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직장생활 시리즈 1. 이 메일로 소식 전하고 소식받기
내 핸드폰 카톡과 전화번호부에는 6,671명의 전화번호와 이메일이 저장이 되어 있다.
가끔 심심할 때 저장된 이름들을 하나씩 보면서 이분이 누구시더라?
아! 이분 언젠가 꼭 다시 한번 뵙고 싶은 그분이었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이름도 더러는 있다.
전자매체가 없던 시절 명함을 받으면 명함에 받은 날, 장소, 관련업무 등을 쓰고 필요하면 꺼내 볼 수 있도록 명함책에 차곡차곡 넣어 두었다. 나는 다른 직원에 비하여 명함의 사용량이 많았다.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는 성격에 만나는 사람마다 명함을 교환하고 인사를 하러 다녔다.
받은 명함 중에는 1년에 1회씩 방문하는 회사명함, 3년 1회 방문하는 회사명함, 매년 개최가 되는 세미나, 학회, 모임 등에 참석해서 받은 명함도 있었다. 젊은 패기에 잦은 이직한 사람의 경우 명함을 다시 받아야 할 일도 많아졌다. 물론 나름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나는 명함이 거의 바뀌지 않아 다시 줄일 이 없었다. 오래전 받은 명함에는 대부분 핸드폰 번호가 016-, 018-, 011-, 017- 이런 다양한 번호로 되어있었다.
이메일도 적혀 있곤 했는데 최고로 많은 이메일은 ###@hannail.net 이 많았다. 대기업 다니는 사람에서 받은 명함에는 #@삼성, #@대우, #@롯데 이런 식으로 되어 있었고 연구소에 다니는 사람들은 #@re.kr로 되어 있는 명함을 받았다.
받은 명함정보를 다이어리에 적어 놓고 매년 다이어리가 변경되면 중요한 명함정보만 옮겨 적어 놓았다. 가끔은 명함책을 정리를 하여 이직한 경우 전 직장과 현직장으로 구분해 놓기도 하고 나와의 관계별 또는 받은 회사별 등등으로 정리했다. 회사에 컴퓨터가 없던 시절 처음에 입사한 회사에는 Auto-CAD 용 컴퓨터가 딱 한대 있었다. 직원이 그리 많지 않은 회사였지만 직원들 마다 컴퓨터 없이 다양한 회사일을 잘도 했다. CAD와 커다란 제도판에 도면을 그리는 수작업 도면 그리기가 병행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건설공사장에는 청사진을 보면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받은 명함 한 장 한 장을 귀하게 여겼다.
명함책에 한 장 한 장 쌓여갈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직장 생활하면서 받은 명함은 커다란 재산이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몇 번의 이직과 몇 번의 인사이동으로 인하여 명함교환의 상대 업종이 변경되면 이전에 받은 명함을 거의 볼 일이 없어지곤 했다.
한 해 두 해 직장생활 늘어나면서 명함책도 한 권 두권 계속 늘어났다. 일반적으로 하는 일과 관련이 없는 명함을 경우 그냥 버리는 동료들도 많았다. 직장을 몇 번 옮겼는데 옮길 때마다 업종이 달라 이전 명함은 거의 필요가 없어졌다. 세 번째인 지금의 회사에 입사 시에도 한 사무실에 컴퓨터는 한대였다. 몇 년을 더 근무하고 나니 드디어 1인 1PC시대가 열렸다. 당시 여러 직원들이 낮은 수준의 컴퓨터 활용능력일 때 나는 컴퓨터 프로그램 깨지면 다시 깔아주고 고장 나면 고쳐주고 회사에서 간단한 프로그램도 다룰 줄 아는 신세대 축에서 속했다.
드디어 명함관리를 디지털로 할 수 있는 방안이 나온 것이다. 아래한글에 받은 명함 정보를 입력하고 가끔 한 번씩은 꺼내보기도 했다. 핸드폰이 나오면서 열심히 명함정보를 하나하나 일일이 핸드폰에 옮겨 담았다. 이름과 전화번호만 간단하게, 이후 2008년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좀 더 편하게 입력이 가능해졌다. 엑셀도 잘 활용하게 되어 스마트폰과 엑셀이 호환이 되었다.
좀 더 효율적으로 명함관리를 위하여 당시 우리 회사에서 최초로 명함전용 스캐너를 구입하여 명함책에 고이 모셔 놓은 명함들을 스캐닝하여 PC에 저장하기 시작하였다. 저장 후에는 명함에 저장완료 표시를 해놓고 종이 박스에 보관해 놓았다. 가끔 한 번씩 컴퓨터 HDD가 날아가면 다시 스캐닝을 해야 했다. 나름대로 백업을 해 놓는다고 플로피디스크에 넣어 두기도 하고 CD-R에 구워놓기도 했는데 날아가는 것에는 특별한 대책이 없었다. 다시 처음부터 스캐닝하는 수밖에 없었다.
더 좋은 방법을 찾아보니 엑셀에 정보를 넣는 것이었다. 엑셀에 넣으니 파일도 하나로 관리가 되고 찾아보기도 쉽고 다른 기기와의 호환성도 좋았다. 엑셀 파일을 원본으로 하고 이 정보를 스마트폰에 옮기고 스마트폰에서 다시 클라우드로 옮기니 핸드폰 분실을 해도 모든 정보가 핸드폰 내부만이 아닌 외부에도 같이 저장되어 있으니 정말 편리하다. 아직도 디지털에 서투른 친구들은 가끔 "나 핸드폰 분실해서 정보가 다 없어져 그러니 000 친구 전화번호 좀 찍어줘" 그러는 선사시대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다.
명함 관리는 갈수록 진보하더니 스마트폰으로 명함을 사진 찍기만 하면 문자를 인식해서 바로 명함 데이터베이스에 입력을 해준다. 문자인식율이 낮을 때는 명함과 입력값을 비교하여 수정 입력이 필요했는데 지금은 거의 100% 정확하게 입력을 해준다.
명함관리 프로그램인 리맴버를 활용하여 받은 명함은 바로 입력하고 받은 명함은 종이상자에 넣어둔다. 핸드폰이 자주 바뀌어도 모든 정보가 외부의 DB에 입력되어 있느니 다시 로그인하면 모든 정보가 거기에 있으니 정말 편리하다. 매년 한두 번씩 리맴버 정보를 엑셀로 다운로드하여 기존 갖고 있던 엑셀명함 정보에 차곡차곡 넣어둔다. 사무실에서 스마트폰 검색하여 정보를 검색하는 것보다 엑셀에서 검색하여 찾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엑셀 정보는 리맴버 다운로드하면 생기는 순서를 그대로 활용하여 엑셀 정보를 업그레이드해나가고 있다. 이 정보는 내 PC, 핸드폰에서 안전하게 잘 관리되고 있다.
직장이 자주 바뀌거나 퇴직을 하여 자연인으로 돌아간 사람들에게는 사전에 부탁을 한다. 평생 변하지 않는 이메일을 알려 달라고 하여 잘 저장해 놓는다.
언젠가부터인가 명함이 쌓이면서 이 명함에 담긴 추억을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이분들에게 메일을 보내보자. 나의 가족과 내 주변에 담긴 다만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 포함된 '이메일로 연하장 보내기'를 2004년 1월 시작하였다. 첫해 정말로 엄청난 반응이 왔다. 받은 사람들마다 너무 재미있고 소식을 전해줘서 고맙다고 전화도 걸려오고 메일로 답장도 해주고 했다. 죽어있던 명함들이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다음 해에는 좀 더 진화를 하여 가족사진을 넣은 '근하신년' 메일을 보냈고 그다음 해에는 1년간의 의미 있었던 일을 사진으로 넣었고, 그다음 해부터는 차기 연도에 해보고 싶은 목표를 넣었다.
이렇게 매년 보내는 소식은 명함 속의 인물들이 나라는 존재를 알아주고 그분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메일로 회신을 해주시거나, 전화를 해주시거나, 아무런 답장은 보내지 않은 이메일 수신자님들은 어디에서 만나든 즐겁게 인사를 건네주셨다. 마치 자주 뵈었던 친구와 같이 말이다.
매년 나의 소식을 기다리는 애독자도 생겼다.
1년 1회만 보내는 소식에는 우리 가족의 일상을 담아 몇 장의 사진과 글로 진화를 하여 지금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연하장 보내기는 올해로 21년이 되었다.
이렇게 매년 이메일로 만나는 좋은 사람들과 가끔은 별다른 일로가 아닌 그냥 만나서 이야기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정년퇴직을 하고도 업무와 관련이 없는 자연인으로 가더라도 직장생활 35년간 받아 놓은 명함들이 늘 가치 있게 만들고 있는 지금의 내가 좋다.
명함에 담긴 추억과 의미를 늘 생각하며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35년을 추억하며 나머지를 살아야겠다. 연락이 되는 멋진 친구들과 가끔은 한번 만나고 싶다.
받은 명함에 새겨진 수신자 선택을 잘해야 한다. 받아보고 기분 나빠할 것 같은 사람은 제외한다. 그래서 나의 이메일 수신자는 현직에 있는 같은 회사 사람은 한 두 사람만 포함되어 있다.