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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했던 변절자 대표와 반년 간의 동행을 완전히 끝낼 때까지, 제가 가장 빚을 많이 졌던 사람들 중 한 명은 당연히 여자친구였습니다.
정신적, 물질적, 시간적인 요소 다 말이죠. 심지어 여자친구가 주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잘 챙겨주는 성격이라 당장 기억나는 것들 그 이상으로 전 무언가를 받으며 살아왔을 겁니다.
새로운 직장으로 취업을 하며 서울살이를 정리하는 것은 생각보다 무탈히 진행되었는데요, 집주인님의 배려 또한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역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제가 생활했던 곳 주변은 대부분 2년 계약이 소위 말하는 "국룰"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금리 때문에 보증금이 치솟고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어플을 새로고침하며 발견한 매물! 보증금이 조금 부담이 되었지만 나머지는 마음에 들어 달려갔습니다.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편인 저는 더 이상 미루지 못하고 "죄송한데 혹시 1년 계약도 가능한가요?" 라고 조심스레 물어봤고, 앳된 얼굴과 많지 않은 나이를 보고 쿨하게 1년 계약으로 도와주셨습니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고정 지출보다 월급이 낮아지는 상황이 지속되며,
부모님께 손을 벌렸음에도 결국 월세가 밀리게 되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친놈이지만 당시에 집주인분께 상황 설명 하나 드리지 않았습니다.
"말 끊는 것"과 "통보식 소통"을 제일 싫어하는 저입니다.
그런 제가 무려 집주인을 상대로 일방적인 통보를 해버린 것이죠. 그 당시에도 머리로는 알았지만 도무지 제 상황을 설명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하셨는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본가로 들어갈 때 조용히 보증금에서 밀렸던 두 달치 월세를 변제해주셨습니다.
다시 취업도 했고, 보증금도 받고, 부모님께 빚도 갚았으니 이제 여자친구만 남았던 상황, 옆에서 도와주었던 것들을 값으로 메길 수는 없기에 의미가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었는데요,
고민 끝에 오마카세에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지리적으로나 상황적으로나 어두컴컴했던 곳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을 기념하고, 한 번쯤은 가격 걱정 없이 식사를 즐기고 싶었고, 그 동안 옆에서 고마웠다는 의미 등을 담은 결정이었습니다.
저희가 꽤나 실리적이어서 가격 때문에 꺼리던 곳이었거든요.
이 당시에는 SNS에 한창 MZ 세대들이 오마카세를 즐기는 걸 사치스럽다고 비판하는 뉴스, 글 등이 많이 올라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 끼에 40만원, 하지만 지금까지 그 날 방문한 오마카세 가격이 부담으로 느껴졌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사치스러운 식사가 아니라 보답과 기념의 의미를 담은 선물이었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