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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May 03. 2024

소꿉장난

"사장님, 상추하고 쑥갓, 그리고 아삭이 고추 좀 주세요."

"땅이 몇 평 정도 돼요?"

"소꿉놀이 하는 정도입니다."


 그날은 주차가 어려웠다. 천변 주변에 한자리가 눈에 띄어 얼른 그 자리에 차를 댔다. 시장까지는  거리가 있는 데도 변두리부터 북적거렸다. 파란색 트럭뒤로는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무엇인가를 구경하는 모습까지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더니 혹시 오일장인가? 날짜를 더듬어 보았다. 장날이 맞았다.


   내 발길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였. 예전 같으면 필요한 꽃과 식물을 사러 꽃시장만 들르고 지나가기 바빴을 것이다. 좁은 시장길은 인파로 걷다 서다를 반복해서 빠져나가는 게 정말 어려웠다. 자전거와 나란히 걷는 할아버지. 물건이 가득한 시장캐리어를 천천히 끄는 할머니. 아이와 구경하며 손잡고 걷는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길 한복판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까지. 피하고 외면했을 내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들 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노란 병아리, 제법 붉은 깃털을 가진 어린 닭과 검은색 오골계, 그리고 토실토실한 흰 강아지들이 보였다. "귀여워!" 하며 상기된 얼굴로 연신 손을 내밀며 말을 거는 서너 살의 꼬마 손님들. 그의 엄마로 여겨지는 젊은 여자들이 앞자리에 있고 그 뒤로 사람들이 빙 둘러 구경을 고 있었다. 강아지를 만지려는 꼬물거리는 손이 움직일 때마다 그걸 말리는 아이 엄마 손도 분주해졌다. 꿀 떨어지는 둘의 미소를 보는 것으로도 장구경이 즐거워졌다.


 우리의 목적지로 보이는 곳은 더 혼잡했다. 온갖 모종들이 가게 안을 채우고도 모자라 골목까지 나와 모종전시장에 온 것 같았다. "이건 가지 같고, 저건 틀림없이 토란이다." 호기심에 하나하나 구경하느라 나도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가게 앞은 주 고객인 어르신들이 일찍부터 나와 모종을 사느라 붐볐다. 허름한 가게문 유리창에 비친 남편과 나는 청바지를 입고 신이 난 표정이었다.


  모종뿐만 아니라 농사에 필요한 농기구와 비료 등이 안쪽에 진열되어 있어 간판을 보니 의외로 농약사였다. 손님 것으로 보이는 모종을 봉지에 넣고 있는 주인의 인상이 푸근했다. 어설픈 농부티를 풍기며 구경하던 우리에게 다가와 먼저 인사를 해서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주인은 알맞은 모종을 같이 고르고 키우는 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시골집 마당의 가장자리상추를 심기에 적당해 보였다. 물건을 두던 자리를 걷어내고 대충 밭두렁처럼 보이도록 둘레에 벽돌을 땅에 묻었다. 초보가 틀림없는 남편은 삽이나 쇠스랑 같은 농기구를 생각보다 잘 만졌다. 만지는 것과 다루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타고난 능력이라도 있는 듯 황토색 짙은 딱딱한 땅을 덩어리채 올렸다. 그러더니 다시 쇠스랑으로 곱게 다지며 흙을 다뤘다. 도톰하게 올라온 땅을 토닥거리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마치 소꿉놀이하는 소년 같았다.

 "바로 이곳에 심을 거야!"


  검은 비닐을 깔면 풀이 나지 않는다고 들었. 우린 양쪽에서 비닐을 붙잡으며 땅에 옷을 입히듯 비닐을 씌웠다. 그리고 단추를 채우듯 양쪽 끝에만 흙을 덮었더니 제법 작물을 키우는 모양새며 밭고랑 티가 났다. 비닐에 구멍을 뚫고 귀여운 아기 모종을 꺼내어 살살 옮겨 심었다. 고추까지 심었더니 허리는 뻐근하더니 다리마저 저렸다.

 

  우린 "어휴, 힘들어!"를 남발하며 모종 심기를 겨우 마쳤다. 그런데 고라니 발자국을 발견하고는 전에 없던 걱정을 하게 될 줄이야. 밤마다 나들이하는 고라니가 내가 심은 것을 망쳐놓을 못된 놈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빼앗길 수 없다며 기둥을 고 줄을 연결해서 울타리를 만들었다. 이런 장면을 예견이라도 한 걸까? 시장에서 만난 아저씨가 생각났다.


  그는 농약사에서 모종 구경할 때 만난 사람이다. 어설퍼 보이는 우리가 이것저것을 묻자 주인대신 우리에게 가르쳐주었. 초보 시절에 심은 토마토를 먹지도 못하고 다 버렸다며 모종도 많이 사지 말라며 말렸다. 초보티는 나고 욕심까지 부리는 게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넉넉한 게 좋다고 있는 대로 담았다가 다시 덜어내고 모종마다 5개씩만 담았다. 자신이 겪은 실패담을 들려주고 먼저 가게를 떠난 아저씨의 당부가 새삼 떠올랐다.


 "먹을 만하면 따먹고, 병이 들어 못 먹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혀."

 "너무 욕심을 면 힘만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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