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고 바쁘다는 핑계였다. 놀이터에는 가지 말라고 첫째에게 일렀다. 흙이나 모래가 잔뜩 묻은 채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더러워진 옷을 세탁하기 귀찮고 온몸을 씻겨야 하는 과정이 피곤했다. 이왕이면 집에서 놀거나 텔레비전을 보라고 했다. 그런 내가 둘째를 키우게 되면서 좀 달라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첫째에게는 정말 미안했다. 물론 우여곡절 끝에 직장을 그만둔 사정이며 예전만큼 바쁘지 않은 이유도 있다.
훌륭한 엄마는 아니어도 괜찮은 엄마가 되려고 준비하던 나. 실내에서 할 놀이나 공부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는 나와 달리 둘째는 달랐다. 사춘기도 아니면서 집을 나가겠다고 떼를 썼다. 버스 타고 돌아다니기, 시골 고양이 만나기, 시장 구경하기 등. 매번 녹초가 돼서 돌아왔다. 차라리 놀이터를 가는 게 편할 것 같았다.
온몸이 땀과 모래로 범벅이 될 정도로 더러워도 괜찮았다. 그늘에 앉아 쉴 수도 있으니 살 것 같았다. 아이 또한 또래 친구랑 노는 게 즐거워 보였다. 사회성이 떨어지는 엄마는 멋쩍게 앉아 있는데 아이는 쉽게 어울렸다. 어느덧 아파트 놀이터를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익숙해진 얼굴과 인사를 나누고 아파트 동호수를 물어가며 다른 엄마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그쯤에 나는 준이엄마와 가까이 지냈다. 제일 먼저 놀이터에 나가는 우리 집 둘째와 그다음으로 달려오는 파워에너지 준이가 맺어준 인연이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지만 특유의 붙임성으로 ‘언니’라고 부르며 다가왔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가만히 있지 않아서 걱정이 많은 마음이 여린 엄마였다. 진짜 언니같이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겨울이 되면 놀이터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아이들이 좋아하던 미끄럼틀은 갑자기 돌변하더니 무뚝뚝하고 차가워진다. 둘째와 나는 냉정해진 시소를 오르내리고 그네를 세게 흔들어도 추웠다. 놀이터만 서성이는 우리를 준이네가 먼저 초대했다. 현관문을 들어서며 느껴지는 온기가 준이엄마를 닮아 따뜻했다. 엄마들은 커피를 마시며 서로를 알아가는데, 아이들은 차츰 서로의 장난감을 탐내며 다투었다. 우리 둘째는 준이에게 매번 장난감을 빼앗기고 또 서럽다고 울었다. 자식 문제만큼은 알아도 모르는 척, 기다려 주는 게 좋다고 들었다. 그렇게 할수록 준이의 독특한 행동이 눈에 띄었다. 조심스럽지만 엄마라면 알아야 할 것도 같았다. 말을 꺼내볼까? 몇 번이나 망설였지만, 결국 그만두었다. 서툰 판단으로 오히려 상처가 되고 관계만 틀어질까 두려웠다.
어느 날, 놀이터에서 다른 엄마들을 만났다. 그들은 은근슬쩍 비밀을 말하듯 내게 속삭였다. 조심해야 한다고. 아무 때나 찾아오고 아무 때나 전화가 올 거라고. 마냥 받아주면 결국엔 지치고 말 거라고. 그래서 자신들은 일부러 피하고 있으니 잘 처신하라는 이야기였다.
정말일까? 아파트 놀이터에서 들은 이야기는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아는 준이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혹시 다른 사람으로 착각해서 말하는 것은 아닐까? 말하는 이와 듣는 나 그리고 준이엄마는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며 알던 사이일 뿐 크게 싸운 적이 없다. 관심 없는 척을 하며 집으로 왔지만 나도 궁금했다. 정말 아무 때나 찾아오고 귀찮게 하면 어쩌지?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집안일을 정리한 후 커피를 타서 소파에 앉았다. 모처럼 누리는 휴식이었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거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너무 이른 시각의 방문이라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현관문 밖의 인기척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현관문을 열었고 아침부터 웬일이냐고 물으려고 하는 찰나 준이는 허겁지겁 신발부터 벗으며 들어왔다.
한때 친했던 이웃들은 지금, 무례하고 경우 없는 사람으로 준이엄마를 가리킨다. 아들 때문에 매일 놀이터에서 살다시피 하는 사람. 아들에게 온 신경을 쓰느라 츄리닝에 티만 입는 엄마. 아들이 노는 근처는 다툼이 끊이지 않아 노심초사 눈이 휑한 준이네. 그래서 아이들도 엄마들도 멀리하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게 있다. 그녀는 아이의 잘못을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아는 엄마다. 쉬운 일 같지만 먼저 사과하는 사람을 보기 어려웠기에 난 그런 준이엄마를 좋아했다.
놀이터에서 조용히 들었을 뿐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사람이 절대 아니다.’와 비슷한 그 어떤 말로 감싸지 못했다. 내내 아쉬웠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일이 꼬였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난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놀이터를 가지 않았다. 공부할 시간과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의도는 다르더라도 자연스럽게 그녀와 헤어졌다.
주말을 이용해 둘째랑 놀이터에 갔다가 놀고 있는 준이를 보았다. 혼자 신나게 미끄럼틀 위에서 소리를 내며 내려오는 아이는 이제 준이뿐이다.
"언니, 저 이사 가요. 남편이 발령이 났어요."
떠난다는 예상 밖의 소식을 전하는 그녀를 보고 복잡한 감정들이 올라왔다. 잠깐 만난 사이지만 그녀가 내게 준 마음은 진심이고 나 또한 그랬다. 서운함, 미안함. 아쉬움이 올라왔지만 “축하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준이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후 한동안 그녀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던 이들은 입을 다물었다. 무성한 소문은 지나가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남의 사정을 잘 모르면 오해하기 마련이고 쉽게 자신의 잣대로 타인을 결정하는 실수까지 저지른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그런 실수를 나도 한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