다리는 것만 같다. 지원서를 삭제했다고 내 본심까지 다 지운 것은 아닌가 보다.      

  첫 시도는 ‘브런치스토리’에 글 올리기. 그동안 독서 모임(보일락 독서공동체)을 통해 읽었던 책과 표지 그림이 토대가 되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더니 승인을 받기 위한 세 편의 글을 곧 완성했다. 내 안의 마그마가 생각보다 뜨거웠던 모양이다. 과제물을 제출하는 학생처럼 밤늦도록 쓰고 또 고쳤다. 그리고 서툴고 허술한 글이기는 해도 감탄(생각보다 잘 쓰잖아!)하며 스스로 칭찬했다. 할 수 있고 해냈다는 만족감이 상당했던 나는 ‘브런치스토리’에 쓴 글을 올렸다. ‘합격’이라는 문자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일단 끓어오른 열기는 그래도 괜찮다며 털어놓는 게 좋다고 했다. 나도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게 답답했는지 아니면 들어주는 게 고마웠는지 고백하듯 술술 나왔다. 말수가 적은 편인 나는 누가 봐도 내향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웬걸, 그날부터 수다쟁이처럼 쉴 새 없이 쏟아내듯 글을 썼다. 쓴 글을 모두에게 공개하려면 ‘발행’을 눌러야 한다. 중압감이 컸다. ‘좋아요’라는 응원의 ‘라이킷이 진동으로 울리는 느낌은 묘했다. 그런 느낌이 처음이라서 그랬을까. 시작하고 매일 밤늦도록 노트북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입안이 붓고 뒷목이 뻐근해도 멈추지 않았다. 


  ‘브런치스토리’에서는 다양한 작가들의 글을 읽을 수 있다. 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개성 강한 작가들의 세계는 흥미롭고, 같은 길을 걷는 교사의 글을 읽으면 동질감을 느꼈다. 그들의 실력이 쟁쟁할수록 내가 초보라는 사실이 부끄럽고 위축되었다. 그러면서 비슷하게라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고, 질투가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자극은 글쓰기 관련 책을 읽으며 스스로 배우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중에서 유독 마음에 들어 밑줄을 긋고 공부하며 읽은 책이 있다. 


  책은 내 마음을 사로잡더니 깊이 빠져들게 했다. 우선 글을 쓰는 마음가짐부터 시작해, 글이 주는 위안까지 다양한 길잡이가 되어주는 요소들이 그 안에 들어있었다. 내가 가장 매력적으로 느낀 이유는 책을 통한 저자의 인상이다. 직접 만나지 않고는 제대로 알 수 없겠지만, 전체적인 맥락과 문장들 사이에서 그의 면모가 느껴졌다. 해박한 지식뿐만 아니라, 고루하지 않고 유연한 성품에다 사람에 대한 예의가 보였다. 따르고 싶은 선생님이어서, 나는 모범생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밑줄을 쳤다. 그만큼 배우고 싶었다. 마음에 쏙 드는, 많이 먹어도 체하지 않고 꿀꺽 삼키고 싶은 책, ‘어딘글방’을 운영하던 김현아(어딘)의 『활활 발발』이라는 책이다.     

  ‘글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란 곧 삶을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다. 경험을 몸에서 떼어내 세상 속으로 보내고 그 풍경을 곰곰이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다.’  

   

  ‘내 후회가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내 절망이 누군가의 징검다리가 되고 내 뜨거운 눈물에 춥고 뜨거운 누군가가 밥을 말아 먹는다는 걸 아는 것, 글이 주는 위안일 것이다.’  

   

  ‘좋은 글의 요건. 첫째,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솔직해야 한다. 셋째, 마음이 기울거나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넷째, 단순하고 담백한 문장을 쓴다.’   

  

  나도 이런 글쓰기 모임이 있다면 주저 없이 참여하고 싶다. 매주 주어진 주제에 따라 글을 쓰고 서로의 작품을 평가하는 과정이 힘들더라도, 그 안에서 배울 수만 있으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것 같았다.

  글도 사람처럼 젊어질 수 있을까? 그들의 글을 읽으면 대부분 솔직하고 담백하다. 평범한 일상을 시시하지 않게 콜라를 마신 것처럼 시원하게 톡 쏜다. 유식한 척 자랑하지 않아도 탄산이 제대로 터져 참신한 맛이 난다. 그렇다고 가볍지 않다. 내면의 성숙인지는 모르겠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유연성, 독특한 자기만의 방식을 찾으려는 태도가 젊은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니던 직장마저 퇴직할 정도로 적당하게 익어버린 나. 당연히 발랄하지도 번뜩이지도 총명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활활 발발한 그들에게서 배우고 싶다니. 이건 책이 준 열정이다. 


by 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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