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보다 배꼽이 더 큰 중둔근 키우기
"제 골반처럼 만들고 싶으시다면 중둔근 운동을 많이 해서 골반 옆을 채워주어야 해요!"
과장 하나 안 보태고 그룹 필라테스를 다니던 여자친구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입니다. 현장 말고도 유튜브나 SNS에서도 미적인 목적이나 허리 건강을 위한 중둔근 운동을 강조하고 있죠. 브런치에도 '중둔근' 키워드를 검색해 봤습니다. 그리고 10초 만에 '중둔근'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브런치도 별반 다를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둔근은 골반 옆 쪽에 붙어있는 근육으로 하지의 움직임 및 고관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근육입니다. 그러니 골반 옆에 있는 근육을 키워 '힙 딥'을 없앤다는 논리이죠.
결론부터 적자면, 중둔근은 커지기 힘든 근육이고, 힘을 내기보다는 안정화 역할을 하며, 골반의 넓이는 중둔근의 크기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근육을 이루는 근섬유는 type I, type IIa, type IIb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마라토너를 type I으로, 단거리 달리기 선수를 type IIb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type I 근육들은 마라토너처럼 폭발적으로 큰 힘을 낼 수는 없지만 피로에 강한 특징이, type IIb는 쉽게 피로해지지만 폭발적으로 큰 힘을 낼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type IIa는 I과 IIb의 특징을 고루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알아야 할 건, type I 근섬유의 비율이 높은 근육들은 근비대에 있어 굉장히 불리하다는 점입니다. type I 근섬유의 비율이 높은 대표적인 근육은 종아리에 있는 가자미근과 비복근입니다. 정말 쓰이는 만큼 근육이 커진다면 평생을 걸어 다니는 인간의 종아리 근육들은 나이가 들며 비대해져야 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여성 회원분들이 종아리 근육이 커지는 걸 경계하십니다만 저는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늘의 토픽 '중둔근'은 type I 근섬유의 비율이 굉장히 높은 근육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근육의 사이즈를 키워 골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합니다. 대둔근 등 하지의 다른 중요한 근육들 운동도 해야 하는 마당에, 잘 커지지도 않는 중둔근 키우기에 집중하는 행위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속담에 비유를 할 수 있겠습니다.
type I 근섬유의 비율이 높은 부위는 섬세한 조절이 필요한 손, 눈의 움직임에 관여하는 근육들이나 코어 근육들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심부 근육들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중둔근 역시 type I 근섬유의 비율이 높다고 했었죠? 사실 중둔근의 역할은 코어 근육들과 비슷합니다. 등 근육이나 가슴 근육처럼 큰 힘을 내기보다는, 사지가 움직일 때 우리 몸, 특히 고관절을 안정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죠.
중둔근은 우리의 다리를 옆으로 벌릴 때(고관절 외전) 활성화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리에 밴드를 걸고 몇 십 번씩 옆으로 벌리거나, 꽃게 걸음을 하거나, 클램 쉘을 시키곤 합니다.
하지만, 중둔근의 역할은 발이 땅에 닿아있을 때 조금 달라지게 됩니다. 많은 하체 운동과 일상생활이 체중을 지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진행이 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다리를 옆으로 들어 중둔근을 자극해 크기를 키운다는 것은 굉장히 단순한 발상 같죠?
중둔근은 발바닥이 지면에 닿아있는 상황, 즉 체중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하지를 움직일 때 허벅지뼈가 고관절에서 이탈하여 주변 조직에 피해가 가지 않게 하는 수많은 안정화 근육들 중 하나입니다. 고관절의 움직임에 따라 중둔근은 수축하여 능동적으로 힘을 내기도 하고, 굵은 고무줄처럼 질기게 버티야 하기도 합니다.
특히나 중둔근의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경우, 계단을 오르거나 런지 등의 동작을 할 때 지지하는 쪽의 허벅지뼈가 몸 가운데로 모여 무릎이 내측으로 무너지게 되는데, 지속적으로 이러한 패턴을 이용해 체중을 지지하거나 반발력을 처리하게 되는 경우 움직임의 효율이 떨어지고 발목이나 무릎에 비정상적인 부하가 누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요한 건 클램쉘이나 밴드를 걸고 다리를 벌리는, 비체중지지 상태에서 중둔근의 강화만 보고 수행하는 운동을 통해 체중지지 상태에서 중둔근의 기능 향상도 도모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골반의 너비는 중둔근의 크기보다는 선천적인 골격에 달려있습니다. 개개인의 골반의 크기나 허벅지뼈의 머리와 허벅지뼈의 몸통 사이를 잇는 허벅지뼈 목의 길이에 따라 겉모습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힙 딥을 채우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중둔근 운동을 여쭤보면 스쿼트 한 번 더 하라고 합니다.
정말 중둔근을 많이 고생시키고 싶다면, 러닝이나 런지를 추천드립니다.
1. Aaron Horschig and Kevin Sonthana: Rebuilding Milo: A Lifter's Guide to Fixing Common Injuries and Building a Strong Foundation for Enhancing Perform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