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을 정리 중입니다
장마철 빗물이 허름한 지붕 틈새로 스며들어서였을까. 시골집 사랑방의 천장이 주저앉았다. 자식들이 독립하고 난 뒤, 부엌 옆 그 방은 잡동사니 창고로 쓰였다. 쓰지 않는 옷장부터 고장 난 김치냉장고, 채반, 냄비 같은 물건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장마가 끝나고 문을 열어보니 보온재로 쓰인 왕겨가 천장에서 쏟아져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아 수리하는 업체를 부르기로 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방으로 들어갔다. 이미 천장이 내려앉아 전등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은 중학교 시절 쓰던 내 책상이었다. 먼지를 털어내고 서랍을 열자, 작은 봉지 안에서 그을리고 바랜 사진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이 흑백사진이었다. 낯선 얼굴들 사이로 어렴풋이 부모님과 할머니 모습이 보였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큰 사진 한 장이 눈에 띄었다. 단층 기와로 지어진 학교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앞줄에 앉은 선생님과 뒷줄의 학생들... 흑백 속에 담긴 그 시절의 표정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이 사진 속 사람들이 누구예요?"
"내 국민학교 졸업사진인가 보네."
하지만 엄마는 70년 전 그 시절의 자신을 찾지 못하셨다. 흰 저고리를 입은 어린 소녀들은 모두 비슷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할 수 없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확대해 보았다. 그제야 희미하게 70년 전 엄마의 어린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찾은 얼굴을 보며 동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역시 동생이 가리키는 다른 소녀의 얼굴에서 엄마 얼굴을 찾을 수 없었다. 우리 남매가 각자 찾아낸 얼굴들을 보며 정작 엄마는 "잘 모르겠다"며 쓸쓸한 미소를 지으셨다.
중학교 입학 선물로 받은 그 책상 서랍 속에는 우리 가족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부모님의 결혼사진, 초가집 앞마당에 앉아계신 증조할머니와 그 뒤로 죽 늘어선 가족들의 모습, 갓난아기였던 나를 안고 있는 어른과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모습까지. 크기도 제각각인 옛날 사진들이 한가득이었다. 아버지가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해 두신 게 분명했다.
천장이 무너진 불행이 오히려 우리에게 뜻밖의 선물이 되었다. 세월의 먼지를 털어내자 그 아래에서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되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