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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 Jun 26. 2024

보건실의 하루

그림책『와글와글 들썩들썩 보건실의 하루』


 나는 책과 사람을 연결하는 버릇이 있다. 책표지와 제목만 봐도 순식간에 생각나는 이가 있고, 글을 읽으면서는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지난 일을 돌이켜 기억을 되살리기도 한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등장인물과 닮은 누군가를 연상하는 습관이 은 이유는 의외로 그런 책이 오래 다는 것이다. 때로는 보고 싶을 정도로 반가운 얼굴이 떠오르는 일도 있다.


  그런 그림책을 오랜만에 만났다.

 와글와글 들썩들썩  보건실의 하루

  첼시 린 윌리스 글, 엘리스 파렐 그림, 공경희 옮김


 와글와글 들썩들썩 보건실의 하루』는 그녀를 생각나게 했다. 그녀는 나와 같이 근무했던 보건교사다. 보건실은 늘 만원이었고 다양한 질병에 노출된 아이들 사이에서 정신없이 치료하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울고 불고 소리 지르는 아이를 달래며 처치하는 그녀의 능력에 감탄한 적도 있. 그래서 현직교사가 쓴 이 책이 더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너희들도 '보건실' 가본 적이 있니?라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거의 고개를 끄덕였다. 대개는 아파서 치료를 받으러 간 곳으로 기억하지만 몇몇 아이들은 궁금해서 살짝 들려 구경한 적이 있다고 다. 튼튼한 몸을 원망하며 보건실 근처를 기웃거리던 경험을 말하는 얘기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가끔은 교실보다 보건실 침대에 누워 보건선생님의 간호를 받고 싶은 유혹에 빠질 때가 있다. 

 

 피트리 선생님은 무섭지 않다. 그리고 살짝 귀엽다. 주인공 피트리 보건선생님은 사자 갈기처럼 풍성한 머리카락을 가졌다. 그래서 자유롭고 편안한 교사로 느껴졌다. 많은 어린 환자들에게 한결같이 부드럽고 다정하게 대한다. 다만 천명에 가까운 학생수를 가진 큰 학교의 보건교사에게 똑같은 태도를 바라기는 어려워 보인다. 가끔씩 퇴근하는 그녀 볼 때마다 난 안타까운 마음이 든 적이 많았다. 그녀의 기운 빠진 어깨에 멘 조그만 가방조차 돌덩이처럼 무거워 보였기 때문이다. 

보건실로 출근하는 피트리선생님

 보건실이 와글와글 들썩들썩하다고?  

  '와글와글 들썩들썩'이라는 말은 그래도 즐겁고 활기찬 느낌이다. 그래서 피트리선생님의 귀여운 모습과 어울린다. 현실 속의 학교는 이보다 조금은 차분하다. 때로는 장날 같다고도 표현한다. "매일 밀려오는 아이들로 정신없어요. 보건실 긴 소파와 간이 의자까지 꽉 차요." 인근 복도까지 환자로 이어진 줄을 보고 놀란 눈으로 쳐다봤더니 그녀가 한 말이다. 그래도 마음이 아픈 아이이야기를 들어주고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챙기는 모습은 그림책과 내 주변 학교의 보건실 둘 다 동일했다. 


   아이들은 아플 때도 아프지 않을 때도 보건실을 찾는다. 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어린 환자들은 다양한 이유로 보건실에 오지만 피트리선생님을 좋아하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찰리는 흔들리는 치아를 보이며 3번이나 들린다. 그리고 "선생님, 보건선생님, 저 좀 보세요!"라며 등장하는 버트. "선생님, 선생님, 얼른요. 제 머리 좀 봐주세요!" 머릿니로 긁적이며 뛰어오는 캘빈.  "선생님, 여기서 쉬었다 가도 될까요?" 하며 조용히 의자에 앉는 거스 등. 그 뒤로도 많은 아이들은 피트리 선생님을 찾는다. 


흔들리는 치아를 보여주는 찰리

보건실 방문 일지는 피트리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이었다.

그림책 왼쪽 지면은 보건실을 방문하는 아이들(환자), 증상, 상태가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보건실에 가보면 이런 기록이 있다. 그곳에는 아픈 곳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 상태도 자세하게 쓰여있다. "선생님, 여기서 쉬었다 가도 될까요?" 하며 조용히 의자에 앉는 거스가 보건실을 찾은 이유를 이미 알고 있는 눈치다.

메이블/ 간식 필요/ 배고픔

버트/ 얼굴에 물감 묻음/ 창피함

찰리/ 치아 흔들림/ 안달함

켈빈/ 머릿니/ 호기심

거스/ 집이 그리움/ 외로움


 부모님도 선생님도 누군가의 사랑과 돌봄이 필요하다. 챙겨주고 보살피는 것은 부모의 도리라는 생각에 익숙하게 받기만 했다. 교사라면 사랑으로 가르치고 힘들어도 헌신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렇지 못한 경우에 분노하고 책임감을 들먹이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하지만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누구나 상대방의 관심을 그리워하고 친절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잠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모두 보살핌이 필요해요!

 

  퇴근하는 피트리 선생님을 향해 달려오는 친구와 뒹구는 모습이다. 교사라는 동질감일까? 뭉클했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에 갔을 때 나를 반겨주는 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나는 일인지. 밝고 침착하게 많은 아이들의 증상과 상태를 돌봤던 사람이라도 누군가의 사랑과 보살핌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 장면이다.

 '우리는 모두 보살핌이 필요해요. 누군가를 치료해 주는 사람들에게도요!'  


 오늘도 힘든 어깨를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교사로서 책임감 있게 아이들을 치료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을 그녀가 자꾸 떠오른다. 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내내 생각났다고 전하기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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