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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Dec 03. 2023

 그 남자의 미소


 그날따라 출근 길이 추웠다. 패딩으로 무장한 곰돌이가 되어 가파른 길을 오르니 숨이 찼다. 그렇게 걷는 나를 멀리서 누군가 쳐다보고 있었. 빗자루와 커다란 자루를 들고 형광색 옷을 입은 그는 한눈에 봐도 골목길을 청소 중이다.


 '날 언제 봤다고 쳐다보는 거지?' 지나가는 사람이 여자이든 남자이든지 위아래 훑어보 빤히 쳐다보는 사람을 보면 불쾌하다. 나도 똑같이 쳐다보거나 째려보겠다며 그가 서있는 은행나무밑으로 향했다.


 지금은 아파트와 빌라들이 줄지어 버티는 골목이지만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건 은행나무다. 오래된 거목이 아무리 품위 있게 지켜도 신입으로 들어온 주민들은 오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쓸모를 다한 물건이며 쓰레기들을 아무렇게나 나무밑에 놓는다.


 낡은 의자밑으로 음식쓰레기가 가득한 봉지들이 여기저기에 뒹굴고 소주병과 먹다 버린 치킨이 널브러진 박스사이로 보인다. 상하고 썩어가는 냄새에다 널려있는 귤 조각들을 피하려고 멀찍이 돌아서 걸으며 그를 보았. 그런데 곳이랑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 연꽃처럼 환하다.


 내가 반갑다는 것인지 아니면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웃어 주는 중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유심히 나를 보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위아래로 째려보지도 훑어보지도 않고 그저 웃으며 반기는 기색이다. 이건 뭐지? 방금 전에 당신에게 그대로 되갚아 주겠노라고 마음을 먹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검게 그을린 얼굴에 이마와 입주위로 깊은 주름이 골처럼 났다. 박스나 빈병을 찾아다니는 바지런한 어르신인데 날을 세우고 괜한 오해를 한 것 같다.


 조금 전에 쪼잔하게 굴던 마음은 두꺼운 패딩 안에 숨기고 최대한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그런 나에게 보이지도 않는 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전에 저기 저-기 교회에 다녔죠?"


 느리고 띄엄띄엄 내게 말을 건넨다. 그 교회를 다녔느냐고? 교회 이름을 자 "네. 맞아요." 그러고 보니 나를 이미 알아보고 기다린 거였다. 그가 보내는 미소를 느끼며 곧이어 한참 전에 다녔던 교회가 생각났다. 그리고 믿음 좋은 얼굴의 부부가 떠올랐다.


 지난 일이라 증거를 댈 수는 없지만 나는 꽤나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다녔다. 거기서도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만 있던 나를 알아보시다니 고맙고 반가웠다. 정작 나는 그의 이름이며 어디 사는지조차 모른다. 같이 활동한 일이며 모임도 전혀 달랐던 모양이다. 그런데 너무도 선명하게 미소 띤 얼굴은 기억이 나는 거다. 그것도 아주 또렷하게 말이다.


 늘 허름한 옷에 성경가방대신에 가슴에 안듯이 손으로 성경책을 들었다. 웃음 띈 편안한 얼굴은 목사님이나 장로님보다 더 환했다. 그래서 이사하고 처음으로 찾은 교회에서 인상 좋은 전도사님이 반갑게 맞아주는 줄 알았다.


 부부는 빠지지 않고 예배에 참여하는 평범하고 조용한 교인이었다. 하지만 교회일이 커지고 복잡할수록 예외의 사람으로 취급을 하거나 의사 결정에 끼워주지 않는 것을 보고 알았다. 그들은 그다지 괜찮은 직업도 봉사할 만한 재능도 없고 보통의 헌금조차 할만한 처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교회가 크게 건축을 하면서 생각지 못한 사정들이 생겼다. 믿음이 약한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교회가 커졌다. 사람들이 많아지고 주차장이 넓어지고 재단이라는 장소가 높아질수록 불편해졌다. 그리고 밀려나듯이 나온 사람들 사이에 나도 끼었다.


 "이쪽 사는 구만요?" 네! 네! 하는 나를 향해 어찌나 반가워하시는지 얼떨결에 내가 사는 아파트를 가리켰다. 그리고 번지는 그 미소 덕분에 추운 몸이 따뜻해졌다. 헤어지며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거듭 건넸다.


 주름을 피할 수 없듯이 누구나 공평한 세월인데 그의 미소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먹고사는 일이야  별반 다르지 않을 텐데, 찌든 내 얼굴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사심 없이 있는 그대로 활짝 웃는 얼굴에 굳어버린 내 얼굴 근육이 덩달아 오랜만에 풀리며 입꼬리가 길게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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